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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벤처란 사회적 기업(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 중에서도 청년들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설립된 곳을 나타낸다. 다수의 청년들이 소수의 안정적인 직장에 몰리며 청년실업이 구조화되는 상황에서 소셜 벤처는 청년실업 문제 해소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4차례에 걸쳐 2030세대 소셜 벤처 기업가들을 만났다. [편집자말]
지난 18일 서울 청계천 잡페어의 터치포굿 부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성황을 이뤘다.
 지난 18일 서울 청계천 잡페어의 터치포굿 부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성황을 이뤘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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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를 1회 실시할 때 제작되는 현수막 크기를 계산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문제는 다음과 같다. 

① 지역마다 평균 5명의 후보가 나온다고 가정한다.
② 후보 1명은 읍·면·동 당 현수막 1개만 걸 수 있다. 우리나라엔 211읍·1205면·2071동이 존재한다.
③ 현수막의 평균 크기는 10㎡다.

답은 17만4350㎡(5만2833평)다. 축구장의 25배 크기다. 대부분 소각되거나 땅에 묻힌다. 이 사실을 맞닥뜨린 이들은 얼굴을 찌푸리지만 거기까지다. 하지만 현수막으로 가방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터치포굿(Touch4Good)'이라는 회사를 세운 20대 청년들이 있다.

여기서 의문 부호가 뒤따른다. '현수막 가방을 누가 살까'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 18일 서울시와 노동부가 주최한 '청계천 잡페어'에서 그들의 가방을 본 한 20대 여성의 반응은 기자를 무안하게 했다.

"예뻐요. 친환경 제품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더라도 가격도 적당하고,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하나밖에 없는 거잖아요. 20대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친구들의 통장잔고가 부럽지만... 소셜 벤처를 택하다

터치포굿은 스물다섯 살 동갑내기들이 지난해 10월에 만들었다. 왼쪽부터 대기과학과를 나온 이화영씨,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박인희씨, 정치외교학과를 다니고 있는 대학생 박미현씨다.
 터치포굿은 스물다섯 살 동갑내기들이 지난해 10월에 만들었다. 왼쪽부터 대기과학과를 나온 이화영씨,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박인희씨, 정치외교학과를 다니고 있는 대학생 박미현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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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포굿은 스물다섯 살 동갑내기들이 지난해 10월 만들었다. 정치외교학과를 다니고 있는 대학생 박미현씨, 대기과학과를 나온 이화영씨,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박인희씨가 그들이다.

이들은 다른 대학생들과 달리, 안정적인 직장보다는 일찍이 소셜 벤처 기업가를 꿈꿨다. 이들이 만난 것도 1년 전 사회적 기업과 관련된 세미나에서였다. 공동대표 화영씨는 "내가 일하는 곳이 내가 지향하는 가치와 맞는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역시 공동대표인 미현씨는 "청소년단체·인권단체 등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하면서 남의 돈(후원금) 가지고 내가 전하고 싶은 목소리를 계속 낼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고 전했다. 디자이너인 민희씨는 "청년들한테 사회적 기업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왜 안정적인 직장에 몰리는 대다수 청년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걸까? 그 이유를 다시 물었다. 인희씨는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은 바코드 같은 대기업 직함의 삶을 살지 않느냐"고 전했다. 여기에 미현씨가 말을 보탰다.

"친구들이 '회사에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인 것 같다, 진짜 삶은 회사에서 퇴근하면서부터'라고 한다. '내가 꿈꾸던 20대 후반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라고도 말하더라.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의 통장잔고가 부럽긴 하지만, 친구들도 나를 많이 부러워한다. 터치포굿에선 '회사=나'이니 내 삶을 살 수 있다."

