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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7개국 10개지역으로 파견됐던 KB-YMCA 라온아띠 해외봉사단 1기 단원 50명은 2009년 1월 20일 모두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온전히 현지에서 돌아온 단원은 없었던 것 같다. 단순히 아쉬워서 였을까?

 라온아띠 태국 팀이 현지 아이들과 놀이를 하는 모습, 아직까지도 그 때의 감흥에 젖은 탓일까. 정확히 정리들을 못해내고 있다.
라온아띠 태국 팀이 현지 아이들과 놀이를 하는 모습, 아직까지도 그 때의 감흥에 젖은 탓일까. 정확히 정리들을 못해내고 있다. ⓒ 고두환

"스스로 만들고 찾아낸다는 것, 그건 힘들다고요"

"현지에 처음 갔을 때 정말 할 일이 없었어요. 너무 할 일이 없어서 정말 많은 생각과 고민들을 했습니다. 과연 내가 이 곳에 왜 왔는지, 그리고 그 고민들이 내 삶과 이 지역으로 자연스럽게 전이되게 됐습니다"

동티모르 딜리 지역에 파견됐던 김판(한양대 신문방송 2) 단원의 말이다. 이렇듯 라온아띠는 기존의 해외봉사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으로 운영이 되었다. 파견된 지역마다 프로젝트 명이 있고, 활동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 일이 집을 짓거나 과중한 일에 시달리는 등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해외봉사활동이 아니었다. 현지에 대해 이해하고, 동화되는 것. 그리고 스스로 활동을 창조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한국에서 2년간 봉사활동을 했는데 그 땐 봉사는 어려운게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라온아띠의 봉사는 너무 어려운거예요. 스스로 해낼 활동을 찾아내고 만들어내야 하는데 '현지인들은 과연 나란 존재를 원하는 것일까?', '과연 어떤게 이 곳에 필요할 것인가?'라는 더 어려운 질문들이 내 주위를 감싸서 더 복잡해지곤 했죠..."

이는 동티모르 사메 지역에 파견됐던 김두호(순천전문대 안전관리 2) 단원의 소감이다. 이미 주어진 일을 해내고, 따라가기에 익숙한 단원들에게 어쩌면 이 실험은 너무 힘들고 가혹한 것일 수 있었다.

그리고 50명의 단원 모두 일종의 방황(?)의 시기를 현지에서 겪게 된 것이다.

"성과를 위해 만든 봉사단이 아니거든요"

사실 라온아띠 해외봉사단을 운영한 국민은행(KB)과 YMCA는 국제봉사단을 운영하는 조직은 아니다. YMCA의 국제네트워크가 탄탄한 건 사실이지만 경험이 부족하고 변수가 많은 사업임은 분명했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 진광표 사회협력 팀장은 기업의 사회적 공헌이라는 측면에서 이 활동을 운영하는 의의에 대해 설명했다.

사회적 공헌의 기대치라던가 이런 사업을 통한 홍보, 그리고 아시아에 진출에 대한 전략적 포석(?)이 아니냐는 다양한 질문들이 전광표 팀장을 향해 던져졌지만, 그는 "국민은행이 이 활동을 통해 대단한 사회적 변화가 있거나 당장 기대효과가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큰 성과나 결과를 바라지 않고 우리는 이 사업을 사회적 공헌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학영 한국 YMCA 전국연맹 사무총장은 이 부분에 대해 좀더 상세하게 설명했다.

"기업의 사회적 공헌은 대부분 말 그대로 사회복지에 쓰입니다. 제 3세계의 빈곤과 질병을 퇴치하기 위해 선진국이 해외원조를 하는 것처럼 국내에서도 그런 형태로 쓰이는 것이죠. 하지만 지난 수십년의 해외원조로 제 3세계의 빈곤과 질병이 퇴치된 것은 아닙니다. 우린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구조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업의 사회적 공헌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라온아띠 해외봉사단을 생각해내게 됩니다."

