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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통일로변에서 20년 가까이 살았다. 이 세월은 북한산 지척에서 북한산을 늘 바라보기만 했던 세월과 같다. 방문만 열어도 북한산 노적봉과 의상봉을 비롯하여 북한산의 수많은 봉우리들이 손에 닿을 듯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참 많은 사람들이 북한산을 찾는다고 한다. 그리하여 봄이나 가을이면 구파발은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멀리 지방에서 온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평일에도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등산객들이 구파발 거리를 오간다.

 지난 겨울, 친구들과 올랐던 북한산 의상봉 능선에서
지난 겨울, 친구들과 올랐던 북한산 의상봉 능선에서 ⓒ 김현자

북한산을 바라만 보며 사는 동안 그들을 보며 언제나 비슷한 생각이었다.

'지방에도 유명한 산들이 많은데 꼭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등산해야만 하나? 산은 다 그게 그거 아닌가?'

'저 사람들은 하는 일도 없나? 이렇게 멀쩡한 평일 대낮에 산에나 다니고? 아직 40대밖에 안된 것 같은데? 그럼 백수인가? 아닌가? 일하지 않아도 될 만큼 팔자가 편한 사람들인가? 먹고살 만큼 돈이 있어 다니면서 소일하는 사람들인가?…'

'하기야 산이나 다니면서 살면 좋기야 좋겠지. 산 좋은 거 누가 몰라? 그런데 아무리 좋으면 뭐해. 산에 갈 시간이 있어야 가지…'

참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산행과 북한산에 대한 내 생각은 대략 이랬다. 때문에 북한산을 날마다 보고 살면서도 북한산이 눈과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골서 자랐고 풀과 나무에 관심이 많다보니 '어떤 나무가 자라고 어떤 야생화들이 필까?' 이런 호기심 때문에 한번 가보고 싶은 그런 산에 불과했다는 것이 맞겠다.

이런 내게 북한산이 '자꾸 가보고 싶은 곳', '가급 많이 가보고 싶은 곳'이 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가을, 20여 년 전에 간적 있는 '노적봉 노적사'에 우연히 가면서부터이다.

아줌마가 1박 2일의 산행과 트래킹? 그것도 인터넷 산행 모임에?

 마지막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마지막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 김현자

 조령산 할미봉 부근에서 본 연풍면 및 수안보 온천 일대
조령산 할미봉 부근에서 본 연풍면 및 수안보 온천 일대 ⓒ 김현자

 조령산에서 본 연풍면 일대
조령산에서 본 연풍면 일대 ⓒ 김현자

그날 이후 북한산엘 몇 차례 더 갔다. 산에 가면 뭔가 근사한 일들이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설렘이 잦았기 때문이다. 날밤을 새워 일을 하면서도 몇 시쯤 집을 나설까? 끊임없이 시간 계산을 하곤 했다. 이때부터 늘 무심코 바라보던 북한산이 남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길가에 피어난 야생화에 우선 눈이 머물렀을 것을, 이제는 눈이 자연스럽게 북한산 봉우리로 머물고 간밤에 잘 잤는지,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날마다 안부 묻듯 북한산의 이름모를 수많은 봉우리들을 훑고 또 훑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지난 11월 말, 멀찍이서 몇 년째 사모하며 올려다만 보던 사모바위 앞을 지나는 비봉능선을 얼떨결에 타게 되었다. 암벽을 여러 차례 기어올라야만 하는 산행이었지만 난 그 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북한산을 찾고 또 찾는 그 이유를 조금은 짐작하게 되었다.

한발 내딛을 때마다 북한산은 내게만 보여주는 듯 새로운 자락들을 보여주었고 한발 내딛을 때마다 내게 새로운 가능성을 주고 싶어 하는 듯했다. 이제까지 바라만 보던 북한산은 나의 입산을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 꽁꽁 감추었던 것들을 끝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비봉능선에서 내가 사는 곳을 바라보는 순간 2004년 화재이후 정신없이 달려오면서 피폐해 질대로 피폐해진 목젖으로 뜨거운 눈물이 울컥 솟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계산하고 잇속 챙기자고 다퉜던 것들이 부끄럽고 하찮게 여겨지기도 했다.

북한산과 함께 하는 동안 가슴속으로 상쾌하고 후련한 바람이 밀려들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분이었다. 큰일을 여러 차례 겪어내야 하면서 누구에게도 제대로 위안 받지 못한 설움도 고개를 디밀었다.

