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처럼 출렁이는 '수평선 올레' 끝에는 바당 올레가 길을 열었습니다. 서귀포시 신도리 2리에 있는 바당올레는 어촌마을을 형성합니다. 더욱이 바당 올레는 갯바위가 소중한 자원이기도 하지요. 갯바위와 어우러져 많은 바다자원들이 서식하기 때문입니다.
화산섬 도구리길 바당올레
올레길에 붙어있는 '제주올레 12코스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은 마을 사람들의 인심입니다. 올레꾼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더군요. 신도리 해안도로에서 '도구리 가는 길'이라는 푯말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니 울퉁불퉁 깔린 갯바위가 길을 열더군요.
넓적한 바위를 의자 삼아 벌써 바다에 취한 올레꾼들도 있었습니다. 신도 바다에서 잡아온 고메기와 문어를 초고추장에 찍어 소주잔을 곁들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신도 바당(바다)은 4개의 도구리(불완전한 원형으로 만들어진 제주의 생활 용구)가 있는데 이 도구리에는 문어와 고메기가 산다고 하니까요.
태풍이 자주 지나가는 대정읍 신도 바다는 바닷바람이 제법 차가웠습니다. 하지만 신도 바당올레를 걷는 올레꾼들의 마음은 넓은 바다처럼 열려있습니다. 화산이 낳은 제주의 재산은 해안절경과 어우러진 갯바위 풍경을 이루지요. 움푹 들어간 돌이 있는가 하면, 볼록 튀어나온 바위, 구멍 숭숭 뚫린 돌들이 모여 여러 가지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제주도 민구인 도구리 모양을 한 돌도 있었습니다.
바당 올레 체험 봄바람 나다
제주올레라 해서 마을길만 걷는 줄 알았는데 바당 올레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왜냐면 제주 사람들은 끊임없이 바다를 무기로 삶을 지탱해 왔으니까요. 그렇다보니 바당 올레야말로 제주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삶이자 터이지요.
신도 바당 올레를 걷는 올레꾼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차례로 줄을 지어 길을 열었습니다. 갯바위를 배경 삼아 사진을 담고, 파도소리에 귀 기울이는 올레꾼들도 있습니다. 특히 성급하게 바닷물에 손을 담가 무엇인가를 캐내는 올레꾼들도 보였습니다. 신도리 바당 올레는 올레꾼들에게 봄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암대극 꽃망울 봄을 기다리는 여심
바닷가 바위틈에서 서식하는 암대극 꽃망울이 개화 직전에 있더군요. 보송보송한 이파리 끝에 노란 꽃봉오리가 봄을 기다리는 여심입니다. 삼삼오오 걸으며 담소를 나누는 올레꾼들은 서로 초면인 사람들임에도 같은 길을 같이 걷는다는 것으로 친구가 되었습니다. 길을 걷다 만나는 친구는 목마름을 해소하는 물과 같다고나 할까요. 도구리길을 10분 정도 걸으니 작고 아담한 해수욕장이 펼쳐졌습니다.
신도 미니해수욕장, 때 묻지 않은 피서지 될 듯
"이렇게 소박한 바다가 있었다니!"
도구리 올레 끝에는 백사장 올레가 펼쳐지더군요. 해수욕장 같았지만, 그리 크지 않아 미니해수욕장이라 부르는 신도 해수욕장은 제주에서 유일하게 남은 때 묻지 않은 여름 피서지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백사장올레 오른쪽에서는 노랗게 핀 유채꽃이 올레꾼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바다, 백사장, 그리고 유채꽃과 어우러진 올레꾼들의 행렬, 긴 겨울 끝에서 만나는 봄의 향연이라 할까요. 백사장올레를 걸으니 여름으로 달려가는 듯 했습니다.
바당올레를 걷다 초등학교 1학년 정도 되는 올레꾼을 만났습니다. 7-8세 정도로 보이는 올레꾼은 바닷물을 손바닥에 담고 있었습니다. 이 올레꾼에게 신도리 바당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그 모습이 너무 진진해서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미니 해수욕장 옆에는 포구가 자리잡았습니다. 여름이면 낚시와 한치잡이로 유명하다는 신도 포구, 포구가 참으로 아담하더군요. 조용한 신도 포구도 이날만은 시끌벅쩍 했답니다. 올레꾼 2천여 명이 한꺼번에 몰려들기 시작했거든요.
수평선과 지평선 안고 걷는 행복한 여정
드디어 바다내음과 흙내음이 범벅이 된 포구 주변에 조촐한 점심상이 차려졌습니다. 신도 포구 주변에 마련한 점심은 멸치국수와 고기국수. 국수 한 그릇을 사 먹기 위해 기다리는 올레꾼들의 행렬은 행복한 여정 길이었습니다.
신도 포구에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니 수평선과 지평선이 아스라히 떠 있었습니다. 비우멍 걸었던 흙길과 뚜벅뚜벅 걸었던 도구리길에서 올레꾼은 봄바람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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