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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 사건의 중간수사결과가 발표되었다. 그러나 경찰의 발표는 더 이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최종 결과로 들리고, 그 결과는 예상했던 그대로다. 신인 배우, 기획사, 방송사, 거대언론사, 그리고 금융기관은 정말 아무 관계도 없었던 것일까? 한 신인배우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던 까닭이, 근거도 희박한 우울증 때문이거나 확인할 수도 없는 술자리 몇 번 나갔기 때문이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하는 것일까? 결국 경찰의 발표는 그녀를 헛소리나 써갈기고 죽은 사람으로 만든 것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죽음을 통해, 오늘 연예산업의 위기와 신인 배우들의 위기, 그리고 더욱 심화될지 모르는 문화의 위기를 본다. 이제 총체적 위기에 처한 한국연예바닥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볼 시기가 왔다. 올바른 성찰과 반성이 그녀의 죽음을 위로하는 최소한의 도리이며 그것을 통한 대안의 마련이 위기의 연예바닥을 치고 나올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기자의 말>

글 싣는 순서
① 충무로의 조감독들은 무엇으로 먹고사는가 - 취약한 토대, 붕괴직전의 제작시스템
② 스타가 되고 싶으면 어디로 연락해? - 매스미디어와 연예인의 종속관계
③ 장자연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 연예매니지먼트법에 대한 심각한 우려

2) 스타가 되고 싶다면 누구에게 연락해?
(매스미디어와 연예인의 종속관계)

 매스미디어를 통하지 않고 홍대 클럽에서 탄생한 '스타'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지난 3월 11일 저녁 서울 성산동 성미산 마을극장에서 첫 정규앨범 '별일 없이 산다' 발매기념 팬미팅 행사를 갖고 미미 시스터즈와 함께 노래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매스미디어를 통하지 않고 홍대 클럽에서 탄생한 '스타'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지난 3월 11일 저녁 서울 성산동 성미산 마을극장에서 첫 정규앨범 '별일 없이 산다' 발매기념 팬미팅 행사를 갖고 미미 시스터즈와 함께 노래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 남소연

대중문화산업은 일반적인 산업과는 다르다. 모든 상품이 생산과 유통과 소비라는 구조를 가진다고 할 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은 상품을 만들어내는 편 즉, 생산자가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대중문화산업의 경우는 어떠할까? 생산자를 기획사나 배우로 환치하고 유통의 과정을 매스미디어로 환치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대중문화산업의 헤게모니는 결코 기획사나 대중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중계하는 매스미디어에 있다는 것이다.

매스미디어가 강력한 이유는 다만 생산과 소비를 매개하는 역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스미디어를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이 '무엇'은 대중문화산업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것이다. 절대적인 수익과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대중문화산업의 핵심인 이것. 바로 '스타'를 의미한다.

스타를 만들어내는 것이 연예기획사나 소비대중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일찍이 엘비스 프레슬리가 록앤롤의 황제로 등극하게 된 결정적 배경도 비틀즈가 미국 공략에 나서면서 했던 첫 번째 선택도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던 <에드설리번 쇼>라는 당대의 TV방송에 출연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단 1명이라도 완벽하게 TV를 통하지 않고 스타가 된 경우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심지어 인디밴드조차도 그들의 음악성과 상업성을 인정받는 동시에 매스미디어로 흡수되어 확산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스타가 되고 싶다면 연예기획사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방송을 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중문화산업의 특징은 필연적으로 연예인과 방송사간의 부적절한 관계를 유발한다. 새 음반을 내고 공연을 하는 가수보다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이 음반 출시를 알리는 효과적인 방법이 되고, 대학로 연극무대에서 치열한 연기 정신으로 무장하여 관객들을 만나는 것보다, 일일 드라마에 조연으로라도 얼굴을 비추는 것이 더 많은 연기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방송을 제작하는 프로듀서나 감독들과 출연을 희망하는 연예인들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될 것인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물론 일부 스타들의 경우 이 '갑', '을'의 관계가 완벽하게 뒤집혀 있는 경우도 존재한다. 스타 모시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한탄하는 방송관계자들의 목소리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스타'들에 국한된 문제다. 대부분의 연예인들에게 프로듀서와 감독들은 여전히 무소불위의 권력이며 그들과 등지고는 앞으로 연기활동을 기약할 수 없다. 결국 모든 연예인들은 스타를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2, 3년 사이로 거듭되는 PD 비리사건은 구조의 문제

2, 3년 사이로 거듭되는 PD들의 비리사건들은 분명히 전체가 아닌 몇몇의 문제이기는 해도, 동시에 그런 몇몇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사건이 하나 터지고 나면 문제가 근절되는 것이 아니라 수법만 바뀌어 되풀이되는 현실이 그것을 방증한다.