비봉 능선 산행은 커다란 위안이었고, 그동안 열심히 산다는 것으로 스스로 외면하였던 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런 세상에? 내가 저 험한 바위의 북한산 능선을 탔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고 산행 초보아줌마가 대견했다. 산행이라고 하면 그저 나무와 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던 내게 비봉능선 산행은 또 다른 봉우리들을 가고 싶다는 열망이 되었다.

그리하여 주변에 으스대며 참 많은 자랑을 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산행동호회에 관심이 갔다. 이렇게 떠올린 것은 이미 충분한 인연을 맺었음에도 산과 산행에 전혀 관심이 없다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던 한 인터넷 봉사 단체 산악회를 떠올렸다.

1박 2일 간의 이번 산행은 향기산우회 제50회 기념 산행이었다. 향기산우회는 스팸메일이 넘쳐나는 이 시대, 향기로운 메일 서비스로 많이 알려진, 사색의 향기 산행 동호회다. 사색의 향기는 뜻있는 사람들의 십시일반 후원으로 사회 그늘진 곳 봉사를 하기도 한다.

이 단체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4년. 산악회가 태동된 5년 전 그때부터 동참을 했더라면 아마도 지금은 전문가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산과 산행에 전혀 관심이 없다보니 늘 지척에 두고 있으면서 한번도 제대로 보지 못한 북한산처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조령산과 문경새재에서 많은 것들을 만나다

 1943~1945년 비행기 원료로 쓰기위해 일본이 한국인들을 동원, 무리하게 송진을 채취한 흔적들이다.
1943~1945년 비행기 원료로 쓰기위해 일본이 한국인들을 동원, 무리하게 송진을 채취한 흔적들이다. ⓒ 김현자

 조령 산불됴심 표석(경북 문화재자료 제226호)-순수 한글비라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는 이 표석은 ‘조심’을 ‘됴심 ’이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조선 영·정조 시대에 세운 것으로 짐작된다.(문화재청 설명 중)
조령 산불됴심 표석(경북 문화재자료 제226호)-순수 한글비라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는 이 표석은 ‘조심’을 ‘됴심 ’이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조선 영·정조 시대에 세운 것으로 짐작된다.(문화재청 설명 중) ⓒ 김현자

 국난이 있을 때마다 나이테를 움추렸던 노거수
국난이 있을 때마다 나이테를 움추렸던 노거수 ⓒ 김현자

 옛날 일때문에 지방과 궁궐을 오고가는 관리들을 위한 관시설인 조령원 터
옛날 일때문에 지방과 궁궐을 오고가는 관리들을 위한 관시설인 조령원 터 ⓒ 김현자

첫날은 조령산에 올랐고, 둘째 날은 6km가량 문경새재 트래킹을 했다. 도착하기 직전 버스 안에서 산행코스를 선택했다. 난, 'A코스를 타도 될 텐데'의 제의를 거절하고 비교적 완만한 B코스를 선택했다.

겨울날씨가 다시 추워지던 지난 2월 15일, 초보주제에 겁도 없이 고향친구들과 함께 눈 속 의상봉 능선(의상봉~대남문~구기분소)을 타면서 내 스스로에게 다짐했기 때문이다.

'험하고 높은 곳, 유명한 곳을 산행의 목표로 삼지 말자. 좀 낮은 곳을 기더라도 그 산의 가급 많은 것들을 좀 더 여유 있게 만나고 느끼자. 유명세에 이끌려 내 사정 내 몸 돌아보지 않고 편승하는 객기를 부리지 말자. 오만하지도 말고 언제나 겸손한 산행을 하자.'

내가 선택한 조령산 할미봉 코스에는 굵고 멋진 소나무가 비교적 많았다. 소나무는 햇빛을 충분히 받아야만 잘 자라기 때문에 참나무가 많은 산에는 소나무가 거의 없다. 그늘도 가리지 않을 만큼 생육 조건이 좋은 참나무가 소나무에 비해 상대적으로 빨리 자라 넓은 잎으로 그늘을 만들어 소나무의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는 동안 넓고 커다란 바위들도 많이 보였다. '바위들이 참나무가 자랄 면적을 줄여주는 만큼 소나무가 충분하게 자랄 수 있는 것 아닐까?' 추측해 보았다. 그런데 조령산의 이 풍부하고 커다란 소나무들을 문경새재 트래킹을 하는 동안 또 다른 아픔으로 만났다.

트래킹 중 만나는 아름드리 소나무들마다 V자 상처가 움푹움푹 패여 있다. 일제강점기, 일제가 비행기 연료로 쓰기위해 송진을 채집하면서 낸 상처들이라는 설명이다. 어찌나 거칠었던지 상처 난 그 부분을 회복하지 못하고 입벌린 장승의 입처럼 움푹 패였다.