- 그럼 기존의 봉사단과 어떤 것이 다른거죠?

"YMCA는 원래 사람을 키우는 조직이거든요. 국내 교육 때부터 어떤 성과를 이루고 올 것인가를 이야기한게 아니라 어떻게 고민하고 삶에 연결시킬까를 이야기했거든요. 그래서 국가적인 색채를 버리고 내가 살아가는 지역과 그들이 살아가는 지역이 만나자고 이야기했고, 던져주는 일보다는 자신이 만들어가는 일을 만들라고 한거죠. 우린 성과를 기대하고 라온아띠를 만든게 아니라, 사람을 키워내기 위해 만든 것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들의 고민은 라온아띠 해외봉사단 1기 이태영(연세대 정치외교 3학년) 단장의 말로 라온아띠 속에 녹아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녀오면 뭔가 잡히는게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복잡하네요. 하지만 우리가 겪고 배워낸 것을 사회에 풀어가며 살고 싶어요. 그를 위해서 젊은이들이 모여야 한다고 생각하죠. 우리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라온아띠 태국 팀의 모습. 11명이라는 다소 많은 팀원들이 반년 가까이 살아갔지만, 그 팀원들이 있었기에 반년의 삶이 있었다.
라온아띠 태국 팀의 모습. 11명이라는 다소 많은 팀원들이 반년 가까이 살아갔지만, 그 팀원들이 있었기에 반년의 삶이 있었다. ⓒ 고두환

시행착오 속에 팀 파견이 구심점 역할을 한 라온아띠

"국제자원활동을 대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정관념,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자며 시작한 라온아띠에 대해 각자가 이해하는 방식이 다른 것. 그것이 힘들었다."

라온아띠 사무국 원창수 팀장의 말이다. 매일 노동을 하고, 짜여진 일에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대신 현지를 이해하고 활동을 창조해가는 운영방식은 봉사단 개개인에게도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었다. 이런 활동 모토를 통해 아시아에 대한 편견이 깨지고 상호 이질적인 존재가 관계를 맺어가는 따뜻한 경험을 해낸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부분이 사무국의 방임으로 비쳐졌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파견됐던 팀은 활동 중반에 말레이시아로 옮기는 일을 겪게 됐다.

"현지에서의 활동은 우리 같은 비숙련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 더군다나 현지 스태프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지 않았죠. 너무 상세한 설명을 듣지 못하고, 또 고민하지 못하고 간 것이 화근이었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파견됐던 김준삼(한라대 사회복지 3학년) 단원은 사무국의 충분치 못했던 준비가 중간에 힘든 과정을 수반했다는 점에서 많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거기에 활동할만한 것이 너무 없었다거나, 정체성이 모호한 점 등 전체 단원들은 다양한 부분에 있어서 문제를 제기했다.

원창수 팀장은 이 부분에 대해 "우리가 생각했던 봉사단을 구현해 내기에 준비가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지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문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라며 인정했다.

그러면서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귀국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5명(여자 3명, 남자 2명)의 팀으로 파견해놓으니 모든 문제를 팀이 함께 고민하고 풀려고 했다. 스스로 조직이 되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지금의 라온아띠를 있게 했다"고 말했다.

 라온아띠 해외봉사단 원창수 팀장. 그는 라온아띠를 해외자원활동의 인턴쉽과정이라고 정의했다.
라온아띠 해외봉사단 원창수 팀장. 그는 라온아띠를 해외자원활동의 인턴쉽과정이라고 정의했다. ⓒ 고두환

"국제자원활동의 인턴십 과정이라 정의하고 싶다"

사실 이렇게 여지가 많은 봉사단이었기에 파견 전부터 라온아띠 해외봉사단의 구성자들은 봉사단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봉사는 뭔가 줘야 한다', '봉사는 희생이 수반된다', '우린 민간외교관이다!' 등의 기존의 해외봉사와 오버랩되는 관념들이 무수히 깨지면서 그 속의 내용을 우리가 스스로 채웠어야 했기 때문이다.

