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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여파로 일자리에 비상이 걸렸다. 사상 유례없는 취업대란으로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 정규직보다 우선으로 감원 대상이 되는 한편, 인턴들이 채용돼 비정규직 일자리를 줄이고 있어 비정규직은 잠재적 실업의 공포에 떨고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취업대란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비정규직의 실태와 고민, 해법에 대해 몇 차례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민주노총 비대위는 지난달 16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파견허용업무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에 대해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민주노총 비대위는 지난달 16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파견허용업무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에 대해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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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비정규직법안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일 정부는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기간제(계약직) 사용기한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파견업종을 확대하는 게 주요 골자다.

정부가 내세운 논리는 "비정규직 고용대란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법 시행 2년이 되는 오는 7월이면 계약한 지 2년이 되는 기간제 노동자들이 무더기로 해고된다는 주장이다.

한나라당은 '한시적 연장'이라는 조건을 붙여 4월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지난 5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기업의 사회보험료를 면제하고, 직원 채용시 일정비율 이상을 정규직으로 뽑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이나 노동계가 주장하는 '정규직 전환 지원금'에 대해서는 수용불가 입장이다. '슈퍼 추경'에서도 관련 예산은 쏙 빠졌다. "일자리 창출과 직접 관련이 없고 정책 우선순위가 아니다"는 이유에서다.

이미 취업시장에서 정규직은 거의 사라진 상태. 신규채용 자체도 줄었지만, 그나마 나온 일자리들은 대부분 기간제 일자리다. 정부도 기업도 정규직에 대한 의지가 없기 때문에 "이대로 가면 전체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된다, 아예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미 비정규직 비율은 52%(지난해 8월 현재)로 절반을 넘어섰다.

기륭전자·이랜드·코스콤 등 장기투쟁을 벌였거나 지금도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고있을까.

"이러다가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전환되겠다"

김소연 기륭전자 노조위원장은 "지금도 제조업 생산현장에서는 사업주들이 법망을 피해서 파견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남신 이랜드 일반노조 위원장 직무대행도 "그나마 직접 고용된 기간제노동자가 파견이나 특수고용노동자로 바뀌는 등 노동의 질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에 따르면, 근로자파견법이 임시적으로 3개월까지 파견노동을 허용하고 1회에 한해 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편법적인 3개월짜리·6개월짜리 노동자가 늘어났다. 생산라인 별로 각자 다른 업체 파견노동자를 쓰면서, 직접고용은 아예 하지 않는 회사도 있다.

실제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법제정 당시 <비정규직 법률 및 인력관리 체크포인트>라는 책자를 통해서 "한두 달 공백을 두고 계약하면 정규직화 없이 2년 이상 고용할 수 있다, 파견노동자를 2년 고용하다가 해고하고 기간제로 계약하면 최대 4년까지 고용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이번에 법이 개정되면, 결과적으로 경총이 바라던 '4년 고용'이 법으로 보장되는 셈이다.

 지난 2006년 11월, 비정규직관련법안이 통과되자,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등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2006년 11월, 비정규직관련법안이 통과되자,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등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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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애초에 법 제정 당시 "계약기간이 지나면 해고될 것"이라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량해고'를 걱정한 것은 다름아닌 노동계였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계절적 업무 등 꼭 필요한 경우에만 기간제노동을 허용하는 '사유제한'을 주장했다.

김소연 위원장은 "기간을 연장해 봤자 어차피 4년 뒤에 해고하거나 법을 피해 총 8년을 고용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정부와 기업에서 정규직 전환 의지가 없으니 기간을 연장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투쟁에 참여했던 유지현 보건의료노조 사무처장은 "일부 사업장에서는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일부 병원의 경우 공기업선진화 정책 때문에 인원감축을 요구받는데, 사업 특성상 업무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비정규직이라도 써야할 판이라고 한다.

정규직은 사치? 이제 싸울 희망도 없다

그렇다면 법안 통과 이후 기륭전자·이랜드·코스콤과 같은 불법파견, 부당해고 사례가 늘어나고 노사갈등도 심각해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의외의 답변들이 돌아왔다.