설명에 의하면, 국난이 있을 때 나무들도 스트레스를 받는단다. 그리하여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한국동란이 있던 해 나무들의 나이테는 그 간격이 무척 좁다고 한다.

생강나무나 층층나무 신나무 등, 나무들도 다양해 그 나무만의 특성을 살피면서 걷는 재미도 있었다. 잡담에 이끌려 정신없이 그냥 스치는 것보다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를 맘껏 마시고 교감하며 걷는 것이 훨씬 좋겠다 싶다. 다시 걷고 싶은 길이다.

과거길과 금의환향길, 조령원 터, 교귀정과 소나무, 주막 등 이밖에도 문경새재에는 볼거리가 많았다. 산신각 산신령께 절도 했다. 과거 길에 오른 선비들의 갈증을 풀어주었을 조령약수도 맛봤다. 조선 숙종 때의 전설이 있는 약수란다. 마시면 장수한다고 한다.

조령 제1관문과 제2관문, 제3관문을 지나 트래킹이 끝나는 지점에 가까워질수록 가족단위의 휴일 여행객들이 눈에 많이 뛰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동안 집에 전화도 하지 말고 편하게 놀다 오라며 주춤하는 나를 떠밀어 준 남편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화를 했다.

산행초보인 나, 아직은 마실 나간 아줌마 수다처럼 떠들썩하고 얕기만 하지만...

 문경새재 제3관문인 조령관-주흘산 조령관문 일원은 경북 시도기념물 제 18호, 1관문 주흘관, 1관문 조곡관,3관문 조령관은 사적 제147호로 중복 지정 될만큼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문경새재 제3관문인 조령관-주흘산 조령관문 일원은 경북 시도기념물 제 18호, 1관문 주흘관, 1관문 조곡관,3관문 조령관은 사적 제147호로 중복 지정 될만큼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 김현자

 조령산 생태공원(조령산 휴양림)의 생강나무
조령산 생태공원(조령산 휴양림)의 생강나무 ⓒ 김현자

 교귀정과 교귀정 소나무
교귀정과 교귀정 소나무 ⓒ 김현자

산행을 마친 후 낯선 사람들과 산장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때문에 막상 내 스스로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가족과 집을 위주로 되풀이 되던 일상을 접고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속에 스스로를 내던져 보니 내가 채워야 할 부족한 부분과 배워야 할 그들의 장점과 발전을 발견하기 훨씬 좋았던 것 같다.

아직은 만족스럽고 여유 있게 산행을 즐길 만큼 몸이 단련되지 못했다. 때문에 산행을 시작하고 얼마동안은 숨이 차다. 등산복을 입고 전철을 타면 여전히 조금 어색하다. 산행을 다녀온 다음날에는 오늘처럼 몸이 좀 불편하기도 하다.

또한, 아직은 이집 저집 목적도 없이 마실 나가서 수다 떠는 아줌마처럼 산행을 가기 전에 아는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바쁘고, 산행을 다녀와 무용담처럼 떠벌리기 바쁜 아줌마일 뿐이다. 하지만 모처럼 잡은 내 삶의 이 귀하고 소중한 인연을 절대 놓지 않을 작정이다.

내 주변의 당신, 혹시나 내가 블로그나 전화로 당신은 이미 다녀온 산을 나만 다녀온 것처럼 거창하게 떠벌려도 그저 빙긋 웃으며 이 아줌마의 용기를 칭찬해 달라. 제 자식만 대단한 것처럼 입이 닳도록 자랑하는 새내기 부모들을 '나도 한때는 저랬을 거야'라고 빙긋 웃으며 밉지 않게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바란다. 나처럼 삶이 무겁고 엉덩이 무거운 아줌마들이 무엇보다 산(행)과 많이 친해졌으면 좋겠다고. 건강도 관리하고 산에서 생활 속 찌꺼기들을 정화시킬 수 있는 시간을 나처럼 가졌으면 좋겠다.

"모처럼의 기회 놓치고 후회하지 말고 낯선 사람들과 산장에서 한번 자보는 것도 앞으로의 산행에 도움이 될 거야!"라며 낯선 경험 앞에 스스로 주춤하는 나를 떠밀어준 내 남편처럼 많은 남편들이 당신의 아내들을 낯선 사람들 속에 믿고 떠밀어 삶을 돌아볼 아량을 줬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조령산 산행 및 문경새재(조령산 자연 휴양림) 트래킹은 3월 28일~3월 29일 다녀왔으며 이 글은 3월 30일에 초고를 쓰고 3월 31일에 정리했습니다.



#북한산#사색의 향기#조령산 #문경새재#향기산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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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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