"좋은 일 하니까 사달라는 생각 없다... 품질로 승부할 것"

지난 14일 저녁 터치포굿 식구들이 서울 동교동 사무실에서 현수막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 14일 저녁 터치포굿 식구들이 서울 동교동 사무실에서 현수막을 살펴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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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들이 창업을 위해 현수막과 가방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었다. 미현씨는 "대학로 카페에서 회의를 하다가 누군가 '현수막이 많네, 저거 문제인데'라는 말을 한 게 창업의 시작이었다"며 "가방을 선택한 것도 맘에 들면 살 수 있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현수막으로 가방을 만든다는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이들에겐 가방에 대한 어떤 사전 지식도 없었다. 또한 국내엔 가방을 만드는 디자이너도, 공장도 없었다. "대부분 지하에 재봉틀 하나 갖다놓은 수준"이었다는 게 미현씨의 말이다.

이들은 사업 포기를 한때 고민했지만, 이들의 아이디어가 창업공모전 예선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자(이후 이들은 본선에서 1위를 했다) 자신감을 얻고, 2008년 10월 사업자 등록증을 받았다. 미현씨는 "우리 스스로를 '삽질포굿'이라 이름 붙일 정도로, 실수를 많이 했다"며 말을 이었다.

"가방 제조를 위해 두 달 동안 의류공장을 찾았는데, 알고 보니 의류공장에서는 가방을 만들지 않았다. 또 가방 재봉틀과 옷 재봉틀이 다르다는 것도 몰랐다. 같이 일하던 친구가 길거리에서 가방을 쳐다보다가 소매치기로 오해받은 적도 있다."

이들은 무작정 동대문에서 가방 제조 방법을 다짜고짜 물어가며 배웠다. 한 번은 망한 가방공장을 떠맡게 됐다고 거짓말을 한 적도 있다. 그렇게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2009년 2월 이들의 첫 가방이 나왔다. 지금까지 큰 홍보를 안했지만, 3만5천원짜리 가방 50여개를 팔았다. "반응이 좋다"고 미현씨가 말한다.

"친환경 세재로 세탁하고 현수막을 제외한 모든 부자재는 최고급을 썼다. 품질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 제품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는 것도 큰 강점이다. 좋은 일하니까 사달라고 할 생각 없다. 외국 지인한테 선물했는데 반응이 좋다. 핀란드에서 주문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

현재 이들은 인건비를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창업공모전에서 받은 천만원의 지원금은 제품개발비 등으로 이미 거의 다 소진했다. 그래도 힘들지 않다. 미현씨는 "6월이면 가방을 판 수익으로 어느 정도의 인건비를 받으면서 다시 가방을 만들 수 있는 안정된 상태가 될 것 같다"며 "앞으로 광고판을 소재로 하는 제품도 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0대가 무기력? 창업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곳이 우리나라

이들을 통해 본 20대 대학생들의 창업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사회는 20대들이 도전정신이 없고 진취적이지 못하다고 질책하지만, 사실 창업 꿈을 품은 많은 20대 청년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도움을 주는 것은 많지 않다. 언론에선 경쟁자를 이길 수 있는 대기업 취업 전략만 부르짖는다.

미현씨는 "우리는 대학생 창업·여성 창업·환경 벤처 등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결국 도움을 못 받았다"며 "조건도 까다롭고 작성해야 서류의 빈 칸을 다 채우지도 못했다, 재무제표가 뭔지도 모르는데 알려주는 곳이 없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셜 벤처를 창업 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 미현씨는 "소셜 벤처는 기업이나 정부에서 가지고 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인데, 이제야 학교에서 소셜 벤처를 가르치는 등 아직 우리 사회는 소셜 벤처에 대한 인식이 미흡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우리 사회가 소셜 벤처의 가능성에 주목한다면, 우선 인건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화영씨가 "한때 통장잔고가 254원인 적도 있었다"고 말할 정도로 소셜 벤처 창업은 생활의 위협으로 이어진다. 다시 미현씨의 말이다.

"매일 밤 12시에 퇴근하지만 힘들지 않다. 생활의 위협을 느끼는 게 가장 힘들다. 외국에서는 소셜벤처 보육기관이 사무실을 대여해주고, 일정한 임금을 보장해 준다. 온전히 소셜벤처에 매달릴 수 있고,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사람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는 거다. 소셜벤처는 사람에 투자해야하는 일이다."


태그:#터치포굿, #소셜 벤처, #터치포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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