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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자식을 군에 보내면서 두번 운다고 합니다. 입대전 자식과 헤어질 때, 그리고 자식의 체온이 남아있는 옷을 받아볼 때 운다고합니다. 하지만, 항상 자식의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만은 모든 어머니들이 똑같습니다. 사진은 12년전 3사관학교 유격장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필자의 모습.
▲ 군에 보낸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똑같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군에 보내면서 두번 운다고 합니다. 입대전 자식과 헤어질 때, 그리고 자식의 체온이 남아있는 옷을 받아볼 때 운다고합니다. 하지만, 항상 자식의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만은 모든 어머니들이 똑같습니다. 사진은 12년전 3사관학교 유격장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필자의 모습.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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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군에 보낸 어머니의 마음은 다 똑같은가 봅니다.

며칠 전 지인을 만나 같이 식사를 하던 중에 지인께서 얼마 전 군에 입대한 아들의 옷이 집에 도착했다는 말과 함께 상자 안에 담긴 아들의 옷을 바라보던 아내가 눈물을 적시며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군에서 온 상자 안에는 아들이 군에 입대할 때 입고 들어간 잠바와 바지, 속옷까지 들어 있었고, 조그마한 쪽지에 잘 있으니 걱정말라는 안부 편지 한 장도 들어 있었답니다.

군에 입대를 하면 사회에서의 생각과 습성(?)을 버리고 오직 군인으로서의 임무를 다하게 하기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군복과 군화를 비롯한 보급품을 지급받는 순간 입대할 때 입고 들어온 사복을 벗어 상자 안에 넣어 집으로 보냅니다. 물론, 가지고 들어온 불필요한 소지품도 함께 말이죠.

이런 연유로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님들은 두 번 울게 됩니다. 훈련소에서 자식과 헤어질 때 한 번 울고, 군에 간 자식이 보낸 자식의 체온이 묻어 있는 옷을 집에서 받아 봤을 때 한 번 더 울게 되는 셈이죠.

저 또한 같은 경우를 겪었고, 지인의 말을 듣는 순간 12년 전 군에 입대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12년 전인 1997년 4월에 대한민국 육군 장교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기 위해 대구 영천의 3사관학교에 입교를 했습니다.

오전에 입교를 해야 되기 때문에 저는 전날 3사관학교 인근에 도착해서 하루를 묵은 뒤 학교에 입교를 했습니다. 이렇다보니 어머니와는 입교 전전날 집에서 눈물의 이별을 해야만 했지요.

대구까지 따라오시겠다는 걸 만류하고 건강하게 잘 다녀오겠다며 겨우 설득을 시킨 뒤 혼자서 가겠다며 집을 나왔습니다.

집을 나오는 순간 저도 눈물이 왈칵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있을 때 눈물을 보이면 약해보일까봐서 참고 참았던 눈물이었습니다.

입교하는 대구까지 따라오셨다면 그곳에서 더욱 마음이 아플 것 같았고, 또 훈련소에 들어가는 아들을 뒤로 하고 다시 먼 거리를 오셔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을 것 같아 그냥 그렇게 어머니와 작별을 고해야만 했습니다.

입교 당일,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하면 눈물이 날까봐서 그냥 들어가려고 했는데, 들어가면 언제 또 전화할 수 있게 될지 몰라서 학교 앞에 있던 공중전화로 가서 집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번호를 누르고 신호가 두 번 정도 갔을 때 곧바로 어머니께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를 기다리고 계셨었나 봅니다.

"아들 건강하게 잘 다녀올테니까 걱정마세요. 전화 자주 드릴게요."

이렇게 통화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어머니께서는 말 한마디 하지 않으시고 눈물만 떨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 한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어머니께서 한 말씀하십니다.

"밥 잘 챙겨먹고, 감기 조심하고..."

어머니께서는 목이 메어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지만 저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입교 전 어머니와의 마지막 통화를 하고 난 뒤 전 씩씩하게 학교를 향해 들어갔습니다. 학교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저의 뒤로는 아직까지 작별의 정을 나누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어느덧 입교시간이 지나고 같이 훈련을 받게 될 모든 동기들이 연병장에 모였습니다. 각 훈육대별로 집합을 해서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12주 동안 훈련을 받으면서 생활하게 될 각각의 내무실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도착한 훈육대 건물 안에는 이미 우리를 맞을 준비가 이미 끝마쳐 있었으며, 개인적으로 필요한 보급품들도 자신의 신체사이즈에 맞게 고를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각자 내무반으로 들어가면서 전투복과 전투화, 체육복, 속옷까지 자기 몸에 맞는 것으로 고르고, 바로 체육복으로 환복할 수 있도록..."

