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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날 아침의 교문 주변 졸업식은 대개 겨울철이지만, 당일 학교 주변은 꽃으로 포위됩니다. 가정의 달 5월과 더불어 꽃가게의 대목철이기도 합니다.
▲ 졸업식 날 아침의 교문 주변 졸업식은 대개 겨울철이지만, 당일 학교 주변은 꽃으로 포위됩니다. 가정의 달 5월과 더불어 꽃가게의 대목철이기도 합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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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졸업철입니다. 상급 학교로 진학하거나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로 내던져지는 설레고도 불안한 시기입니다. 축하를 위한 꽃다발이 교정 주변을 뒤덮고 있습니다. 한아름 품에 안은 꽃다발의 빛깔과 향기는 졸업하는 아이들의 표정에 따라 화사하기도 하고, 빛이 바래 보이기도 합니다.

부쩍 커버린 탓에 볼품없어진 교복을 벗어던지고 '간지나는' 양복을 차려입은 그들이 졸업식장 입구에서 담임교사의 구령에 맞춰 가지런하게 줄을 섰습니다. 앳된 티를 벗지는 못했지만, 차림새만 놓고 보면 누가 졸업생이고 누가 교사인지 구분되지 않습니다. 아무튼 양복을 빼 입고 구두 또각거리며 걷는 아이들의 모습이 무척 낯설고 어색합니다.

지난 3년 동안 그들은 양복을 입기는커녕 구두조차도 신을 수 없었습니다. 멋 부리는 일은 이른바 '문제아'들이나 하는 짓이었고, 여하튼 학생의 신분으로 개성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것은 교칙의 이름으로 제지되기 일쑤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확실하지 않은' 미래를 위해 '확실한' 현재를 담보해야 하는 현실에 그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졸업식은 아이들에게 '해방구'입니다. 여태껏 꿈꿔 보지도 못한 '일탈'을 교사들 앞에서 보란 듯이 행하고, 그것을 즐기는 짧고도 강렬한 시간입니다. 기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심한 체벌을 각오해야 할 만큼 큰 잘못이었는데, 그래서 무척 조심스러워 했는데, 막상 저지르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그제야 깨닫게 됩니다.

머리카락을 울긋불긋 염색을 한 아이들이 드물지 않고, 여자처럼 귀걸이에다 곱게 화장을 한 경우도 보입니다. 개중에는 빨간 넥타이 한 번 해보고 싶어, 머리카락에 염색 한 번 해봤으면 하고, 오로지 그 이유 하나로 졸업을 기다려온 아이도 있습니다. 거울 앞에 선 모습 외에는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는데, 선생님들과 부모님들은 왜 그리 호들갑이었을까 헛웃음 짓는 아이도 있을 겁니다.

졸업식 날, '간지나는' 아이들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멋지게 차려입은 아이들이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 졸업식 날, '간지나는' 아이들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멋지게 차려입은 아이들이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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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칙에 대해 비로소 '합법적' 의문을 갖게 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누구도 그들더러 교칙을 따르라고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자신들을 옭아매지 않을, 후배들의 일이고 몫이라 여기며, 지금껏 그래왔듯 소 닭 보듯 하게 될 것입니다. 졸업식이라는 이 짧은 행사를 앞뒤로 해서 사람의 행동과 의식이 극명하게 갈리는 순간은 아마 없을 듯합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똑 같은 옷차림에 똑 같은 교실에서 똑 같은 일과를 보내야 했던 아이들은 이제 지금 그들의 모습만큼이나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의식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조금씩 성장해왔을 테지만, 그들에게 허락된 변화는 마치 계단 뛰어오르듯 졸업이라는 순간을 통해 단숨에 찾아왔습니다.

요즘 들어 이색적인 졸업식이 종종 화제가 되곤 하지만, 엄숙한 국민의례로 시작되는 졸업식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사회를 보는 선생님의 유도에 따라 일어섰다 앉을 뿐 관심 없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입니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 몇몇이 '학교를 빛냈다'는 이유로 시상대에 오르게 되고 공허한 메아리처럼 박수가 몇 번 오갑니다.

학부모들은 졸업식 내내 식장 맨 뒤에서 아이들에게 전해줄 꽃다발을 들고 서 있습니다. 2~30여 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자녀들을 대견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어서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3년을 갈무리하는 졸업장을 받습니다. 슬픈 음악에 실려 후배들의 송시가 읊어지는 한편 교사들로부터 졸업을 축하하는 메시지가 전해지지만, 학교를 떠나게 됨을 슬퍼하거나 졸업장을 ‘빛나게’ 여기는 아이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저 후줄근한 교복을 입고 있는 후배들에게 선배의 멋진 모습을 뽐내는 자리, 교사와 학부모에게는 이만큼 성숙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시켜주는 자리일 뿐입니다. 학부모들에 의해 에워싸인 채 후배들과 선생님들의 박수갈채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지금이 아이들에게는 분명 드물고도 뿌듯한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빈자리가 많이 눈에 띱니다. 생각건대 번듯하게 차려 입은 친구들 눈에, 그리고 교사 눈에 나서기 껄끄러워 학교에 오지 않은 아이들의 자리입니다. 중학교의 경우는 그나마 낫지만, 고등학교 졸업식의 경우 근황을 묻는 그들에게 대학에 떨어졌다고, 재수할 거라며 일일이 대꾸해야 하는 건 괴로운 일이며,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어야 하는 입장에서도 마뜩찮은 일일 겁니다.

단상에 올라야 하는 수상자가 아니라면 졸업식에 오지 않은 아이들을 굳이 궁금해 하지도, 일일이 출석을 확인하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졸업식이 친구들과 학부모, 교사에게 축하를 받을만한 '이유'가 있는 아이들을 위한 잔치일 수밖에 없는 까닭입니다. 일어서서 함께 교가를 부르며-아니 들으며- 화기애애하지도, 그렇다고 서먹하달 수도 없는 3~40분짜리 행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졸업식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봇물 터지듯 행사장 바깥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배경에 아랑곳 않고 교정 곳곳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댑니다. 축하하러 온 가족들과 한 장, 담임교사와 또 한 장, 그리고 친했던 반 친구들과 사진을 통해 헤어짐을 아쉬워합니다. 어디를 가든 꼭 연락하자며 손가락 거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런가 하면 식장에서 나오자마자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거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축하하러 애써 온 가족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친구들과 어울려 하루를 보내려는 생각에 마냥 들떠 있는 모습입니다. 졸업한 날 하루만큼은 가족도, 학교도 웬만한 일탈쯤은 눈감아주곤 합니다.

하루짜리 달콤한 일탈을 맛보게 될 아이들은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학원과 독서실을 순례하며 잿빛 일상에 젖어들 겁니다. 한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교문을 나서며 웃자고 던진 말에 외려 그들이 측은해졌습니다.

"어차피 우리 고등학교 가면 보충수업에 야자다 시험이다 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텐데, 오늘 원없이 놀아보자!"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교정은 쓸쓸하다 못해 고요합니다. 그들이 놓고 간 꽃다발이 교정에 나뒹굴고, 졸업식을 경축하는 현수막이 을씨년스럽게 펄럭이고 있을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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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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