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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새가 새끼를 치고 사는 것을 바로 옆에서 보고 살았다는 이예순(96) 할머니.
황새가 새끼를 치고 사는 것을 바로 옆에서 보고 살았다는 이예순(96) 할머니. ⓒ 이재형

 

천연기념물 199호이며 세계적 보호종인 황새. 60여년전만해도 우리나라 농촌마을 어귀에서 사람들과 가까이 둥지를 틀고 함께 살았다는데…. 동서양을 통털어 행복, 고귀, 고결, 장수를 상징하는 황새를 이젠 볼 수 없다.

 

다행히 (사)황새복원센터와 국회환경포럼, 농어촌사회연구소가 황새복원에 나섰고, 57마리로 증식한 황새를 자연의 품으로 돌려 보내기에 앞서 실시한 연구결과 예산군이 최적지라는 발표가 나왔다.

 

이 참에 '황새번식지' 비석이 있는 예산군 대술면 궐곡리를 이우재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이사장과 함께 찾았다. 그리고, 황새번식지 비석이 있는 곳에서 20여미터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이예순(96) 할머니를 만나 황새가 살았던 시절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세계적 보호종인 된 황새가 살던 시절, 활머니의 구술을 재구성한다.

 

"내가 여기루 시집와 애 낳고 살 때 그러니께 큰애가 5살 무렵이었는데, 그 때 본 황새기억이 지금도 생생혀. 여기 비석이 있는 자리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었는디, 황새 두마리가(할머니는 '학'이라고 말했다) 나무 가쟁이를 물어다 큰 둥지를 짓고 알을 낳대. 그 알이 어떻게 생겼냐믄 부엉바위 쪽으로 올라가서 보면 둥지안이 보였는데 비누같이 하얗고 둥그런 모양이었어.

 

어느날 보니 하얀털을 가진 새끼 두마리가 알에서 깨어더니, 어미 아비 황새가 번갈아가며 우렁과 물고기를 물어다 새끼를 키우대. 얼마나 정성스런지, 한마리가 둥지를 지키면 한마리가 먹이를 잡아오고 꼭 한마리는 둥지를 지켰지. 새끼가 어느정도 크니께 어미가 날개를 커다랗게 벌려서 새끼를 공중으로 날아 오르게 하며 나는 연습을 시키는 모습도 봤어. 새끼가 제대로 날지 못하고 떨어지면 날개로 받아서 다시 공중으로 날려 보내곤 했는데, 그 모습이 하도 보기좋아 멀리서까지 구경들을 오곤 혔지.

 

근디, 그러던 어느날 밤, 황새 새끼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어. 그 당시에 황새 새끼를 팔면 큰 돈을 번다는 소문이 돌았는디, 아마도 외지인들의 소행이었던게 분명혀. 그러고 났는디 그날부터 어미, 아비황새가 새끼를 찾아 며칠을 울어대는거라. '딱딱딱딱' 거리며 우는 소리에 밤새 동네가 떠나갈 것 같았어. 얼마나 애타게 새끼를 찾는지 내가 다 눈물이 났으니께. (황새는 학이나 다른 새들과 같이 목으로 울지 않고 부리를 부딪쳐 소리를 낸다. 할머니가 황새 울음소리를 흉내내는 것을 볼 때 당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며칠을 그렇게 새끼 찾으며 울던 황새가 다시 알을 낳고 새끼를 깠는데, 우리집 양반이 "못된 놈들이 또 새끼 훔쳐가면 안된다"며 가시철망을 사다가 소나무에 칭칭감아 놓더라구.

 

그러구는 황새는 전처럼 번갈아 먹이를 물어다 정성껏 새끼를 키우대. 새끼가 나는 연습을 할 때는 또 곁에서 날개를 활짝 펼쳐 날다 떨어지는 새끼를 으며…. 참 보기가 좋았어.

 

근디 또 새끼가 사라진 거여. 밤새 가시철망을 다 끊어내고 새끼를 훔쳐가 버린 거지. 황새 어미는 또 새끼를 찾아 밤새 딱딱거리며 울구. 며칠을 그렇게 동네가 떠나갈 듯 울어대더니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어. 동네사람들이 다 기다렸는데 황새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어. 그리구 몇해 지나서 우리집 양반이 잠깐 어디 좀 다녀온다고 나갔는데 집에 오질 않았어. 난리(한국전쟁)가 터졌는디 그때 나간 우리집 양반은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는겨.(할머니의 눈빛이 흐려졌다)

 

그뒤에 황새가 둥지를 틀었던 아름드리 소나무는 재목으로 팔렸고, 그 밑둥으로 만든 절구통이 이거여.(할머니 헛간에 자리하고 있는 손때묻은 절구통을 가리키여 얘기했다) 비석 한개는 황새가 떠나고 얼마 안 있다 일본사람들이 세웠구, 또 하나는 해방되구 나서 도청에서 나와서 세운거여"

 

 황새번식지 표석 앞에서 기념촬영. 사진 왼쪽부터 김중철(이예순 할머니의 아들), 이예순 할머니, 장석주(대술면장), 이우재(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이사장), 강희춘(생명창고지역사회 추진회원)씨이다.
황새번식지 표석 앞에서 기념촬영. 사진 왼쪽부터 김중철(이예순 할머니의 아들), 이예순 할머니, 장석주(대술면장), 이우재(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이사장), 강희춘(생명창고지역사회 추진회원)씨이다. ⓒ 이재형

 

한편, 예산군이 황새 서식지 복원에 있어 전국에서 최적지라는 연구발표가 난 뒤 대술 궐곡리에 있는 '황새(鸛)번식지' 표석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대술 궐곡1리 김중철씨댁 옆산에는 황새(鸛)번식지 표지석이 온전히 보존돼 있다. 이 비석은 두개로 한개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황새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전면에 '천연기념물 제99호 예산 황새번식지'라고 쓰여있다. 나머지 하나는 해방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같은 내용으로 세웠다.

 

재미있는 사실은 비석에 새겨진 '鸛蕃息地(관번식지)'란 글귀 가운데 앞자인 황새 '관'자를 학(鶴)자로 잘못읽어 마을에서는 황새를 학으로 잘못알고 '학'으로 구전되고 있었다.

 

 황새가 둥지를 튼 영소목이었던 소나무가 절구통으로 남아있는 모습.
황새가 둥지를 튼 영소목이었던 소나무가 절구통으로 남아있는 모습. ⓒ 이재형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에서 발행하는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에도 실렸습니다.


#황새#황새새끼#황새번식지#황새비석#이예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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