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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 강금채·하정숙씨 부부가 집 옆 계곡에서 여유있는 한 때를 보내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강금채·하정숙씨 부부가 집 옆 계곡에서 여유있는 한 때를 보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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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가을이었어요. 스케치를 위해 이곳 지리산 문수골에 들렀는데 계곡과 어우러진 단풍이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첫눈에 반해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마침 집터로 쓸 만한 땅이 있다기에 바로 구두로 계약을 하고 다음날 돈을 지불했어요."

한국화가 강금채(52)씨와 서양화가 하정숙(52)씨가 도회지 생활을 청산하고 지리산 문수골(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로 들어온 이유다.

자연을 벗 삼아 그림을 그리는 이들 부부를 첫눈에 반하게 한 곳은 문수사 가는 길목. 나무와 잡풀이 울창한 자갈밭이었지만 지리산 왕시루봉(1212m)이 한눈에 올려다 보이는 문수계곡 가였다.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집짓기를 구상하며 직접 설계를 했다.

"다른 욕심이 없었어요. 그저 저희 부부가 그림 그리고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하겠다 싶었죠." 하씨의 얘기다.

지리산 문수계곡으로 강금채·하정숙씨 부부를 만나러 가는 길. 계단식 논이 눈길을 끈다.
 지리산 문수계곡으로 강금채·하정숙씨 부부를 만나러 가는 길. 계단식 논이 눈길을 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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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인 하정숙 씨가 캔버스 앞에서 그림작업을 하고 있다.
 서양화가인 하정숙 씨가 캔버스 앞에서 그림작업을 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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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그림 같은 집이 세워지고 이들 부부가 '숲속생활'을 시작하자 평소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찾아왔다. 그리곤 오는 사람마다 "정말 멋있는 집"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부러워하면서 "이렇게 좋은 곳에서 하룻밤 쉬어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댔다.

좋은 사람들과 예쁜 풍광을 함께 나누고픈 마음에 일을 벌인 게 증축. 펜션 형태로 2층을 올려 나그네들이 묵을 수 있는 방을 냈다. 방에는 또 평소 이들 부부가 그려놓은 그림 몇 점씩을 걸었다. 숲속미술관이 따로 없었다. 오순도순 앉아서 얘기할 수 있도록 테라스도 만들었다.

집으로 들어오는 곳에 간판도 하나 내걸었다. 한국화가와 서양화가가 함께 사는 집을 뜻하는 '수채화 풍경'으로 정했다. 화가 부부의 숲속 작업실 겸 집이 펜션으로 진화하게 된 순간이다.

"처음부터 돈벌이를 염두에 두지는 않았어요. 다만 자연의 멋을 알고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와서 하룻밤 묵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을 뿐인데…." 강씨의 얘기다.

한국화가인 강금채씨는 색소폰 연주를 취미로 삼고 있다. 색소폰 연주를 시작한 게 벌써 7년째라고.
 한국화가인 강금채씨는 색소폰 연주를 취미로 삼고 있다. 색소폰 연주를 시작한 게 벌써 7년째라고.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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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인지 처음 펜션엔 이들 부부와 친분 있는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즐겨 찾아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입소문을 전해들은 글 쓰는 사람, 사진 찍는 사람들도 발걸음을 했다. 지금은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와서 쉬고 간다. 하룻밤 묵은 사람들도 잠자리만 편안한 게 아니라 자고 일어난 아침도 멋지다며 좋아한다.

"의도했던 바는 아니지만 펜션을 만든 이상, 찾아온 분들이 편히 지내다가 가실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하잖아요. 쉬려고 일부러 찾아오는 분들인데…."

이렇게 해서 시작한 게 수채화풍경의 주말 이벤트. 강씨는 색소폰으로 감미로운 음악을 연주해 주며 손님들이 묵은 피로까지 다 털어낼 수 있도록 분위기를 잡아준다. 때로는 노래자랑을 하며 이들 부부가 그린 작은 그림으로 시상도 한다. 그림도구를 가지고 와서 스케치를 하는 예비화가들이 있으면 그림지도를 해주는 것도 다반사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베푸는 건 아니다. 강씨 부부가 손님들에게 얻는 위안도 크다. 달빛을 조명삼아, 계곡 물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테라스에 앉아 술 한 잔을 나누며 자연과 예술 그리고 인생에 대해 논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여러 계층의 사람과 만나면서 인연의 폭을 넓혀가는 것도 큰 보람이다.

강금채씨 작 '여명1'
 강금채씨 작 '여명1'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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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숙씨 작 '옛추억'
 하정숙씨 작 '옛추억'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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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로서의 그림 그리기는 손님이 조금 뜸한 평일에 주로 한다. 스케치를 위해 멀리 떠날 일도 없어 부담도 없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하찮은 돌멩이 하나까지도 다 그림의 모델이 된다.

"창문만 젖히면 숲이고 자연이잖아요. 봄에는 연초록 물결이, 여름엔 맑은 물과 나무 그늘이, 가을엔 울긋불긋 물든 산하가, 겨울엔 눈에 덮인 산천초목이…. 일년 삼백육십오 일, 오전과 오후 매번 바뀌는 풍경이에요."

틈나는 대로 단체활동을 하는 것도 재밌는 일과 가운데 하나. 하씨는 여성단체 활동을 하면서 각종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구례종합사회복지관의 수채화반 강사로 나가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바깥바람을 쐬는 일이다.

이처럼 바쁜 나날이기에 그윽한 향을 머금은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부부가 자리를 같이 하는 여유도 달콤하기만 하다. 예쁜 소품이 진열된 창가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며 마시는 겨우살이 차의 맛도 그윽하다. 그 흔한 커피에서도 깊은 맛과 향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숲속에서 자연을 벗 삼아 그림을 그리고, 자연을 닮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즐겁기만 한 이들 부부와 얘기를 나누다보니 이내 마음까지도 어느새 맑고 그윽해지는 것만 같다.

강금채·하정숙씨 부부가 쓰는 그림도구들.
 강금채·하정숙씨 부부가 쓰는 그림도구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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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채 씨가 숲속 자신의 집 거실에서 색소폰을 연주해 보이고 있다. 그림작품이 즐비하고 장작난로가 놓인 거실에서도 예술적 감각이 느껴진다.
 강금채 씨가 숲속 자신의 집 거실에서 색소폰을 연주해 보이고 있다. 그림작품이 즐비하고 장작난로가 놓인 거실에서도 예술적 감각이 느껴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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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부부인 강금채·하정숙 씨가 사는 지리산 문수골의 '수채화풍경'. 1층은 이들 부부의 작업공간으로, 2층은 나그네들의 묵을 곳으로 쓰이고 있다.
 화가부부인 강금채·하정숙 씨가 사는 지리산 문수골의 '수채화풍경'. 1층은 이들 부부의 작업공간으로, 2층은 나그네들의 묵을 곳으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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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수채화풍경, #강금채, #하정숙, #문수골,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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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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