훈육장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 줄로 줄을 맞추어 내무반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의 체형에 맞는 옷을 골라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체형이 많다보니 자신의 체형에 맞는 옷을 고른 동기가 있는가 하면 저 같은 경우와 같이 뒤에 줄을 서 있어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고른 동기들도 여러 명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군대 가면 옷을 몸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몸을 옷에 맞춰야 한다는 우스개소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제가 바로 그 꼴이 된 셈이죠. 물론, 나중에 다시 제 몸에 맞는 옷으로 교환을 했지만 말이죠.

그렇게 새로운 옷을 받아들고 내무반으로 들어갔는데, 제가 잠을 자게 될 침상 위에 종이상자 하나가 놓여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다른 동기들도 의아해 하고 있는데 쩌렁쩌렁한 훈육장교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누어 준 상자 안에 입고 들어온 옷을 넣는다. 속옷까지 다... 그리고, 불필요한 물건 가지고 들어온 후보생도 모두 다 넣는다. 집으로 보낼 거니까."

나누어 준 체육복으로 갈아 입은 뒤 입고 들어온 사복을 상자 안에 넣었습니다.

'참! 집으로 보내는 거니까 여기다가 안부편지라도 써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편지를 쓰려는데 서두르라는 말이 들렸습니다. 그래서 전 상자 안의 빈 공간에 매직으로 잘 들어왔고, 밥도 먹을만하고, 건강하게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안부의 말과 함께 큼지막하게 '어머니 사랑합니다'라는 글을 써 넣은 뒤 상자를 테이프로 봉했습니다. 들키면 괜한 소리를 들을까싶어 성급히 마무리를 한 뒤 상자를 제출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가 지니고 있던 사회의 '물'은 집으로 모두 보내졌고,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서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그 후 어느덧 한 달여의 시간이 흘렀고, 입교 후 처음으로 1박2일의 외박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전 집으로 향했습니다. 동기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말이죠. 걱정이 많으셨을 어머니를 본다는 마음에 쉴새없이 차를 타고 약 4시간 여만에 시골집에 도착을 했습니다.

차를 갈아타고 오는 중간중간 전화통화를 해서 그런지 집에 도착하자 가족들은 물론 이웃사촌들까지 와 있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전 시골집에서 반갑게 맞아주시던 모든 분들을 향해 씩씩한 모습으로 '충성!'을 외쳤고, 집에 있던 분들은 '잘 있었냐', '다친 데는 없냐'며 저의 안부를 묻기에 바빴습니다.

눈시울을 붉히며 가장 반갑게 맞아주신 어머니께서는 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더 건강해진 모습에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 모습이었습니다.

한 자리에 모인 가족들과 이웃들은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그동안의 회포를 풀고 있는데, 어머니의 친구분이셨던 한 아주머니가 대뜸 저에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습니다.

"네 엄마, 니가 보낸 옷보고 엄청 우셨다. 안에다 니가 쓴 편지 보고도 그렇고..."
"그래요? 저두 편지쓰면서 눈물났어요. 편지지에다 쓰려고 했는데 재촉하는 바람에 상자 안에다 쓸 수밖에 없었어요."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머니께서는 그 때가 생각났는지 다시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이제 걱정마세요. 전화도 풀리고 해서 이제부터는 전화도 할 수 있으니까 자주 전화드릴게요. 그리고 먹는 거 잘 먹고, 훈련도 열심히 받고 건강하게 잘 있으니까 걱정마시구요."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어머니의 걱정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이런 말을 해서라도 조금이나마 걱정을 덜어 줄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열심히 훈련을 받았고, 자랑스런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임관을 했습니다. 임관식장에 오셔서 저의 왼쪽 어깨 위에 소위 계급장을 달아주며 기뻐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지인과 식사를 하던 중 나온 이야기를 듣고 회상한 저의 이야기이지만 자식을 군에 보낸 대한민국 어머니들의 마음은 다 똑같은가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송고합니다.



태그:#군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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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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