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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전경.
 청와대 전경.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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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진실을 인정하는 데는 3일이 걸렸다.

11일 김유정 민주당 의원의 폭로에 이어진 <오마이뉴스>의 '이메일 전문 보도'에도 청와대는 "청와대 이메일 양식과 다르다"(12일)는 엉뚱한 해명까지 내놓으며 버텼다. 이메일 수신처인 경찰청도 "받은 적 없다"고 잡아뗐다.

그러다 청와대는 13일 오후 '용산참사 물타기'를 지시한 문제의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다고 사실을 공식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행정관이 개인 이메일을 통해 개인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라며 '개인 행위'로 결론 내렸다.

"경찰청은 일개 행정관에게 농락당했다는 말이냐?"

청와대의 결론대로 이아무개 행정관이 비서관 등에 보고하지 않고 문제의 이메일을 보냈다고 가정하면 무엇이 문제일까. 그렇다면 이것은 심각한 직권남용이자 업무기강 해이에 해당한다.  

사실 이런 정도라면 해당비서관과 수석이 나서 지휘책임을 져야 한다. 즉  이 행정관의 '윗선'인 김철균 국민소통비서관과 박형준 홍보기획관이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얘기다.

노무현 정부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한 인사는 "청와대는 조직의 특성상 강한 위계조직을 특징으로 한다"며 "그 정도의 사안이라면 행정관 개인이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와대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대부분 비서관의 책임 아래 이루어진다"며 "그런데 행정관이 단독으로 일을 처리했다면 이는 수석이나 비서관에게 지휘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 인사는 "문제의 이메일은 지시에 가까운 업무협조"라며 "업무협조를 요청하거나 지시를 내릴 때는 업무체계상 비서관이나 수석에게 반드시 보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청와대의 해명대로 이아무개 행정관이 비서관 등에 보고하지 않고 단독으로 일을 처리했다면 이것은 심각한 업무기강 해이이자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인사는 "<오마이뉴스> 보도에 의하면 문제의 이메일은 경찰청 홍보담당관실과 인사청문회팀에 전달됐는데 그렇다면 경찰청이라는 권력기관이 개인 행정관에게 농락당하는 집단이란 말이냐"고 꼬집었다.

'용산 철거민 참사' 사태의 확산을 막기 위해 '군포연쇄살인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내용의 청와대 이메일이 폭로된 가운데, 용산철거민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는 13일 오전 청와대 부근에서 '청와대 여론조작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사죄, 전면 재수사 등을 촉구했다.
 '용산 철거민 참사' 사태의 확산을 막기 위해 '군포연쇄살인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내용의 청와대 이메일이 폭로된 가운데, 용산철거민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는 13일 오전 청와대 부근에서 '청와대 여론조작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사죄, 전면 재수사 등을 촉구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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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의한 여론조작' 덮기 위해 꼬리자르기?

사안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이아무개 행정관에게 구두경고만 내렸다. 윗선에 전혀 보고하지 않고 독자적 판단으로 문제의 이메일을 보냈다고 해명해놓고도 경징계를 내린 것. 추가적인 인사조치 가능성도 일축했다.   

이는 거꾸로 청와대가 문제의 이메일을 보낸 것은 행정관의 단독작품이 아니라 윗선의 동의 아래 이루어졌음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식의 솜방망이 징계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윗선의 동의 아래 이메일이 보내졌다면 이것은 '정권 차원의 문제'로 비화될 수밖에 없다. 권력핵심부인 청와대가 나서 여론조작을 지시했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 청와대가 '권력에 의한 여론조작 의혹'을 '개인행위'로 몰고가며 꼬리자르기에 나선 것도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앞서 언급한 전직 비서관은 "청와대의 해명과 달리 행정관이 비서관 등 윗선과 상의하고 이메일을 보냈다면 이것은 조직적인 대국민 기만행위에 해당한다"며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가 문제의 이메일을 보낸 것을 인정했기 때문에 윗선의 지시가 있었어도 문제이고, 없었어도 문제"라고 "이번 사건은 최소한 대통령실장이 나서서 국민들에게 사과할 일"이라고 말했다.

참여정부 시절 이병완 홍보수석은 '박근혜 패러디' 사건으로 한나라당의 퇴진압력을 받았고, 이백만 홍보수석은 '비싼 값에 지금 집을 사면 낭패'라는 글 때문에 물러나야 했다. 

그런데 '용산참사 대응에 연쇄살인사건을 활용하라'고 지시한 이번 사건은 앞서 언급한 사건들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점에서 청와대의 '읍참마속'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반면 추부길 전 홍보기획비서관은 "각 비서관실마다 권한의 위임 정도가 다르다"며 "전폭적으로 일임하는 곳도 있고 그렇지 않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추 전 비서관은 "어떻게 수석이나 비서관에게 다 보고하고 일을 하겠느냐"며 "소관업무와 관련해서는 얼마든지 개인이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개인 이메일 사용했기 때문에 정권의 문제는 아니다?

또한 청와대는 공문이 아닌 개인 이메일이 사용됐다는 점을 들어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청와대가 "사신을 통해 개인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라고 밝힌 데에서도 그런 의도가 읽힌다. 

하지만 청와대의 직무범위가 상당히 포괄적이라는 점에서 공문이든 이메일이든 구두전달이든 비슷한 권력효과를 갖는다. 설사 개인 이메일을 통해 보냈다고 하더라도 청와대 행정관이라는 위치 때문에 수신자는 '업무협조'나 '지시'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태그:#청와대 이메일 지침 파문, #국민소통비서관실 , #용산철거민참사, #추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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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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