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23일 광주청소년문화의집으로 밝게 다시 태어난 옛 안기부(국정원) 건물.
 23일 광주청소년문화의집으로 밝게 다시 태어난 옛 안기부(국정원) 건물.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지방 청소년들의 희망공동체가 될 광주 청소년문화의집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에 '광주 청소년문화의집'이 23일 문을 열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취급받던 지방의 청소년들이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마련됐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사실 지방은 어느 것 하나 '변방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특히 청소년의 인권과 복지, 재능을 지키고, 높일 수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과 시설 등은 수도권에 비해 눈에 띄게 열악하다.

그래서 광주 등 지방에서 청소년운동을 오랫동안 해온 이들은 "프로그램은 우리가 만들 테니 청소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만이라도 제발 만들어 달라"고 호소해왔다. 이번에 문을 연 광주 청소년문화의집이 소중한 까닭은 이렇듯 아름답게 헌신해온 이들의 작은 소망이 이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욱 다행인 것은 청소년문화의 집 운영주체로 청소년문화와 전혀 상관없는 생뚱맞은 단체가 아닌 줄곧 지방에서 청소년운동을 펼쳐온 광주흥사단이 선정됐다는 점이다.

몇몇 거대 단체들은 자신들의 전문성과는 상관없이 문어발식으로 위탁사업을 챙겨 밉살스런 눈총을 받고 있는 터다. 하지만 광주흥사단은 그동안 청소년 활동진흥센터, 청소년 연구원 등을 운영해 오며 청소년사업과 관련한 나름의 철학과 노하우를 쌓아왔다. 그만큼 기대도 크다.

광주 청소년문화의집에선 앞으로 '소나무숲 작은도서관'이라는 청소년 인문학 프로젝트와 '작업장'이라 불리는 각종 청소년 동아리를 지원하는 사업을 해나갈 것이라고 한다. 또 '멍석깔기'라는 청소년 공연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원할 예정이기도 하다.

부디 광주 청소년문화의집이 지역 청소년들이 변방의 굴레를 벗고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멋있게 나아가는 희망공동체가 되기를 기원한다.

덧붙여 광주광역시와 청소년문화의집을 수탁한 광주흥사단 관계자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자 한다.

1층엔 이북의 실상을 알리는 홍보물이 가득했지만 이 건물의 아픈 역사를 알리는 작은 표지판 하나 있지 않았다.
 1층엔 이북의 실상을 알리는 홍보물이 가득했지만 이 건물의 아픈 역사를 알리는 작은 표지판 하나 있지 않았다.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건물의 역사 알 수 있게 작은 표지판 하나라도 만들어 놓았으면...

광주 시민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청소년문화의집이 들어선 바로 그 곳은 옛 안기부(국정원)가 있던 곳이다. 1980년 광주항쟁 시절엔 오월 관련 인사들이 끌려가 무참한 고문을 당했던 곳이고, 주요 시국사건 관련자들 역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던 곳이다. 도심 한가운데 있지만 시민들 역시 지난 30여년간은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했던 살벌한 곳이었다.

아직도 건물 지하엔 당시 고문실로 사용됐던 작은 방 두 곳이 남아 있다. 하얀 페인트로 깨끗하게 칠해 두어서 고문의 흔적이라곤 눈 씻고 찾아도 찾을 수는 없다. 고문으로 떨어져나간 살점도, 그날의 피도, 눈물도, 멍도,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친구를 팔던 거짓서명의 잉크자국도 모두 하얀 페인트칠 아래로 덮여 있다.

하지만 광주시민 누구나 알고 있다. 아프고 슬픈 광주의 역사가 건물 전체에 스며 있다는 것을. 어쩌면 민주와 자유를 갈망했던 지난날 그들의 희생과 고통이 있었기에 작지만 소중한 오늘 이 공간이 마련됐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 청소년문화의집으로 밝게 다시 태어난 건물 어디에도 이 건물이 가지고 있는 아픈 역사를 소개하는 표식이나 코너는 하나도 없었다. 1층 전시관엔 옛 어린이대공원 북한관에서 가져왔다는 정부의 대북정책 홍보판과 이북의 실상을 소개하는 전시물이 가득했지만 역시 이 건물의 역사를 소개하는 공간은 없었다.

안기부 고문실을 거쳐 간 이들을 거창하게 추억하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발 딛고 뛰어노는 이곳의 아픈 역사를 우리 청소년들도 알 수 있게 조그만 표지판이라도 하나 만들어두면 어떨까.

역사는 물처럼 무심하게 흘러오고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물꼬를 트기 위해 애썼던 이들이 있었음을 한번쯤 얘기하는 것도 청소년들에겐 좋은 인문학 공부가 될 것 같다.

5.18관련자들과 시국사건 관련자들이 고문을 당했던 지하 1층의 작은 방 두 곳은 하얀 페인트칠이 되어 있다.
 5.18관련자들과 시국사건 관련자들이 고문을 당했던 지하 1층의 작은 방 두 곳은 하얀 페인트칠이 되어 있다.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태그:#국정원, #안기부, #광주청소년문화의집, #고문, #광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