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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세운 이태조는 계룡산을 답사하고서 신도안(충남 계룡시)이 명당인 것을 알게 되어 그곳을 도읍지로 삼으려 했다. <정감록>에서도 계룡산 일대를 큰 변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예언하기도 했다.

 

지금은 시설물들이 철거되고 주변을 정리해 아예 그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지만, 한때는 신도안을 중심으로 무속 신앙과 각종 신흥종교가 번성하여 계룡산 곳곳을 그들의 수도장으로 이용했을 정도로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겼다. 나 또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계룡산을 머릿속에 그려 볼 때마다 그곳에 마치 도인들이 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에 젖어 있곤 했다.

 

지난 17일, 마침 그곳으로 산행을 떠나는 산악회 사람들이 있어 그들과 함께 계룡산 산행을 처음 나서게 되었다. 충청남도 공주시, 논산시와 대전광역시 경계에 있는 계룡산(845.1m, 鷄龍山)은 주봉인 천황봉을 비롯하여 관음봉, 삼불봉, 연천봉 등 20여 개의 봉우리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전체 능선의 모습이 닭볏을 쓴 용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계룡산이라 불렸다 한다. 또 일설에 의하면 신도안으로 이태조와 동행한 무학대사가 그 산을 가리켜 금닭이 알을 품고, 용이 날아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라고 말한 데서 계룡산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하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오전 8시에 마산을 출발한 우리 일행이 동학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 시간은 11시 20분께였다. 봄기운이 느껴지는 길을 20분 남짓 걸어가자 동학사(東鶴寺,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이르렀다. 

 

동학사에서 관음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정말이지, 지루할 만큼 돌계단이 많았다. 그래도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V' 자 형 산봉우리인 쌀개봉(829.5m)을 신기한 눈초리로 올려다보는 즐거움도 가졌고, 관음봉고개에 올라서서 계룡산 능선 아래 자리 잡은 동학사의 아늑한 풍경에 빠져드는 여유도 부렸다. 

 

쌀개봉이란 이름은 봉우리 형상이 재미있게도 디딜방아의 쌀개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졌는데 현재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다. 계룡산의 최고봉은 천황봉(845.1m)이다. 군사작전을 위한 레이더기지와 방송수신탑이 설치되어 있는 그곳 또한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고, 네 자루의 붓을 세워 놓은 듯한 문필봉도 탐방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아 출입금지구역에 속한다.

 

산의 모습이 후덕하고 자비로운 관세음보살을 떠올리게 하는 관음봉(816m) 정상에 이른 시간은 오후 1시께. 그곳에는 논산 훈련병들이 많이 올라 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관음봉과 삼불봉을 잇는 능선인 자연성릉을 향해 곧장 내려갔다. 왼쪽으로는 갑사 지구, 오른쪽으로는 동학사 지구의 경관을 즐길 수 있는 자연성릉은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다운 길이라 계룡산 산행의 백미라 할 수 있었다.

 

오후 2시 10분 남짓 되어 삼불봉(775m) 정상에 도착했다. 기다란 철계단을 올라가 삼불봉 정상에 서면 천황봉, 쌀개봉, 관음봉, 문필봉, 연천봉의 솟은 모습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눈앞에 펼쳐져 있다. 그곳에서 6분 정도 더 가면 삼불봉고개가 나오고 거기서 왼쪽으로 10분을 걸어 내려가면 금잔디고개에 이르게 된다.

 

고개 이름은 예쁘지만 어쨌든 산불로 인해 얻게 된 이름이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1960년대에 큰 산불이 났는데 나무가 죽은 자리에 억새가 돋아나면서 가을이 되면 억새풀이 노랗게 말라 있는 것이 금잔디 같다 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라 한다. 왠지 쓸쓸하게 느껴지는 금잔디고개에서 도시락을 꺼내 혼자서 늦은 점심을 했다.

 

허겁지겁 점심을 먹은 뒤 그곳에서 2.3km 떨어진 갑사를 향해 하산을 서둘렀다. 머리가 텅 빈 상태로 한참 내려가는데 징검다리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멋진 돌다리가 나왔다. 소박하면서도 낭만적인 분위기라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10분 남짓 더 걸어가자 갑사(甲寺,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백제 구이신왕 1년(420)에 고구려에서 온 승려인 아도화상이 처음 세웠다고 전해지는 갑사는 통일신라 시대에 의상대사가 1000여 칸의 당우를 중수하여 화엄도량으로 삼으면서 신라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가 되어 크게 번창했던 절이다. 승려들이 법문을 강론하거나 법회를 가졌던 강당(講堂, 충남유형문화재 제95호)이 대웅전(충남유형문화재 제105호) 앞에 위치해 있는 구조이다.

 

갑사 대적전(충남유형문화재 제106호)으로 가는 길에 공우탑(功牛塔)이 서 있다. 갑사 중창 때 큰 공을 세운 소를 기리기 위한 것으로 3층으로 이루어진 탑신과 기단부로 구성되어 있다. 1층에는 탑의 건립 내용이, 2·3층에는 탑 이름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나는 문득 김종삼의 시 '묵화'를 그 탑 앞에 바치고 싶었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김종삼의 '묵화(墨畵)' 전문

 

대적전 앞에는 고려 초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갑사부도(甲寺浮屠, 보물 제257호)를 볼 수 있는데 전체적으로 힘찬 느낌을 준다. 아랫길로 내려가면 통일신라 시대의 양식을 갖춘 철당간 및 지주(보물 제256호)도 있다. 얼마나 높게 세워져 있는지 한참이나 하늘을 올려다봐야 했다.

 

절에 행사가 있을 때 당(幢)이라는 기를 달았는데, 이 당을 달아 두는 대를 당간(幢竿)이라 하고 당간을 받쳐 세우는 기둥을 당간지주(幢竿支柱)라 한다. 갑사 철당간은 지름 50cm의 철통 24개를 이어 놓은 것으로 당간 높이가 15m 정도 되었다. 원래는 28개의 철통이었으나 고종 30년(1893)에 4개의 철통이 부러져 처음보다 낮아진 것이다.

 

지금도 나는 계룡산 자연성릉의 빼어난 경치가 잊히지 않는다. 언젠가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에 계룡산을 한 번 더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갑사 중창 때 큰 힘이 되어 준 소에 대한 고마움을 표한 공우탑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서울: 양재 I.C→천안 I.C→회덕 J.C→유성 I.C→박정자삼거리→동학사
*대구: 금호 J.C→김천 I.C→회덕 J.C→북대전 I.C→유성 I.C→동학사
*광주: 광산 I.C→논산 I.C→계룡 I.C→연화교차로→학봉리→동학사


태그:#계룡산, #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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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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