한정된 프로그램에 어떻게든 얼굴을 들이밀어야 하는 신인 배우나 신인 가수들의 경우는 필사적으로 PD들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다.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지만 차라리 연기나 음악에 어떤 평가의 기준과 점수 같은 것이 있어 점수대로 방송에 출연할 수 있다면 이들 사이의 은밀한 거래나 부정은 사라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문화라는 것, 특히 대중문화라는 것은 결코 계량화하거나 수치화할 수 없는 것이고 보니,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사람의 자의적인 판단과 기준으로 출연이 결정되는 수밖에 없다. 이는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이 PD와 연출진의 윤리의식 고양 정도밖에는 없다는 절망을 안겨준다.

매스미디어가 대중문화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비단 한국만의 현실은 아니다. 프로그램 출연이나 미디어에 소개되는 것을 전제로 연예인들과 은밀한 뒷거래가 있는 것도 전세계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병폐일 것이다. 그러나 유독 이 문제가 한국에서만 심각하게 불거지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가장 먼저 한국은 로컬문화의 토대가 없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중앙집중적인 사회시스템은 지방의 문화가 설 자리를 없애버렸다. 부산 어디서 제일 연기 잘하는 누구라든지, 광주에서 활동하는 최고의 록밴드라든지 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공중파 방송의 절대적인 권력은 다양한 로컬 문화의 씨를 말리며 스타가 되는 길을 일원화 하였고, 그 결과 공중파 3사의 드라마, 예능프로그램 PD의 손을 거치지 않고서는(적어도 그들의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고서는) 스타가 되기란 불가능해져 버린 것이다.

또한 음반산업, 영화산업, 공연산업 등 매스미디어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지 않고서 스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문화산업분야가 쇠락해가고 있다는 점도 이유 중의 하나다. 방송에 출연하지 않고도 100만 장의 앨범을 팔 수 있는 가수가 있다거나, 1000만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영화들이 쏟아진다거나, 수십만 관객을 상대로 공연할 수 있는 작품이 쏟아진다면 매스미디어에 대한 대중문화의 의존도는 분명히 낮아질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미디어를 통하지 않고 이들 산업의 미래를 낙관하기란 무척 어렵다. 음반을 팔기 위해서, 영화를 알리기 위해서, 공연을 소개하기 위해서라도 방송에 나가야 하는 것이 서글픈 요즘의 현실이다(바로 이 점에서 미국이나 일본 유럽의 상황은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대중문화산업에서의 대중의 의미는 Popular이다. mass도 아니고, Public도 아니고 People도 아니다. 이는 단지 표기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문화산업이 가지고 있는 속성과 가치에 관한 문제다. 대중문화산업에서 대중을 단지 '다수의 사람'이라 정의하지 않고 '인기 있는'이라는 다소 생뚱맞게 표기하는 이유야말로 이 산업의 본질을 가감 없이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에서의 최고의 가치는 인기이고, 인기는 곧 스타, 스타는 곧 자본(돈)을 의미한다.

매스미디어를 통하지 않은 '스타'들이 탄생하여야 한다

따라서 오로지 매스미디어에서만 '스타'가 만들어지는 구조가 지속되는 한 연예인이 PD들에게 종속적인 환경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일부 몰염치한 자들이 독버섯처럼 자라날 것이고 그들에게 유린당할 수밖에 없는 연예인들도 끊임없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 내기 위해서는 매스미디어를 통하지 않은 '스타'들이 탄생하여야 한다.

결국 미디어에 종속되기는 했지만 몇몇 인디밴드들의 약진과 <똥파리> <워낭소리>와 같은 독립영화 다큐멘터리의 선전도 희망의 빛이 된다. 인터넷을 통한 '스타 만들기'는 성공만 한다면 상당히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어렵겠지만 지금은 이 길밖에 보이지 않는다.


#장자연#연얘산업# 대중문화#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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