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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량면 해평리 석장승과 당산나무
 득량면 해평리 석장승과 당산나무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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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집에는 중문(中門)이 없었다고 느꼈을까?

전남 보성 득량만 강골마을. 내가 속한 모임에서 6월에 1박2일 여행일정을 잡는데 아이들이 간단한 갯벌체험을 하게 하는 것이 어떨까 해서 찾아보던 중 <안개 자욱한 녹차밭과 전통한옥에서의 불편한 하룻밤>이라는 '이상한'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옥체험을 하면 불편한 잠자리와 특히 '푸세식' 화장실에서 손을 들어버리는 것이 요즈음 아녀자들인데 재래식 화장실마저도 원하면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올려진 사진을 보니 동네 골목길, 정자, 사람이 사는 한옥 들이 은근히 사람을 끄는 매력을 가지고 있어 사전답사를 빌미삼아 나 혼자라도 한번 들러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여러 형태로 담을 쌓아 놓았다. 가운데 지그재그로 쌓은 것이 하멜식 담장쌓기이다.
 여러 형태로 담을 쌓아 놓았다. 가운데 지그재그로 쌓은 것이 하멜식 담장쌓기이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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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욱 가옥

득량면 해평리 석장승께 문안인사를 드리고 마을회관 앞에 차를 주차시킨 뒤 제일 큰집 쪽으로 어슬렁거리며 걸어간다. 길가 담장에 강진 병영성의 하멜식 담장쌓기 방식이 혼입되어 있는게 눈에 띈다. (하멜이 강진 병영에 억류되어 있는 동안 그 일행들과 담장을 쌓았는데 그들 방식대로 빗살무늬처럼 돌을 지그재그로 쌓았다하여 하멜식 담장쌓기라 한다.) 학이 양 날개를 들고 비상하려는 모습을 지닌 커다란 솟을대문 앞으로 가니 문은 열려 있는데 문짝에 무단출입하면 엄단한다 적혀있고 전화번호가 써있다. 

무단출입시 엄단한다고 적혀있다. 전화를 하니 마을 운영위운장인 이정민씨가 쫓아나와 친절히 설명해준다.
 무단출입시 엄단한다고 적혀있다. 전화를 하니 마을 운영위운장인 이정민씨가 쫓아나와 친절히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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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흔적
 세월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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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하고 열려진 문으로 들여다보니 넓직한 마당에 단정하게 배치되어 있고 대문짝은 무른 나무결이 침식되어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이윽고 점퍼차림에 카메라를 걸친 중년남자가 나타나 우리를 이끌고 들어가며 자상하게 설명을 해준다.(이 분은 마을운영위원장 이정민씨로 체험프로그램을 총괄하고 있다. 010-6211-5777)

안채. 가옥의 구조 곳곳에 여성들에 대한 배려가 눈에 띈다.
 안채. 가옥의 구조 곳곳에 여성들에 대한 배려가 눈에 띈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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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은 딸이 살던 방이고 저 방은 노부인이 살던 방인데 문지방 턱이 높이가 서로 다르지요? 머슴들이 마당에 서있어도 방안이 보이지 않도록 눈높이와 맞춘 것입니다. 마나님 방은 왜 턱이 한단 낮으냐구요? 그거야 나이가 있잖아요. 저기 저 담장이 저 부분만 높이가 낮은 이유가 뭘까요? 마나님이 방에 앉아있어도 누가 들고나는지 쉽게 볼 수 있게 만든거지요."

장독대도 웬만한 큰 절 규모가 된다.
 장독대도 웬만한 큰 절 규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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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문과 돌쩌귀와 문지방 여유로운 모양만으로도 풍성한 노마님의 인심이 느껴진다.
 부엌문과 돌쩌귀와 문지방 여유로운 모양만으로도 풍성한 노마님의 인심이 느껴진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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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구라빨' 유홍준씨 뺨치는 너스레를 떤다. 사람이 사는 집에는 온기가 있다. 이용욱 가옥이 그렇다. 1800년도에 지었으니 골동도 그만한 골동은 없겠지만 이렇게 사람이 있어 애정을 갖고 쓸고 닦고 말을 걸어주니 집이 토라져서 혼자 새침해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집안 곳곳에 곳간이 있는데도 따로 이렇게 4칸씩이나 되는 곳간채가 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누가 말했던가?
 집안 곳곳에 곳간이 있는데도 따로 이렇게 4칸씩이나 되는 곳간채가 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누가 말했던가?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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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은 바깥주인을 위한 공간보다는 안주인을 위한 공간이 집안을 압도한다. 집안 구석구석 곳간이 있어도 곳간채가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4칸을 가로질러 처마 밑에 굵은 대나무가 걸려있다. 이정도 살림살이를 유지하려면 가을에 말려야할 것도 많을 것이다. 부엌은 안채와 사랑채에도 하나씩 있고 안마당에 우물이 하나, 집 바깥에도 하나가 있다. 바깥 공동우물이 길가에서 담장이 쳐진 좁은 골목처럼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을 보니, 원래 이집 마당에 있던 것을 마을사람들이 이용하게 한 배려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담의 구조로 보아 원래 집안에 있던 우물을 마을사람들이 쓸 수 있게 만들었다. 왼쪽 담장의 작은 구멍은 소통을 위한 구멍인데 곁에 사랑채가 있다. 마을아낙과 얘기가 통할려면 마당쇠가 적격이었을 것이다.
 담의 구조로 보아 원래 집안에 있던 우물을 마을사람들이 쓸 수 있게 만들었다. 왼쪽 담장의 작은 구멍은 소통을 위한 구멍인데 곁에 사랑채가 있다. 마을아낙과 얘기가 통할려면 마당쇠가 적격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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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보니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선자연을 한 팔작지붕이면서도 추녀가 들리지 않아 지붕모양은 마치 일본식 주택을 보는 것 같다. 가까이 보니 안채에는 갈모산방이 없고 사랑채는 갈모산방을 갉아 먹었다. (갈모산방은 긴 삼각형의 부재로 지붕 네귀퉁이 추녀를 들어 올려 주는 역할을 해서 그 때문에 지붕선 양쪽이 살짝 들린 모양을 하게 된다.) 짐작컨대 원래 초가지붕인 안채와 사랑채를 고치면서 갈등이 있었나 보다. 그냥 원래대로 초가지붕을 하면 되는데, 그것을 멋지게 기와를 올리자고 하니 억지로 추녀를 들어 올려 원형을 망칠 수도 없고 기와를 얹히지 않을 수도 없고, 양쪽 말을 들어주니 어정쩡한 모습이 되었나 보다.
마을에는 이런 작은 골목이 많다.
 마을에는 이런 작은 골목이 많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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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안채와 사랑채를 구획 지어주는 중문과 담장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객이 섭섭지 않도록 끌어안는 주인 마님의 큰 손길이 아직도 느껴져서일까?

