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국내 최연소 여자 프로 마술사 노병욱
 국내 최연소 여자 프로 마술사 노병욱
ⓒ 김현미

관련사진보기

요즘 마술은 초능력이 아닌 공공연한 비밀이 됐고 마술의 기술은 대중화되고 있다. 그런데 '마술이란 게 다 속임수잖아'라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마술에 열광한다. 왜일까.

마술의 기본은 트릭에 있지만 절정은 놀라운 '반전'에 있다. 마술에 대해 웬만큼 안다고 하는 그 순간, 깜짝 놀랄 반전이 당신을 기다린다.

반전은 본래 모습에서 180도 방향을 바꾸는 변환을 뜻한다. 지금 밋밋하거나 답답한 현실에서 180도 다른 변환을 이루는 것. 그 변환이 자신을 비롯한 누군가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순간이라면 마술은 삶의 기대치와 닮았다. 따라서 때로 삶은 마술이어야 한다.

22살, 가슴 뛰는 나만의 길을 찾다

노병욱에게 마술이 말을 건 것은 22살 무렵이었다. 당시 덕성여대 중어중문과 학생이던 그녀는 리포터와 VJ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었고, 모 프로그램을 통해 마술사 이은결을 만났다. 새로운 자극에 민감한 나이를 감안하면 마술은 매혹적인 세계였다. 재미 반 호기심 반으로 마술을 들락날락하던 그녀는 1년 뒤 이은결의 보조 스태프 자격으로 네덜란드에서 열린 마술 대회에 동참했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마술사가 되리라 결심했다.

"전 세계 3000명 정도의 마술사들이 모인 대회였죠. 이은결씨가 마술 공연을 마치고 '엔딩' 인사를 하는데 관객들이 일어서서 기립 박수를 치는 거예요. 마술이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그 날 많이 울었어요. 나 역시 감동을 받은 거죠. 그때 나도 마술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술은 누군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걸 찾아 나선 첫 분야라 더욱 소중해요."

20대의 선택은 당당하지만, 어른들이 보기엔 무모할 수 있다. 선택이 책임을 동반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의 부모는 어린 딸의 선택에 반대했다. "마술사는 지금 당장 화려해보일 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적인 길을 걸어라. 사회생활은 조금 더 나중에 결정해도 늦지 않다" 등 어른들의 논리는 한편으로 타당했다. 사회엔 안정적으로 사는 룰 같은 게 존재한다. 괜한 시비나 오해를 일으키지 않는 방식이란 게 있고, 스무 해 남짓 그녀는 그 규칙에 어긋남 없이 살았다고 했다.

그녀는 일종의 범생이 스타일이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22살에 마술사가 되겠다는 선언은 오답에 가깝다. 그러나 인생은 1번 혹은 2번을 맞추는 객관식 문제가 아니다. 생애 처음으로 답이 없는 주관식 문제와 마주했던 노병욱은 고민했고, 부모님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썼다.

"지난 삶과 지금 선택하려는 삶은 정반대에 가까웠어요. 그 동안 정해진 규칙을 따랐다면, 이번엔 스스로 선택하는 일이었거든요. 마술에 대해 어느 정도 믿음이 있었지만, 그 믿음을 따르기엔 다른 안정적인 것들을 포기해야 됐어요. 두 가지를 모두 안고 갈 수는 없고, 한 가지에 '올인'하기엔 위험했죠. 그러나 난 20대였어요. 시행착오를 겪고, 어떤 선택이 실패하더라도 쉽게 극복하고 빨리 치유할 수 있는 나이잖아요.

부모님께 내 나이 20대란 점을 알리면서 한 우물을 파기보다는 여러 우물을 파 볼 시기이고, 30살이 되기 전까지는 여러 경험을 접하고 싶다는 편지를 썼어요. 30살이 되기 전까지는 내가 진정 원하는 일을 찾아 나서겠다고요."