김소연 위원장은 "법이 통과하면 합법적으로 해고가 가능하기 때문에 부당해고에 문제제기조차 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정인열 코스콤 전 노조부위원장도 "불법 파견이나 도급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파견이나 도급은 늘어나겠지만, '불법'이 아니라는 뜻이다. 게다가 정규직 없이 파견노동자만 고용하는 사업장의 경우, 차별시정을 주장할 '정상'의 기준 자체가 없어진 상황.

이남신 직무대행의 전망도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워낙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제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싸움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510일의 장기파업을 벌였던 그는 "먹고 살만 해야 투쟁도 할 수 있다, 싸움이 길어지면 금방 흩어진다"고 말했다.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해 7월 서울 마포대교 북단(왼쪽부터), 한강대교 남단, 국회의사당 인근 여의2교 남단 등에서 고농성을 벌이고 있다.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해 7월 서울 마포대교 북단(왼쪽부터), 한강대교 남단, 국회의사당 인근 여의2교 남단 등에서 고농성을 벌이고 있다.
ⓒ <노동과 세계> 이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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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비정규직이 수적으로 '사회적 다수'가 된다면, 어느 순간 갈등이 폭발하지 않을까. 이 질문에도 답변은 긍적적이지 않다. 보수적 제도교육과 언론만 접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계급의식이 약하기 때문이다.

정인열 전 부위원장 역시 "나도 투쟁 시작하기 전까지는 비정규직이 뭔지 잘 몰랐고 이런 일을 겪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특히 파견노동자는 자신이 하청업체의 정규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남신 부위원장은 "84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다 어디 가 있는지 모르겠다, 선거 때마다 자신들을 괴롭힐 정당을 뽑는다"고 안타까워 했다.

오히려 비정규직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요즘에는 분노조차 하지 않는다고 이들은 말했다. 취업 관련 인터넷 카페에서도 "정규직 자리는 이제 없다, 비정규직도 받아들여라"는 글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여론조사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민주노총이 한길리서치에 의뢰한 설문조사 결과, 국민의 45.8%가 "법대로 2년 고용 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지난달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한 설문조사에서는 "비정규직법을 개정해서라도 고용을 연장하고 싶다"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80%에 달했다.

김소연 위원장은 요즘 거리 선전전을 하면서 달라진 시민 반응을 몸으로 느낀다고 한다. 예전에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고통스럽겠지만 어쩌겠냐"고 말한다는 것이다.

경제위기는 끝나도 고용불안은 안 끝난다

문제는 경제위기는 회복돼도 일자리의 질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일자리의 질이 한번 나빠지면 계속 나빠진다, 이마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 20%p 가량 늘어나고 노동시장이 악화된 경험이 있지 않냐"고 반문했다.

김소연 위원장은 "언제 해고될지 모르고 장기간 일할 수 없어서 늘 불안하다,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고 비정규직의 고통을 호소했다. 이 때문에 내수가 침체되면서 금융거품이 생겼다가 결국 터져버렸다. 이것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생각하는 이번 경제위기의 본질이다. 따라서 국민들이 안심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질좋은 일자리가 늘어나야 위기를 탈출한다는 주장이다.

이남신 직무대행은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어야 경제가 복원됐을 때 성장동력이 생길 수 있다, 노동생산성은 높은데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러니한 한국 상황을 이번 기회에 개선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직무대행은 "모범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한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세제 혜택의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소연 위원장은 "2년 기간이 된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도록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인건비 때문에 회사가 어려워지는 게 아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기륭전자의 경우 지출 중에서 인건비 비중은 3%에 불과했고, 다른 제조업도 인건비 비율은 많아봤자 7~8%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비정규직 노동자와 학생들이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기륭전자 앞에서 기륭전자 노조 농성장 강제철거 규탄 결의대회를 열고 비정규직 차별 대우 철폐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10월 비정규직 노동자와 학생들이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기륭전자 앞에서 기륭전자 노조 농성장 강제철거 규탄 결의대회를 열고 비정규직 차별 대우 철폐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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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정규직 노동자들 중심의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정인열 전 부위원장은 "민주노총이 투쟁사업장의 조합원과는 동떨어져있다, 노동자 고통분담 강요하는 정부에 혹했던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소연 위원장 역시 "주로 대기업 노조가 중심이다보니 아무래도 비정규직의 얘기를 못 담아낸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규직 노동자가 양보해야 한다는 논리는 보수적 이데올로기 공세라는 입장이다. 재벌은 수천억의 주식배당을 받고 10대 기업에 이익잉여금이 145조나 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끼리의 고통분담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남신 직무대행은 "진보도 대안을 가지고 고민해야 한다, 반대만 해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수당 등을 양보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나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이주노동자를 지원하는 사회연대기금 등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사회적 연대에 앞장설 때, 국민의 신뢰도 회복하고 정부나 자본도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 지금 모습은...
코스콤 475일, 이랜드 510일, 기륭전자 1325일+α….

