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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등에 짊어진 배낭의 무게 만큼이나 심신에 지친 사람들이 법계의 시작을 알리는 법계사 일주문으로 들어섭니다.
 등에 짊어진 배낭의 무게 만큼이나 심신에 지친 사람들이 법계의 시작을 알리는 법계사 일주문으로 들어섭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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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많이 불편합니다. 호구지책이라도 마련해 달라고 발버둥 치던 사람들이 불구덩이에서 죽어야하는 참사를 지켜봐야 하는 세태에 마음 답답하고, 스스로의 목숨을 등 떠밀리듯 포기해야 했을지도 모를 한 연예인의 죽음과 죽음으로 호소하려 했던 진실마저도 호도하거나 왜곡하려는 검은 손길이 언뜻언뜻 비추는 듯 한 느낌에 마음이 불편합니다.

죽지도 않은 경제를 '꼭 살리겠다'고 하더니 살리기는커녕 부관침시라도 하듯 토막 내고 연일 곤두박질치는 불황에서 이는 사회적 불안함은 이미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체증이 되어 버린 지 오래입니다. 

남의 이야기로만 생각하였던 이런 불행 저런 불미스런 일들이 주변사람들 이야기로 하나 둘 들려오기 시작하니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현실은 마음만을 불편하게 하는 게 아니라 평온함을 옥죄어 오는 공포의 검은 그림자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산죽 빛 푸른 산길을 걸어 법계사로 올라갑니다.
 사람들이 산죽 빛 푸른 산길을 걸어 법계사로 올라갑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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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불편해지는 마음을 달래려 길을 나섰습니다. 찾아가야 하는 길은 멀고, 산길을 걸어야 하는 몸뚱이는 힘들지 몰라도 그곳엘 가면 편안함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길을 나섰습니다.

그래! 하늘 아래 첫 산사 법계사로 가는 거야

무한 경쟁의 늪이며 돈과 권력이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는 아수라의 세상인 속계,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해 고뇌하며 몸부림치고, 올가미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도 모르고 상대방 애간장 다 녹이며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악담과 시기가 성성한 곳, 돈과 권력을 움켜잡아 한바탕 떵떵거리며 살기 위해서라면 권모술수와 사기, 계략과 정략적 이합집산이 판치는 우리들의 삶이 펼치는 마당, 숨쉬기조차 곤란하도록 비좁고 야박한 세상인 속계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산길을 오릅니다.

 곰이 서식하고 있음을 알리는 현수막이 여기 저기 걸려있습니다.
 곰이 서식하고 있음을 알리는 현수막이 여기 저기 걸려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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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을 피운 덕에 뒷다리가 당기고, 듣기에 민망할 정도로 숨소리가 거칠어지지만 질곡의 곡해를 넘어 생로병사의 고뇌가 사라지고 시기와 질투마저도 존재하지 않는 크고 넓은 마음이 상생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법계, 하늘 아래 첫 산사인 법계사를 향한 발걸음을 시작합니다.

지리산은 역시 크고 믿음직한 큰 산!

춘풍에 흔들리는 마음으로 봐서 그런지 봄 햇살에 드러난 속세는 호들갑스러울 만큼 어제오늘이 다르게 변해갑니다. 하루 햇살에 앙상하기만 했던 가지에선 술래잡기에서 숨어있던 아이들이 술래에게 잡혀 끌려 나오듯 온갖 꽃들이 송이송이 피어납니다. 조용하기만 했던 논두렁에서도 하루 햇살에 개구리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렇게 저렇게 피어난 꽃들이 소리 없는 폭죽처럼 만발한 곳도 있습니다. 

야트막한 산, 올망졸망한 대지의 것들이 이렇듯 아침햇살에 활짝 피고 저녁 그늘에 웅크리고, 저녁 한기에 살얼음 얼고 아침햇살에 녹는 경거망동을 반복하지만 큰 산 지리산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푸른빛 성성한 산죽(山竹) 길을 걷다보면 건너기도 하고 나란히 함께하기도 해야 하는 계곡엔 겨울색 빙벽들이 낯설지 않게 눈에 띕니다. 조석을 달리해 살얼음 되고 물이 되는 아랫녘의 가벼움을 묵직함으로 알려주려는 듯 웃옷을 벗어야 할 만큼 후끈한 날씨에도 겨울 어름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지리산에는 아직 겨울이 남아 있었고, 역시 큰산이었습니다.
 지리산에는 아직 겨울이 남아 있었고, 역시 큰산이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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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가뭄 끝이라고 하지만 계곡에는 물소리를 내기에 충분할 만큼의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졸졸거리며 흐르는 물에는 귓전을 씻고, 콸콸 소리 내어 흐르는 물에는 마음을 씻습니다. 봄이 오니 물은 흐르되 하루아침에 얼음을 내치지 않은 풍경이니 가는 겨울조차도 서운치 않게 배웅하는 지리산의 듬직함이 느껴집니다.