느긋하게 걷고 싶은 길. 신식말로 '슬로우 시티'라는 것.
 느긋하게 걷고 싶은 길. 신식말로 '슬로우 시티'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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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정

큰 마을은 아니지만 마을길은 아담하다. 요샛말로 '슬로우 시티'라고 하나? 진흙길도 있고 시멘트 포장길도 있고 돌을 깔은 길도 있고 좁은 갈래길도 있다. 그 길을 따라 담장너머 탱자나무너머 남의 채마밭도 구경하고 매화꽃도 구경하며 잠시 오르면 열화정(悅話停)이 나타난다. 개방된 공간이 아니라 대문을 지나야 한다. 그러나 대문은 폐쇄된 공간을 이루는 문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이정표에 불과하다.

담이 있다하여도 한쪽은 뚫려 있으니 대문은 그저 통과의례일 뿐이다. 삿갓을 쓴듯한 돌이 연못 바깥과 속에 마주보고 있어 사람이 없어도 있는 느낌이다.
 담이 있다하여도 한쪽은 뚫려 있으니 대문은 그저 통과의례일 뿐이다. 삿갓을 쓴듯한 돌이 연못 바깥과 속에 마주보고 있어 사람이 없어도 있는 느낌이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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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장 정자로 오르지 않고 주위를 빙 돌아본다. 정방형의 연못은 죽은 연못이 아니라 물이 흘러들어 오는 살아있는 못이다. 부석사 무량수전 곁 삼층석탑 앞에 화사석(불을 넣어 두는 석구조물)과 중대석이 없어 마치 김삿갓이 삿갓을 쓰고 멀리 가야할 길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석등을 볼 수 있는데  여기는 그런 모양의 돌을 연못 한가운데 다른 하나는 정자와 연결선 상의 연못 바깥에 배치해놓아 사람이 없어도 사람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화계(花階). 화초가 없어도 커다란 동백이 있어 붉은 꽃을 흩뿌리니 그것만으로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화계(花階). 화초가 없어도 커다란 동백이 있어 붉은 꽃을 흩뿌리니 그것만으로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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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계(꽃밭계단)가 아름답다.  커다란 동백나무가 심어진 화계는 별다른 화초가 없어도 떨어진 동백꽃만으로도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마당에서 반사된 빛으로 처마밑이 따사하다.
 마당에서 반사된 빛으로 처마밑이 따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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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선교장의 열화당도 누각이 있고 이 열화정에도 누각이 있어 사랑채 같은 역할을 한다. 대체 강릉과 강골에서는 서로 무슨 살뜰한 이야기들이 오고갔을까?

주위가 나무와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도 마당과 연못에 반사된 빛으로 누각은 환하다. 누마루에 올라서니 오솔길 사이로 멀리 오봉산이 보이고 대나무 숲의 속삭이는 소리와 동백꽃 향이 스며드는 듯하다.

이렇게 작은 규모로 아름다운 배치로충만된 정원은 쉽지 않을 것이다. 자꾸만 뒤에서 나를 잡는 것 같다.
 이렇게 작은 규모로 아름다운 배치로충만된 정원은 쉽지 않을 것이다. 자꾸만 뒤에서 나를 잡는 것 같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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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길이 멀어 마음이 급해지니 아쉬움을 남기고 발길을 돌릴 소밖에 없다. 뒤에서는 '아-따 자네 와분지 월매나 되어뿌럿다고 요로코롬 싸게 가능가?'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닥.다.리.즈.포.토.갤.러.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강골마을, #이용옥가옥, #열화정, #득량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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