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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살인정권 규탄과 MB 악법저지 전국 노동자 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용산철거민참사의 진상규명과 비정규직법, 최저임금법 개정 저지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2월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살인정권 규탄과 MB 악법저지 전국 노동자 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용산철거민참사의 진상규명과 비정규직법, 최저임금법 개정 저지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나의 삶의 유일한 낙은 식(食). 의식주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식(食). 지금 그 식(食) 해결 안 돼 이런 식으로 난 못 살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 (DJ DOC 5집에 수록된 'DJ Blues' 중)

지난 2000년에 발매됐던 인기 그룹 DJ DOC의 노랫말이 9년 만에 현실이 됐다. 2월 26일 기획재정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1월 식료품의 전년 동월대비 가격 상승률은 10.5%. 일반 서민 처지에서는 위의 노랫말만큼이나 절박한 수준이다. 물가 중에서도 특히 식료품의 가격 상승률이 높아 곡물과 육류가 각각 10.3%, 14.1% 올랐고, 낙농품과 유지류의 가격은 각각 23.9%, 24.1% 상승했다.

외식 품목은 더하다. 삼겹살(11.6%), 라면(12.7%), 김치찌개백반(8.0%) 등이 전년 동월대비 10%가량 상승했고, 김밥은 21.6%, 아이스크림은 30% 이상 올랐다.

그에 반해 임금은 되레 깎이는 추세다. 지난달 25일 전경련 산하 30대 대기업은 정부가 시작한 신입 및 기존 직원의 임금 동결과 삭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잡셰어링)에 동참할 뜻을 밝혔다. 이번 조치로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이 최대 28%까지 깎이게 된다.

또한 국회에 계류 중인 김성조 한나라당 의원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고령노동자의 임금감액, 외국인 노동자 임금에서 식비·숙박비 제외 등 경제 취약계층의 임금 삭감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대로 개정될 경우 서민 생활에 미치는 파급력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모든 이가 어렵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의 사정은 유난히 좋지 않아 보인다. 대한민국에서 '먹고'사는 것은 세계 기준과 비교해 봤을 때 어떤 수준일까.

2009년, 물가는 '한국'만 높다

연초 주요 선진국들의 물가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유럽연합(EU) 통계 기관인 유로스탯(Eurostat)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보다 1.2% 상승했다. 일본의 1월 전국 소비자 물가지수(CPI) 또한 전년 대비 비슷한 수준.

특히 미국의 지난 2008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4년만의 최저치였다. 이러한 낮은 물가 인상률은 세계적인 경제 위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경제가 나쁘기 때문에 소비 심리가 위축되어 물가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사정은 다르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에 비해 4.1% 상승했다. 유독 한국만 오른 것이다.

물가에 가장 민감한 것은 주부들이다. 이들에게 물가 상승은 단순히 수치에 그치지 않고 피부로 다가온다. 전업 주부 4년차인 이경란(28)씨는 "물가가 너무 비싸서 마트에 가면 뭘 사기가 겁이 난다"며 "가족들이 우유를 좋아하는데 우윳값이 가장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파주에 사는 최선심(53)씨도 "식료품 물가가 너무 올라 살  맛이 안 난다"며 "점점 밑반찬 위주로 살림하게 된다"고 말했다.

 Daum 아고라에 올라온 고물가 관련 글
Daum 아고라에 올라온 고물가 관련 글 ⓒ Daum

사회 전반적인 고물가 분위기를 반영하듯 다음 아고라에도 높은 물가를 성토하는 토론 게시물이 부쩍 늘었다. 닉네임 '황금물고기'가 쓴 <대체 자장면값이 왜? 이렇게 비싼가요???>, 닉네임 'san_tiago'가 올린 <바나나 값 폭등.."하루 단위로 계속 오를겁니다"> 등 유명 게시물에는 수백 명의 누리꾼이 "말 그대로 살인물가죠", "이러다가 쌀만 먹겠어요" 등의 댓글을 달며 적극적으로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경비 최저임금 3200원, 한 시간 일해서 햄버거도 못 사

2009년 1월 1일부터 한국에서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시간당 4000원이다. 그러나 노동부장관의 승인을 얻은 아파트 경비원 등 감시 단속직 노동자에게는 일반 노동자 최저 임금액의 80%인 3200원이 적용된다.

