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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 용정마을. 마을 입구에 '금연시범마을'을 알리는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전남 고흥 용정마을. 마을 입구에 '금연시범마을'을 알리는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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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용정마을. 이른바 ‘금연마을’로 통한다. 마을 주민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외지인들이 이 마을에 와서 담배를 피우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곳에서부터는 담배를 절대 피우지 마십시오.’ 마을 입구에 세워진 표지판의 글귀다. 길에서 만난 촌로에게 “정말 마을사람 한 명도 담배를 피우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정색하며 반문한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표지판을 보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실제 마을 어디에서도 담배를 물고 다니는 사람을 만날 수 없다. 담배꽁초도 보이지 않는다.

28가구, 75명이 살고 있는 이 마을에서 담배 연기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 당시 이 마을의 흡연자는 27명이었다. 이전부터 비흡연자를 중심으로 ‘담배연기 없는 마을’을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주민들의 의지를 모으고 9월1일 ‘금연 시범마을’로 지정되면서부터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주민이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주민도 있었다. 적게는 20년, 많게는 50년도 넘게 담배를 피워 온 흡연자들 중에는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 담배 한대 피우면 피로가 날아가는데, 그럴 자유도 없냐”는 게 주된 이유였다.

새해만 되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금연 결심을 이끌어내는 담배. 한편으로 작심삼일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새해만 되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금연 결심을 이끌어내는 담배. 한편으로 작심삼일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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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과 금연 사이에서 논란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연세 지긋한 마을 어르신들이 먼저 금연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눈치를 보던 다른 흡연자들도 하나씩 동참하면서 금연을 주저하던 사람들이 더 이상 버틸 명분이 약해진 것은 당연한 일.

서서히 분위기가 무르익어가자 주민들은 회의를 통해 금연실천 결의문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을주민들이 모두 결의문에 서약하고 마을회관에 걸었다. 결의문은 마을에서 담배 안 피우기, 남이 피우는 담배 연기도 피하기, 잠자기 전 금연결심을 다시 한 번 하기, 식사 후 바로 칫솔질하기, 하루 10번 이상 웃기 등이다.

결의문 작성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실천 규율도 만들었다. 담배를 피우다 적발이 되면 벌금 1만원씩을 내고, 흡연행위를 신고한 사람에겐 벌금의 일부를 포상금으로 떼주기로 했다. 흡연자에 대해서는 주민들의 놀이공간인 마을회관의 출입도 불허키로 했다. 흡연자들이 설 자리를 아예 차단해 버린 것이다.

사정이 이쯤 되자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한두 명씩 줄기 시작하더니 시나브로 흡연자가 사라져갔다. 급기야 50년 동안 피워 온 담배를 끊을 수 없다며 버티던 ‘골초할아버지’까지도 손을 들고 만 것이다. 고흥군 관내에서 첫 ‘금연마을’이 탄생한 것이다. 주민 모두가 금연에 성공하자 마을주민들은 아예 마을을 방문하는 외지인들까지도 마을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도록 했다.

마을주민들의 금연 성공에는 보건소의 힘이 컸다. 보건소에선 정기적으로 주민들의 건강상태를 체크해 주는 등 금연 성공을 도왔다.
 마을주민들의 금연 성공에는 보건소의 힘이 컸다. 보건소에선 정기적으로 주민들의 건강상태를 체크해 주는 등 금연 성공을 도왔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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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의 금연 성공에는 주민들의 의지 못지않게 고흥군보건소의 힘도 컸다. 마을주민들을 대상으로 금단증상 자가 대처법을 알려주고 스트레스 관리도 도왔다. 금연패치, 금연사탕, 금연껌 등 금연보조제와 운동기구도 지원했다. 체내 니코틴 검사와 소변 검사, 일산화탄소(CO) 측정 등도 정기적으로 해줬다.

주민들의 흡연욕구를 없애기 위해 이동 금연클리닉을 운영하면서 폐질환 등 건강상태도 체크해 주었다. 김병희 할아버지는 “보건소 직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담배를 끊지 못했을 것”이라며 “몇 십 년 동안 피우던 담배를 끊고 나니 정말 개운해서 좋다”고 했다.

공공식 할아버지는 “담배를 피울 땐 목에 가래가 차고 갑갑했는데, 담배를 끊은 뒤 밥도 더 맛있고 기관지도 많이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며 흡족해 했다. 건강이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게 마을주민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겨울이면 으레 앓던 감기도 사라졌다는 게 김권치 이장의 얘기다.

담배꽁초가 사라지면서 마을도 몰라보게 깔끔해졌다. 담배 연기로 뿌옇던 마을회관의 공기도 상쾌해졌다. 집안도 변화했다. 유연심 할머니는 “바깥양반이 담배를 피우다가 재를 떨어뜨려 방자리 여기저기에 구멍이 나고, 냄새도 엄청 심했는데 그런 걱정 안 해도 된다”며 웃음을 지었다.

노인인구가 많아 좀처럼 어려울 것으로 보였던 농촌마을에까지 금연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갈수록 흡연자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요즘. 용정마을 주민들의 금연운동이 흐트러지지 않고 쭈-욱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당신은 연초에 세운 금연결심 잘 지키고 계신지요?

'금연마을' 지정 이후 마을회관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예전에 뿌옇던 담배연기가 사라지고 주민들의 건강을 관리하는 공간으로 변했다.
 '금연마을' 지정 이후 마을회관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예전에 뿌옇던 담배연기가 사라지고 주민들의 건강을 관리하는 공간으로 변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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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용정마을, #금연마을, #고흥, #고흥군보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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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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