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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림 속의 바다 케이프 트리뷸레이션(Cape Tribulation)

 

아침에 일어나 포트 다글라스를 한 바퀴 돌아보고 케이프 트리뷸레이션으로 조금 늦게 떠난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숲이 울창해지며 도로에 자동차도 줄어든다.

 

케이프 트리뷸레이션을 가려면 유명한 데인트리 리버(Daintree River)를 건너야만 한다. 강폭은 길지 않으나 많은 양의 물이 흐르고 강변은 울창한 산림이다.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는 없고 케이블에 매달려 왕래하는 배가 끊임없이 자동차를 실어 나르고 있다. 데인트리 리버는 관광지로 유명하기 때문에 낮에는 경치를 즐기는 유람선이 다니고 밤에는 악어구경을 시켜주는 유람선이 운행되고 있다. 데인트리 리버는 원시림을 파고들면서 흐르는 도도한 강이다.

 

배에 자동차를 싣고 강을 건너니 원시림 지대에 들어선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케인즈와 포트 다글라스의 해변도로 이상으로 아름다운 길을 따라 계속 운전한다. 잠깐 중간에 차를 세우고 멀리 보이는 케이프 트리뷸에이션 해안을 사진에 담는다.

 

운전을 하며 올라갈수록 왼쪽으로는 울창한 밀림 지대가 나오고 오른쪽으로는 아름다운 해변이 끝없이 펼쳐진다. 울창한 숲과 바다가 공존하는 호주에서도 보기 드문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다. 여행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한결같이 가보라고 권유하는 이유를 알만하다. 이곳이 좋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긴 했지만 정말 듣던 대로 경치가 빼어난 곳이다.

이곳에서 더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은 비포장도로다. 가장 가까운 다음 도시인 쿡 타운(Cook Town)까지는 약 70킬로 떨어져 있는데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하고 호주 동해안의 가장 끝, 케이프 요크(Cape York)까지는 내가 타고 다니는 승용차로는 불가능하다. 사륜 구동차는 기본이고, 여분의 타이어를 비롯하여 비상시를 위한 물, 연료, 잠자리 등 준비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러한 곳을 여행하는 사람을 위하여 사륜 구동차 운전 연습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곳이 있을 정도다.

    

정리가 잘 돼 있는 캐러밴 파크에 들어가 텐트를 치고 나니 기분이 상쾌하다. 저녁 준비하려고 공동 부엌에서 음식준비 하는데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언어는 영어보다 독일어, 불어가 더 많이 들린다. 유럽에서 온 젊은 관광객이 대부분이다. 호주에 오래 살았어도 나 같은 사람은 들어 보지도 못한 '케이프 트리뷸레이션'이라는 지명인데 유럽 여행객이 붐비는 것을 보면 여행광들에게는 잘 알려진 곳인 것 같다. 저녁을 먹고 유난히 맑은 별을 바라보며 숲 속의 깊은 고요 속에 있으니 자연과 하나 된 기분이다.

 

 

 

관광객의 접근을 제한하는 관광지

 

케이프 트리뷸레이션은 자연환경에 특별히 정성을 쏟은 곳이다. 모든 시설이 환경 친화적으로 되어 있으며 깊은 정글로 들어가려면 전문적인 안내자와 같이 가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다. 이곳에 도로를 닦을 때만 해도 원시림을 개발한다고 반대하는 데모가 심하였던 곳이다. 개발 당시의 사진을 전시해 놓은 곳에는 청년이 나무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사진, 각종 중장비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길거리에 누워 데모하는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사람은 '개발'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경치가 좋은 곳이라면 우리는 돈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다. 경치 좋은 산이나 강은 '경제'라는 단어를 내세워 개발할 궁리를 한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로를 놓고 시멘트로 땅의 숨구멍 막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사람은 약육강식이라는 이름으로 약자를 핍박하고, 자연과 함께 살기보다는 자연 위에 군림하는 오만을 저지르며 살고 있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여름 방학 때마다 곤충 채집, 식물 채집이라는 이름으로 희귀한 곤충이나 식물들을 채집해오는 것이 가장 흔한 방학 숙제 중 하나였다. 학교에서 환경 파괴를 주도한 셈이다.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아름다운 삶을 잃어버린 지 오래된 인간들….  정글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사람의 침입을 받지 않는 깊은 정글 속에서 자연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을 온갖 동 식물을 생각한다. 그들도 인간에게 방해 받지 않고 살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산 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기쁘게 접는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인간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파라다이스에서 오늘을 즐긴다

 

원시림 깊숙이 들어가지 못 하지만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산책로를 많이 만들어 놓았다. 산책로는 자연에 주는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땅에서 일 미터 이상의 높이에 나무판자로 만들어 놓아 산책로 밑으로도 동 식물이 어려움 없이 교통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조금 큰 나무만 있어도 산책로 나무판에 구멍을 뚫어 나무가 자라는 데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한 노력을 볼 수 있다. 안내판에는 화장실도 수세식이긴 하지만 자연 친화적인 설계되어 있다는 설명이 화장실 앞에 그림과 함께 적혀있다.

 

산책로만 걸어도 정글 속에 있는 기분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울창한 숲에서 이름 모를 새의 노래를 어느 시인의 읊조림처럼 공짜로 들으며 걷는다. 운이 좋아서 일까? 얕은 물가에 조그만 거북이 두 마리가 한가로이 산책(?)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산책로를 걷다 보니 해안가로 나온다. 해변에 코코넛 나무가 즐비하게 서 있는 모양이 사진에서 본 적이 있는 태평양에 있는 자그마한 섬나라를 연상시킨다. 백사장에는 코코넛 열매가 많이 떨어져 있으나 껍질을 벗길 방법이 없다. 코코넛을 깨뜨려 쥬스를 마시고 싶으나 방법이 없어 입맛만 다신다.

 

캐러밴파크에서 낚싯대를 가지고 고기를 잡으러 나선다. 백사장 끝 조그만 산등성 밑에서 한 노인이 낚시를 한다. 호주 골드코스트에  살고 있는 딸네집 식구와 놀러 왔다고 한다. 낚시를 많이 해 본 솜씨다. 걸터앉은 바위 바로 앞에 낚싯대를 담그며 큰 고기를 잘도 잡아 올린다. 나도 옆에 앉아 낚싯대를 담근다. 손바닥만 한 이름 모를 고기 두 마리밖에 잡지 못했다. 하지만 노인이 나에게 선물한 큰 생선 한 마리를 합치니 저녁거리는 충분하다.

 

다음날은 수영복을 입고 바닷가로 나가본다. 모래위에서 축구를 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악어가 있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도 개의치 않고 수영을 하며 바다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나도 해질녁 따뜻한 바닷물에 몸을 담가본다. 최적의 기후에, 그림같이 아름다운 해안에서 모든 것을 잊고 지금을 즐긴다. 이런 곳을 일컬어 파라다이스라고 하는가?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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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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