시간당 4000원의 최저임금은 국제 기준과 비교해서 어느 정도 수준일까.

 2008년 GDP기준 주요국의 최저임금(2008)과 빅맥 가격(2009. 2. 4).
2008년 GDP기준 주요국의 최저임금(2008)과 빅맥 가격(2009. 2. 4). ⓒ 최저임금 위원회, 김동환

위 표는 2008년도 GDP 기준 세계 주요국가의 최저임금과 해당 국가의 빅맥 햄버거 가격을 나타낸 것이다. 한국에서 최저임금으로 일하면 한 시간 일해서 겨우 버거 하나를 살 수 있는데 반해, GDP수준이 비슷한 호주와 네덜란드는 물론, 절반 수준인 벨기에조차도 한국보다는 노동자들이 훨씬 더 구매력이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들도 이러한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에 다소 충격적이라는 반응이었다. 서울에서 3년째 어학공부를 하고 있는 미국인 저스틴 스피노자(26)씨는 "1시간에 4천원으로 정말 생활이 가능하냐"고 반문하며 "미국 최저임금(minimum wage)이 평균 7불 정도인데 서울에서 살려면 시간당 8천원은 받아야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캐나다에서 온 톰 샌더슨(27)씨도 "너무 적다"며 "나는 서울에서 그렇게는 살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시간당 4천원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김성조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해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60살 이상 고령자에겐 최저임금을 감액해서 지급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현재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5%로 OECD국가 중 최고 수준. 최저임금법이 개정되면, 31%로 노인빈곤율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아일랜드와 격차는 더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OECD 노인빈곤율 통계
OECD 노인빈곤율 통계 ⓒ OECD

또한 이번 개정안은 '숙박·식사비를 최저임금에서 공제', '수습 노동자 최저임금 감액 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 등의 내용도 담고 있어 최저임금 노동자 중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하는 외국인 노동자나 학생들의 실질 임금이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먹고사는 데 집중하자', 엥겔계수도 올라

물가는 비싼데 일하고 버는 돈은 적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4년 만에 엥겔계수도 올랐다. 엥겔계수란 가계의 총 지출액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 엥겔계수가 높다는 것은 수입의 대부분을 먹는 데 지출한다는 뜻으로, 그만큼 생활에 여유가 없다는 의미다.

지난해 2인 이상 전국 근로자가구의 엥겔계수는 25.4%로 2007년에 비해 0.2%포인트 상승했다. 여기에 올해 들어, 벌써 1월에만 10만 개의 일자리가 증발했다. '잡셰어링'이라는 이름으로 깎이는 신입 및 기존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분까지 감안하면, 당연히 올해의 엥겔 계수는 지난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보인다. 즉, 간신히 입에 풀칠하는 데 급급한 서민들의 숫자는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난 한 달 동안 국회와 정부가 뭔가 내놓은 거라고는 날치기될 뻔한 미디어법과 금산분리완화법 뿐이다. 그 사이(2월 1일부터 3월 3일) 원-달러 환율은 11.65% 상승했다. 한국은행의 산업연관표(2005)에 따르면 환율이 10% 상승할 때 물가가 2.62% 상승하는 파급효과가 있다고 한다. 안 그래도 치솟은 물가 때문에 허덕이는 가운데 서민들은 속수무책으로 한 달 동안 통계에 보이지 않는 2.6% 이상의 물가 부담을 더 떠안게 된 셈이다.

2009년. 한국 경제는 아래로부터 이렇게 무너져가고 있다. 휘청거리는 서민 경제를 지탱해줄 국가적인 장치가 시급한 때다.


#최저임금#고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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