"인생은 1번 혹은 2번 문제를 맞추는 객관식이 아니다"

노병욱은 국내 최연소 프로 여자 마술사다. 최연소란 타이틀은 그녀의 선택이 빨랐음을, 또 여자가 마술사가 된다는 게 녹록지 않은 일임을 말한다. 달콤한 성공을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 그녀는 "성공이라고 말하기엔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이 많다"면서 "내 기준에서 성공이란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지금 삶에 안주하는 이들에게,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고민 없는 누군가에게, 주어진 길이 있어 그 길만 뚜벅뚜벅 걸어온 이들에게, 가슴이 뛰지 않는다는 또래에게, 그녀는 해주고 싶은 말들이 있다.

"자기 삶에 신중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대학에 가고, 졸업장과 동시에 직장을 얻고, 그게 평생 직업이 되면 좋은 거지만, 그 과정 속에 스스로의 고민과 선택은 드물어요. 주변의 말들과 나이에 쫓겨서 삶이 결정되잖아요. 자기 안에 있는 걸 찾기 위한 시간을 보내고, 급하게 서두르는 대신 객관적으로 자신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자신과 진심으로 대화를 나눌 때 마술 같은 순간이 찾아오는 거겠죠?"

노병욱표 마술은 '탄탄한 스토리텔링'으로 박수를 받는다. 그녀의 마술엔 이야기가 있다. 노병욱은 하나의 '액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무한 반복'이라고 표현했다. 그 무한 반복의 과정 속에서 그녀는 모든 소품이며 의상은 직접 준비한다.

스토리를 만들고 '액트'와 어울리는 음악이며 무대를 제작하는 일도 직접 한다. 10분이 채 안 되는 공연 준비에 걸리는 시간이 반년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그녀의 설명을 들으면 무대 위 마술은 화려하지만, 무대 뒤의 과정은 피곤하고 또 피곤한 일이다. 잠을 못 자는 날이 잦고 체력 소모가 만만치 않다.

마술사는 힘든 일이지만 여자 마술사는 체력적으로 더 힘들다. 사람이 지치면 좋은 일도 하기 싫어진다. 그런데 그녀는 일을 하면서 한 번도 후회하거나, 매너리즘에 빠진 적이 없다고 한다. 그녀의 말에 담긴 '진실 혹은 거짓'은 어떤 것일까. 도대체 마술이 뭐가 좋은 직업이란 말일까.

"마술은 늘 호기심을 자극해요. 그래서 지루하지가 않고요. 그런 과정을 겪다보니 이제는 일과 나 사이에 '끈끈한 유대감'이 생겼다고 할까요.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은 너무나 복잡하고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낄 때가 있지만, 계속 일에 파고들어 집중하는 과정에서 애정이 생기는 것 같아요. 나와 마술이 서로를 선택한 거잖아요. 마술이 좋은 직업이어서가 아니라, 서로가 자꾸 관심을 가지려는 노력을 하기 때문에 사랑이 싹트는 거죠. 내가 선택한 일에 집중을 하면 그 일이 내게 보답을 해요. 공연이 끝나면 모든 피로가 한 방에 날아가거든요."

'반전'! 마술과 삶의 성공 키워드

늘 신선하려면 뭔가를 꾸준히 움직여야 한다. 그녀는 인터뷰 도중 수시로 손을 움직였다. 손가락을 쭈욱 펴거나, 붙였다 옮겼다를 반복했다. 자꾸 움직이는 그녀의 긴 손가락에 눈길이 쏠렸다.

"사람들은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마술사들은 열 손가락을 모두 사용하죠. 과학적인 이유가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열 손가락을 활용하는 게 뇌 운동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마술사의 비밀 하나를 엿본 셈이다. 마술사의 뇌는 경직돼서는 안 된다. 마술은 늘 신선해야 한다. 늘 신선해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숙제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술사 노병욱의 뇌는 상쾌해 보였다. 열 손가락 뻗치기처럼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게으르다면, 마술에 '반전'은 없다. 신선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삶 역시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노병욱의 다음 말은 마술과 삶, 두 가지에 동시에 적용되는 성공 키워드다.

"늘 신선하려면 뭔가를 꾸준히 움직여야 해요. 그게 손가락이든, 뇌든 말이죠. 단 하나라도 나만의 신선한 마술을 선보일 수 있다면, 내가 걸어온 길에 후회는 절대 없겠죠."


#노병욱#마술#터치#가슴뛰는삶#반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