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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살에 글을 쓰기 시작해서 38살이 되던 해 그동안 쓴 작품들을 살펴보니까 쓰레기통에 들어갈 것들 밖에 없었습니다. 분단을 소재로 하긴 했지만 국가보안법이 허용한 범위 내에서 썼던 것들이라 말하자면 반공문학이라고 할 수 있었지요. 나이 마흔을 바라보면서 다 버리고 새롭게 구상해서 하자고 각오하고 쓴 것이 <태백산맥>이었습니다."

 

'분단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대하소설 <태백산맥>(해냄) 200쇄 돌파 기념으로 소설가 조정래씨가 독자들과 만났다. 그는 5일 오후 3시 <오마이뉴스>가 주최한 '독자와의 대화'에 참석해 약 1시간 30분 동안 <태백산맥>과 자신의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노작가는 먼저 독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밝혔다. 조정래 작가는 "<태백산맥>이 200쇄를 넘게 된 것도, 국가보안법의 서슬이 파랬던 시절 처벌받거나 판금 되지 않은 것도 모두 독자들의 힘이었다"며 "독자들이 만들어준 행복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태백산맥>이 무탈했던 건 독자들의 힘"

 

"<태백산맥>을 쓸 때 엉덩이에 곰팡이가 폈다"던 일화가 방증하는 조 작가의 치열했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1983년 <태백산맥> 연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머리카락 하나 안 빠진 나이였습니다. <태백산맥>을 쓴 다음 그 이전 시대를 이야기하기 위해 <아리랑>을 썼고 그 이후 시대를 이해시키기 위해 <한강>을 썼습니다. 우리의 역사가 쓰라리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해야 할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글을 쓰면서 내 몸이 조각조각 가루가 돼서 땅속으로 스며들어가버리는 고통을 느끼면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새벽에 집을 폭파하겠다는 협박도 매일 받았지요. 오죽하면 유서를 2통이나 썼겠습니까. 그래도 작가로서 책무를 다하기 위해 그렇게 쓰고 또 썼습니다. 그러고 나니 늙고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렸지요."

 

조 작가는 "요즘 젊은이들은 대하소설 3개를 썼던 20년 동안 무슨 재미로 살았나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을 텐데 그게 작가의 삶인 것 같다"며 "그래도 '책장을 넘기기 아까워 아껴가며 읽었다'는 독자들의 극찬을 들으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자부심도 나타냈다. 그는 "보통 대하소설은 후반부로 갈수록 지루하다는 소리를 듣기 쉬운데 <태백산맥>은 원래 12권 쓰려던 것을 10권으로 줄이면서까지 압축해서 빠르게 전개한 덕분에 지루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다"며 "또 지리산을 12번 오르고 지구를 아홉 바퀴 반을 도는 자료조사를 한 덕분에 100년이 넘는 역사를 3권의 대하소설로 써내고도 역사학자들로부터 한 번도 책을 잡히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이 대통령 남북합의 이행하겠다고 한 건 잘한 일"

 

조 작가는 이명박 정부 들어 크게 악화된 남북 관계에 대해서도 큰 우려를 나타냈다.

 

"남북한이 소모적인 대립을 해서는 안 됩니다.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간 합의 사항을 이행하겠다고 했는데 잘한 것입니다. 국민의 78%가 대북정책이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있으니 태도를 바꾸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북한도 이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전쟁과 같은 극단적 발언이나 감정적 발언을 자제해야 합니다."

 

그는 "전쟁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현재 남북관계가 험악해 졌다"며 "6·25때보다 병력과 화력이 100배가 된 지금 전쟁이 일어난다면 2000만명이 죽을지 3000만명이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전쟁은 누구도 용납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4대 강국이 주변에서 힘을 쓰고 있는 한 통일이 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불구가 될 수밖에 없다"며 단계적 통일론도 제시했다.

 

"통일은 경제적 연합, 문화적 화합, 정치적 통합, 이 3단계를 거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 연합을 하려면 개성공단 하나로는 안됩니다. 서해안과 동해안에 각각 5개씩 10개의 공단을 더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산아시안게임 때 북한 응원단 기억나시죠? 정치가 막았던 60년 세월의 서먹함이 사라지는데 3일밖에 안걸렸습니다.

 

왜 동남아에서 신부들을 데려옵니까. 남쪽 남자와 북쪽 여자가 결혼하면 서로 사위가 북쪽의 처가에도 갈테고 북쪽에 있는 장인장모가 남쪽으로 사위 보러 오지 않겠습니까. 그런 과정을 20~30년 거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치적 통합도 이루어지겠지요."

 

"네번째 대하소설은 능력 있는 후배들에게 맡기는 게 도리"

 

이날 '독자와의 대화'에서는 네 번째 대하소설을 써달라는 독자의 요청도 나왔다. 하지만 조 작가는 양해를 구했다.

 

"돈 욕심만 탐욕이 아니라 일 욕심도 탐욕인 것 같습니다. 이제 대하소설은 능력 있는 후배들에게 맡기는 게 제가 할 도리지요. 네 번째 대하소설을 쓰다가는 그 '네 번째'가 죽을 '사'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웃음) 체력도 예전 같지 않고 살살 쓰면서 오래 살랍니다. 용서하십시오."

 

조 작가는 이어 "길어야 두 권짜리나 한 권짜리 장편 소설을 2년 정도 간격을 두고 발표하면서 앞으로 10년을 채울 것"이라며 "현재 소재를 점검하면서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조 작가는 이날 행사가 모두 끝난 후 참석자들이 가져온 <태백산맥><아리랑><한강>에 일일이 사인을 해주며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조정래#태백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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