기륭전자·이랜드·코스콤은 대표적인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이었다. 이랜드와 코스콤은 해고자를 남긴 채 일단 노사 합의에 이르렀지만, 기륭전자는 아직도 싸우고 있다. 이들은 왜 싸웠고 그 결과는 무엇일까.

[기륭전자, 1325일+α] 94일 단식, 18m 고공농성... 그녀들은 강하다

기륭전자는 단연 억압받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상징이다. 휴먼닷컴이라는 파견업체에 소속되어 기륭전자에서 일하던 생산직 노동자 200여 명은 저임금(2005년 당시 월 64만1850원)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다가 2005년 7월 5일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그러자 기륭전자는 같은 달 31일 이들을 '계약 해지'했다. 노동자들은 파업에 들어갔고 사측은 직장 폐쇄를 강행했다.

사흘이면 끝난다고 생각하며 시작했던 파업은 지난해 이미 1000일을 훌쩍 넘겼다. 이제 숫자를 세는 게 무의미할 정도다. 조합원들은 서울시청 앞 18m 높이 조명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였고, 김소연 위원장은 94일 단식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 22명은 아직도 거리에서 선전전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4월 대법원은 "기륭전자가 노동자를 부당해고 했다고 볼 수 없다"는 최종판결을 내렸다.

[이랜드 510일 파업] 아줌마들의 힘, 그러나 아직도 해고자는 거리에

지난 2007년 가장 치열했던 비정규직 투쟁사업장은 이랜드였다.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되기 직전인 그해 6월, 이랜드 그룹은 정규직화를 회피하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집단 해고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다수인 계산대 업무는 아예 외주화하기로 했다.

510일 파업 끝에 이랜드일반노조와 홈플러스테스코는 지난해 11월 외주화 철회 및 16개월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을 합의했다. 홈에버를 인수한 홈플러스는 이랜드 측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을 2010년까지 단계적으로 올리기로 했으며, 노조도 3년 동안 분규를 일으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 합의로 2000여 명의 비정규직이 일터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이랜드그룹이 홈에버를 소유하던 시절 징계 해고된 노조 간부 등 12명은 끝내 복직하지 못했다. 이남신 이랜드 일반노조 위원장 직무대행과 홍윤경 사무국장 역시 일터로 돌아갈 수 없었다.

[코스콤, 475일 파업] 비정규직 노동자 울린 정규직 노조

2007년 6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 쪽의 직접고용 회피에 반발하며 시작된 475일의 코스콤 사태는 지난해 12월 노사가 '무기계약직 전환'에 합의하면서 일단락됐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노사 합의를 통해 직접고용된 첫 사례지만 출혈도 컸다.

무엇보다도 비정규직 노동자 76명 중 11명은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지방법원에서 65명만을 '코스콤 노동자'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정인열 전 부위원장도 무기계약직 전환에서 빠졌다. 그는 11명 해고자 중 유일한 여성조합원이기도 하다. 정규직이 아닌 별도 직군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어 임금 차별 가능성도 남아있다.

코스콤 사태는 정규직의 반대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직접 고용되지 못한 사례로도 눈길을 끌었다. 민주노총은 지난 2007년 11월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을 외면했다"면서 코스콤 노조를 제명했고, 코스콤 정규직 노조는 곧바로 한국노총 공공연맹에 가입했다.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해 7월 오전 코스콤 본사가 있는 서울 여의도 한국증권거래소 앞마당을 점거하고 76시간 연좌 시위를 진행했다.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해 7월 오전 코스콤 본사가 있는 서울 여의도 한국증권거래소 앞마당을 점거하고 76시간 연좌 시위를 진행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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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코스콤#기륭전자#이랜드#불법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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