푸른 빛 산죽이 떠나가는 겨울을 배웅하고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다가오는 봄날을 마중하고 있으니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속인의 눈으로는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믿음이 지리산 계곡에서 펼쳐집니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 유형무형으로 펼쳐진 자연의 가르침에 기웃거리다 보니 어느덧 속계의 경계를 벗어나 법계로 들어서는 법계사의 일주문에 다다릅니다.

법계사는 심신이 걸터앉아 쉴 수 있는 천왕봉 눈썹마루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하더니 눈으로 보게 되는 법계사도 항상(恒常)이지는 않습니다. 조금은 삭막하게 보였던 철제 일주문이 규모는 작을지언정 여느 산사의 일주문처럼 단청까지 곱게 한 일주문으로 바뀌어 있었고, 장마철에는 비라도 샐 것 같았던 산신각도 다시금 불사되어 있었습니다.

 지리산하면 민족상잔인 빨치산을 잊을 수가 없읍니다. 로타리 산장
 지리산하면 민족상잔인 빨치산을 잊을 수가 없읍니다. 로타리 산장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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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법계사는 민족의 정기가 발원한다는 지리산 천왕봉에 달린 눈썹마루라는 느낌입니다. 천왕봉을 오르던 사람들이 잠시 걸터앉아 지친 다리를 달랠 수 있는 툇마루, 야박한 삶을 사느라 마음까지 고단해진 사람들이 잠시 지친 마음을 내려놓음으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눈썹마루 같은 도피안이라는 생각입니다. 

대청마루나 누마루엘 오르려면 신발을 벗거나 옷매무시를 고쳐야 하지만 추녀 안쪽에 덧대어 낸 눈썹마루(툇마루)는 신발을 신은 채 아무 때고 잠시 걸터앉아 쉴 수 있는 곳이니 지리산의 법계사가 그렇습니다. 산길을 오르느라 팽팽해진 다리, 이미 불편해 있던 마음까지도 툇마루에 걸터앉듯 법계사에 내려놓으니 평온함이 찾아듭니다.

점심때가 되어 밥을 얻어먹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이가 내놓은 보시금이나 공양물로 지은 밥을 이렇듯 얻어먹고 있으니 참으로 고마울 뿐입니다. 점심을 마치고 주지스님을 따라 차를 마실 수 있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차를 마실 수 있는 방은 전기가 들어오기 전에 자가발전용으로 설치되었던 솔라 셀이 설치되었던 곳에 새로 불사한 건물에 있었습니다.

법계사 산신각 벽화는 볍계사의 역사

법계사 주지인 관해스님께서는 찻잔만을 채워주시는 게 아니라 안부를 묻듯 이것저것을 물어보시더니 매주 토요일 철야로 올리고 있다는 산신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흔치 않게 산사에서 맛보게 되는 다담의 시간입니다.

 천왕봉에서 법계사로 이어지는 혈맥에 박혀있다. 2006년에 뽑힌 혈심(철봉)들이 법계사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천왕봉에서 법계사로 이어지는 혈맥에 박혀있다. 2006년에 뽑힌 혈심(철봉)들이 법계사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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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산신각 외벽에 그려져 있던 5폭의 벽화에 대해 설명해 주십니다. 산신각 외벽에는 5폭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한 폭 한 폭의 변화는 구전되어 왔거나 2~3년 전에 있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한 법계사의 역사였습니다. 2~3년 전에 필자가 찍은 사진과 다른 신도가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한 벽화도 있었으니 구전을 바탕으로 하였다는 다른 벽화들도 사실에 근거한 분명한 역사이리라 생각됩니다.

첫 번째 벽화는 일제강점기 때 불을 질러 법계사를 폐사시킨 일본인들이 3층 석탑에 봉안 된 진신보탑을 도굴하려는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벼락이 내리쳐 도망을 쳤고, 그 이후에도 3차례나 도굴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함으로 다시는 일본인들이 건드리지 못했다는 구전을 그렸습니다.

두 번째 벽화는 구전되는 일본인들의 만행을 나타낸 것으로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민간신앙을 말살하기 위해 천왕봉 정상에 모셔져 있던 부인상(산신 할머니)을 깨트리기 위해 칼로 부인상의 어깨 부분을 내리치는 순간 돌로 된 부인상에서는 피가 흐르고 칼질을 하였던 일본인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세 번째 벽화는 한 선비가 풍광 좋은 곳에서 책을 읽고 있는 장면으로 신라 하대의 최치원선생님께서 이곳 법계사에서 기거하며 공부를 하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벽화속의 배경은 법계사 바로 뒤 문창대(文昌臺)라고 합니다. 

