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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이명박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을 맡았던 박범훈 중앙대 총장이 23일 이명박 정부 출범 1주년 기념 초청 강연회에서 판소리 공연을 선보이며 '풍류를 알면 정치를 잘한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을 맡았던 박범훈 중앙대 총장이 23일 이명박 정부 출범 1주년 기념 초청 강연회에서 판소리 공연을 선보이며 '풍류를 알면 정치를 잘한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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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훈 중앙대 총장이 한나라당 친이(親李) 의원 모임에 가서 특강을 했다가 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박 총장은 지난 23일 한나라당 의원 연구모임인 '국민통합포럼'(대표 안상수)과 '함께 내일로'(공동대표 최병국·심재철)가 공동주최한 이명박 정부 출범 1주년 기념 초청강연회에서 '풍류를 알면 정치를 잘한다'는 주제로 특강을 했습니다.

국악을 전공한 박 총장은 이날 수십 명의 한나라당 의원들 앞에서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의원)을 소리꾼과 고수로 비유해 고수는 아첨성 추임새를 할 것이 아니라 소리꾼과 같은 운명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취지로 열강을 했습니다.

박범훈 총장 "이렇게 생긴 토종이 애도 잘 낳고 살림도 잘한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경제난에 웬 풍류 타령이냐는 비판이 나올 법도 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는 풍각쟁이(본인 표현을 빌리면 '예술하는 사람')의 입담과 쇼맨십으로 들어줄 만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이 풍각쟁이는 관객의 흥을 돋우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말에 도취해서인지 몰라도, 소리꾼으로 출연한 자신의 여제자를 가리키며 "이렇게 생긴 토종이 애도 잘 낳고 살림도 잘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혹시 거두절미한 것 아니냐는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그 대목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박범훈 총장의 부적절한 발언 기사를 국회 문방위 직권상정보다 더 비중있게 배치했다.
▲ 동아닷컴 박범훈 총장의 부적절한 발언 기사를 국회 문방위 직권상정보다 더 비중있게 배치했다.
ⓒ 동아닷컴 캡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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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코리아 (대회 하면), 이런 이쁜 아가씨들만 다 나와 가지고 고르잖아요. 진선미, 요새 그게 없어졌는지 모르겠는데, 참 그거 심사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심사하기 좋은 방법이 있어요. 그럴듯한 사람을 하나 갖다가 세워놓고 옆에다 못난이를 갖다놓으면 금방 이쁘게 보여.

원래 요렇게 생긴 토종이 애기 잘 낳고 억척스럽게 살림 잘하는 스타일이죠. 이제 음식도 바뀌고 해서 요즘엔 키가 큰데 (여제자를 가리키며) 이쪽이 토종이고 표본이라면 저야 이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닙니까. 요새 뭔가 우리 때와는 음식이 달라서 길쭉해지고 했는데 사실 요 (조그만 게) 감칠맛이 있고, 이렇게 조그만 데 매력이 있습니다. 시간상 제가 자세하게 여러 가지 내용을 설명 못 드리겠는데..."

여성의 상품화 혹은 여성 비하라는 느낌을 갖기에 충분한 부적절한 발언이었습니다. 더구나 이 비교육적 발언의 당사자는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의 총장이었습니다. 본인은 정작 "시간상 제가 자세하게 여러 가지 내용을 설명 못 드리겠는데…"라고 아쉬워했습니다만, 사실 더 자세하게 여러 가지 내용을 설명했더라면 더 큰일 날 뻔했습니다.

처음 발언 내용을 접했을 때 떠오른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마사지걸' 발언이었습니다.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에 중앙일간지 편집국장 10여 명과 저녁식사를 하는 도중에 한 "(태국에서) 마사지걸을 고를 때는 못생긴 여자를 고르는 것이 서비스가 좋다"는 발언 말입니다.

박 총장은 지난 대선 전에는 이명박 후보 캠프의 문화예술정책위원장을 맡았고, 대선 이후엔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을 맡아 활동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른바 '폴리페서' 논란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유유상종이요,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당시 박 총장의 강연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처음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루 뒤도 아니고 이틀 뒤에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연합뉴스를 필두로 해서 조선닷컴과 동아닷컴이 이 기사를 대서특필한 것입니다.

조선 톱1, 동아 톱3... 뒤늦게 이 기사를 키운 까닭은?

조선은 이날 국회 문방위 언론관계법 기습상정이라는 빅뉴스가 있음에도 박범훈 총장의 부적절한 발언을 더 비중있게 배치했다. 이 기사는 톱1에 배치돼 있다가 톱3으로 내려왔다.
▲ 조선닷컴 조선은 이날 국회 문방위 언론관계법 기습상정이라는 빅뉴스가 있음에도 박범훈 총장의 부적절한 발언을 더 비중있게 배치했다. 이 기사는 톱1에 배치돼 있다가 톱3으로 내려왔다.
ⓒ 조선닷컴 캡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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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대 총장, 여 제자에 "감칠 맛 있다" 발언 물의)은 큼지막하게 머리기사로 앉혔고, 연합 기사를 전재한 동아(여제자 가리키며 "이런 토종...감칠맛 있다"- 박범훈 중대총장, 공개강연서 부적절한 발언) 역시 톱에서 세 번째로 비중 있게 배치했습니다. 특히 이날은 국회 문방위 언론관계법 기습상정이라는 빅뉴스가 있음에도 두 언론은 이 가십성 기사를 더 비중있게 배치했습니다.

사실 기사 내용이야 대동소이합니다. 다들 "중앙대 박범훈 총장이 한 강연회에서 자신의 여성 제자를 가리키며 모욕감을 느낄 수 있는 발언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빚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생각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조인스닷컴도 이 사안을 다루긴 했지만, 조선-동아가 이 기사를 각각 톱1과 톱3으로 왜 이렇게 주요하게 배치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25일자 중앙일보를 펼쳐본 순간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중앙일보는 이날 센터폴더면(14~15면)의 양 날개에 박범훈 총장과 박용성 이사장 사진을 앞세운 중앙대 이미지 광고를 큼지막하게 실었습니다. 업계에서 센터폴더 광고는 1면 광고 못지않게 센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불황기에 대학이 이런 광고를 실었으니 신문사로서는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날자 조선-동아에는 이 고마운 광고가 실리지 않았습니다. 조선-동아가 이렇게 정색을 하고 키운 것은 혹시 '올커니, 너 잘 걸렸다, 이참 한번 당해봐라' 이런 심보가 작용한 것은 아닐까요?

뒤늦게나마 사회적 유명 인사의 저급한 성 의식에 확대경을 들이댄 것은 언론으로서 당연하면서도 고마운 일이지만 말입니다.

25일자 중앙일보 센터폴더면에 실린 중앙대 이미지 광고.
▲ 중앙일보 중앙대 광고 25일자 중앙일보 센터폴더면에 실린 중앙대 이미지 광고.
ⓒ 중앙일보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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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박범훈, #토종이 감칠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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