"난 라온아띠가 국제자원활동의 인턴쉽 과정이라 정의하고 싶다. 어떤 결과나 성과를 도출해야 하는게 아니라 좋은 경험 혹은 계기를 제공받을 수 있는 그런 활동이라 말하고 싶다. 숙련되거나 준비된 사람들을 파견하여 짜여진 일을 하고 돌아오는 봉사단이 아닌 다소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들을 파견하여 부딪치고 만들어가는 삶을 살고 오는 봉사단, 이것이 라온아띠 해외봉사단이 아닌가 고민해 본다."

이것은 라온아띠 사무국 원창수 팀장의 말이다.

"1개월 국내훈련, 5개월 현지활동. 단기도 장기도 아닌 중장기형 형태의 해외봉사활동은 이제까지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성과를 바랄 수도 없고, 관리하기도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이것은 이것은 국제자원활동의 인턴십 과정이다."

이것은 국내훈련시 강의를 담당했던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이선재 청소년 팀장의 말이다.

이렇듯 자칫 '퍼주고 오면 된다'는 식의 해외원조 행렬에 올라타려 했던 한국의 인식이 다양한 형태로 벌어지고 있는 그 순간, 어떤 형태의 방법을 제시하고 싶은게 라온아띠 해외봉사단인 것이다.

 라온아띠 해외봉사단 후속모임인 공정무역 대학생 모임. 첫 번째 워크샵 때 공정무역 관련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라온아띠 해외봉사단 후속모임인 공정무역 대학생 모임. 첫 번째 워크샵 때 공정무역 관련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 고두환

라온아띠의 활동은 여전히 지속중

그래서였을까. 라온아띠에 참여했던 주체들은 현지에서 돌아온 뒤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들을 했다. 그리고 그것이 정리캠프에서 봇물터지듯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자의 이해관계와 사정에 맞추어 그 활동들이 세분화되기 시작했다. 일단 라온아띠 활동에 대한 출판작업팀, 대학생 공정무역 모임, 라온아띠 포럼, NGO 활동을 이어나가는 라온아띠 + ing 등 여러 조직이 형성되어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생 공정무역 모임의 경우, 지난 13일(금) 용인에서 첫 번째 워크샵을 가질 예정이고  다음 28일(토) 천안에서 두 번째 워크샵을 가질 예정이다. 다른 모임 역시 온라인 공간 개편과 함께 그 활동을 지속하게 될 것이다.

"더 배우고 싶고, 더 알고 싶고, 활동이 즐거워서요.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요. 이 좋은 사람들과 어떤 활동이라도 같이 해나가고 싶어요."

대학생 공정무역 모임에서 나온 말이다. 이렇듯 라온아띠 들의 활동은 여전히 지속중인 것이다.

그리고 라온아띠 2기는 부푼 꿈을 앉고 오는 3월 5일, 아시아의 8개국 45명의 대학생이 파견된다. 그들은 또 어떤 삶을 살아내고 어떤 이야기거리를 가지고 돌아올까. 이렇게 우리의 경험을 공유하고 사랑한 사람들 모두가 라온아띠(함께하는 즐거운 친구들)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2008년 7월 ~ 2009년 1월. 이렇게 KB-YMCA 라온아띠 해외봉사단 1기의 공식 일정을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동안 재주없는 글을 구독해주신 여러분께 감사 말씀을 드리며, 후속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며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을 때, 그 때마다 여러분을 다시 오마이뉴스에서 찾아뵙겠습니다. 함께하는 즐거운 친구들, 라온아띠를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혹시라도 후속활동을 같이 하고 싶으신 분들, 언제든지 연락바랍니다.



#라온아띠#KB#YMCA#해외봉사#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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