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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1월 31일 새벽, 캄보디아 출신 결혼이주 여성이 남편에게 칼로 상해를 입혀 사망케 한 사건이 대구에서 발생했다.

현재 살인죄로 기소된 ㅊ(18)씨의 구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공동대책위원회는 5일 서대문 기장선교원 기자회견장에서 탄원서를 통해 '한 여성의 남편으로 평안한 생을 마감하지 못한 남편의 어이없는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하며, 공포심에 저지른 한 순간의 실수로 남편을 살해했다는 평생 씻을 수 없는 낙인을 안고 살아야 할 ㅊ씨에 대한 선처'를 호소했다. 

각국어로 탄원하는 내용들이 적혀 있다.
▲ 가정폭력 피해 이주여성 구명운동 기자회견 현수막 각국어로 탄원하는 내용들이 적혀 있다.
ⓒ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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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경과보고를 한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대표 강혜숙)에 의하면, 지난 1월 30일 밤늦게까지 남편이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술을 계속 마시자, ㅊ씨는 남편에게 '빨리 집에 가자'고 재촉했고, 이에 기분이 상한 남편이 귀가길 택시 안에서 구타를 시작했으며, 폭력은 집에 도착해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한편 ㅊ씨는 남편의 구타와 위협이 심해지자 칼로 남편을 찔렀고, 병원으로 후송된 남편은 2월 4일 끝내 사망했다.

이에 대해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는 '임신 중이던 여성이 너무 두려운 나머지 자신과 뱃속의 아이를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칼을 들고 있다가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으로 '이처럼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녀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할지라도 결코 칼을 드는 행위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며 거듭 선처를 호소했다.

공대위측은 탄원서를 통해 이 사건이 "국제결혼 가정에 있어서는 물리적 폭력의 심각성과 더불어, 그보다 많은 여성들이 심적이고 무형적인 폭력의 공포 앞에서 떨며 지내는 현실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런 폭력에 대한 안일한 사고, 협소한 인식, 부부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사회의 인식 부족과 책임성 부족이 바로 오늘과 같은 이런 비참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한편 2007년 여성부의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의하면 결혼이주여성들 중 17.7%가 물리적인 가정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남편의 폭력으로 사망했던 베트남인 '후안마이' 사건은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잘 드러나게 한 사건이다.

당시 후안마이 사건에 대한 항소심 판결문은 비록 법의 잣대는 사건의 결과를 놓고 따지는 것이며 범행과정이나 사건의 동기가 전체 행위의 정당성을 확보해줄 수는 없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이번 사건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기자회견에 함께 한 결혼이주여성들이 탄원서에 서명하고 있다.
▲ 탄원서명하고 있는 결혼이주여성들 기자회견에 함께 한 결혼이주여성들이 탄원서에 서명하고 있다.
ⓒ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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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미숙함의 한 발로일 뿐이다. 노총각들의 결혼대책으로 우리보다 경제적 여건이 높지 않을 수도 있는 타국 여성들을 마치 물건 수입하듯이 취급하고 있는 인성의 메마름. 언어문제로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하는 남녀를 그저 한 집에 같이 살게 하는 것으로 결혼의 모든 과제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무모함. 이러한 우리의 어리석음은 이 사건과 같은 비정한 파국의 씨앗을 필연적으로 품고 있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21세기 경제대국, 문명국의 허울 속에 갇혀 있는 우리 내면의 야만성을 가슴 아프게 고백해야 한다."

또한 사람의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라는 생명 존중의 가치를 인식한다면, 예방적 차원에서라도 가정폭력을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려는 우리 사회의 인식을 개선하려는 노력들이 선행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태그:#가정폭력, #캄보디아, #결혼이주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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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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