ⓒ 임윤수

네 번째 벽화는 천왕봉에서 법계사로 이어지는 혈맥 중간에 박혀있던 혈심(약 80Kg정도의 동봉)을 2005년 5월에 제거하는 모습으로 당시 현장에 있던 필자가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었습니다. 법계사가 흥하면 일본이 망하고, 일본이 흥하면 법계사가 망한다는 속설에 따라 일본인들이 저지른 악행의 일환으로 이야기되는 장면입니다.

다섯 번째 벽화는 2008년 2월 1일 아침에 진신보탑에서 5분여 동안 방광 하던 광경을 기도 차 와있던 한 신도가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것으로 사진의 원본까지 보관되어 있으니 결코 근거 없는 이적만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법계사는 산신 기도도량

법계사에서는 매주 토요일 산신기도를 철야로 올린다고 하였습니다. 혹자는 부처님을 모신 불교도량에서 민속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 산신기도를 철야로 올리는 것에 대해 미혹의 시선을 보내는 것도 사실이지만 산신기도에 대한 관해스님의 견해는 훨씬 더 깊고도 넓었습니다.

 해발 1450m에 위치한 법계사는 아직 겨울이었습니다.
 해발 1450m에 위치한 법계사는 아직 겨울이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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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는 가장이 어른이고, 군정에서는 군수가 어른이듯 법계사가 위치해 있는 지리산에서는 지리산신이 어르신이니 어른에 대한 예경과 반듯하게 모시려는 마음가짐을 먼저 채비함으로 가없는 부처님의 가르침도 가능할 거라는 말씀이십니다. 혹자는 산신신앙을 기복신앙이니 미신이니 하며 폄훼하려 할지 모르지만 결코 우매하지만은 않은 우리 조상님들이 수백 수천 년에 걸쳐 대물림하듯 이어왔다면 존중하고 따르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경배의 대상이라고 하였습니다.

내 것, 내 조상님들이 두었던 가치를 거부하지 않고 순응하는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비질하고 지극한 정성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예경하게 된다면 이거야 말로 성불에 다다르기 위한 깨우침의 디딤돌이며 수신(修身)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장 모시던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계명이라는 미명하에 사별의 재배(再拜)조차 올리지 못하는 배타적이고도 옹졸한 종교관이나 신앙심에 비한다면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너그럽고도 포용력 있는 대승적 차원의 불법이라 생각됩니다. 

 법계사 주지 관해스님께서는 산신신앙을 통한 수신을 말씀하셨습니다.
 법계사 주지 관해스님께서는 산신신앙을 통한 수신을 말씀하셨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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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따지지 않더라도 산사에서의 철야기도로 마음 한 자락 정갈히 할 수 있다면 속세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겐 충분히 가치가 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나름대로 정한 계율에 따라 여법하지만 삿되지 않게 올리는 산신기도라면 누구에게나 평온함을 주는 믿음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일요일 공짜 급식에 필요한 봉사의 손길이 필요

필자가 공짜 점심을 얻어먹었듯 법계사에서는 몇 년 전부터 일요일 마다 신도니 등산객이니를 구별하지 않고 공짜 점심을 제공하고 있는데 모자라는 일손이 현실적으로 가장 큰 애로라고 하였습니다.

주부식재료야 보시금이나 공양물로 올려주는 것으로 충당하고 있지만 밥을 짓고 반찬을 마련하려면 아무래도 인력이 필요한데 한참을 걸어 올라와야 하는 산중이라 웬만한 마음에서는 봉사에 동참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보니 손길 부족이 애로라고 하였습니다.

찾아가는 자체가 커다란 봉사가 될 수 있으니 크게 마음 한 번 내어 불특정 다수인들에게 기쁨으로 나누어질 급식봉사에도 동참하고, 천왕봉 아래 눈썹마루처럼 자리한 법계사에서 몸도 마음도 걸터앉는 행복감 한번 맛보는 것도 좋을 겁니다.

ⓒ 임윤수

다가오는 봄날, 일상이 우울할 정도로 단조롭기만 하다면 일상의 그림자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으로 속계를 벗어나는 법계사에서의 하루를 시도해 보십시오. 햇살 같은 행복을 거기에서 맛볼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산 그림자가 내려앉고. 구름에 실린 비가 방울방울 다가오니 하산을 서두릅니다. 가파른 산길을 오를 때보다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속세로 돌아가야 하는 마음의 무게가 때문이었을 게 분명합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주말에 다녀왔습니다.



#지리산#법계사#천왕봉#눈썹마루#산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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