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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백의종군로 조성사업이 진행된다. 사진은 경남도가 제공한 응취루 복원 조감도
 이순신 백의종군로 조성사업이 진행된다. 사진은 경남도가 제공한 응취루 복원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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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은 이순신 장군의 탄생 464주년이 되는 날이다. '난세에 영웅난다'고 했던가! 400여 년 전에 비하면 지금은 태평천하에 가깝다. 하지만 100년을 채 살지 못하는 인간들로서는 고통의 강약을 가늠하기 힘들다. 오직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의 고통이 크게 느껴질 뿐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들어 스스로 목숨 끊는 이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분명 지금도 힘든 시기다. '영웅'은 누구에게나 다르게 존재할 수 있지만, 희망과 행복의 돌파구를 열어 줄 '영웅'이 좀처럼 뵈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옛 '난세의 영웅'을 그리워하나 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경남도 제공)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경남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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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에 발맞춰 경상남도가 '이순신 백의종군로 조성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47억 원의 예산을 들여 사천을 비롯한 하동 산청 진주 합천에 이르는 161.5km를 정비한다. 1597년 5월26일부터 8월3일까지, 이순신이 경남지역에서 백의종군하며 묵었던 집을 복원하거나 걸었던 길에 이정표를 세운다. 도는 이 일을 경남개발공사에 맡겼다.

이 가운데 사천을 통과하는 구간은 18km정도. 7월21일부터 23일까지 사흘 동안 곤양을 거점으로 십오리원(지금의 곤명면 봉계리)에서 노량까지 정찰을 위해 다녔던 구간이다.

하지만 백의종군로 조성사업이 처음 거론될 때는 사천구간이 빠져 있었다고 한다. 이에 곤양농협조합장을 지낸 정정일씨를 중심으로 경남도에 여러 차례 건의한 끝에 사천구간도 포함시킬 수 있었다.

당시 곤양은 곤양군(昆陽君)으로서 진교 등 하동 일부까지 포함하고 있었고, 지금에 비하면 역할이나 비중 면에서 훨씬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순신이 직접 쓴 난중일기에 따르면, 그는 도원수 권율의 진영이 있던 합천에 머물던 중 1597년7월18일에 "이틀 전 수군이 왜군에 대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남해안지역을 직접 정찰해보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산청 단성과 하동 옥종을 거쳐 7월21일에는 곤양에 이른다. 그리고 지금의 남해 노량까지 단숨에 내려간 뒤 배를 타고 거제까지 야간 정찰을 하고, 이튿날 남해현감을 방문한 뒤 곤양으로 돌아와 하루를 묵는다.

22일 아침에 출발해 진주 수곡으로 가던 중 십오리원에서 쉬었다 간다. 그리고 수곡의 손경례 집에서 머물던 중 8월3일 삼도수군통제사 임명 교유서를 받는다.

 진주 수곡의 손경례 집 복원 조감도
 진주 수곡의 손경례 집 복원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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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경남도의 백의종군로 조성사업 가운데 사천에서 진행될 내용은 어떤 걸까.

가장 많은 예산이 들어갈 곳은 응취루(凝翠樓) 복원이다. 응취루는 이순신이 곤양에서 하루 묵을 때 이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옛 곤양읍성의 객사(客舍) 문루(門樓)였다.

객사가 있던 곳에는 현재 곤양초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그 중에서도 응취루는 "지금의 병설유치원과 강당 사이에 있었다"고 '곤양향토사'는 기록하고 있다. 응취루는 1941년부터 수 년 간 아이들의 교실로 쓰이기도 했으나 1963년 철거되고 말았다.

문화재급 목조 건물이 개보수비가 없어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는 것에 곤양사람들은 지금도 통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응취루 복원에 기대와 애정도 크다. 초등학교 교정에 응취루 복원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자 한 지역민(강춘성 전 도의원)이 자신의 땅을 희사하기로 했단.

따라서 복원될 응취루는 곤양과 곤명을 잇는 58번 지방도와 곤양초교 사이, 성내리의 이른바 '성뜰'로 불리는 곳에 들어설 예정이다. 진출입로 공사가 병행되며 현재 설계 중이다.

 백의종군로 가운데 사천 구간
 백의종군로 가운데 사천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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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의 백의종군로 조성에는 7억원이 넘게 들어간다. 이를 위해 사천시는 지난 23일 3억8500만원을 추가경정예산으로 확보해 뒀다. 나머지는 국비와 도비로 채워진다. 대부분의 예산이 응취루 복원에 쓰이고, 일부는 종합안내표지판(1개) 방향표지판(6개) 산길안내판(1개) 유숙지해설판(1개) 제작과 설치에 들어간다.

'이순신 백의종군로 조성사업'이란 거창한 이름에 비하면 빈약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단지 '이 길을 지나갔다'는 역사적 사실뿐 아니라 '백의종군'이 갖는 감동과 여운까지 전할 수 있으려면 체험요소가 덧붙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법하다.

찻길에 익숙해진 우리가 옛길을 상상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지금 곧은길은 멀리 돌아가기도 했을 것이고, 지금 굽은 길은 산을 넘는 지름길을 이용했을 수도 있다. 속도의 차이는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 옛날 이순신의 백의종군이 지금 우리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오려면 그 시대를 상상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어야 하지 않을까. 미래를 향한 일방적 상상보다는, 과거를 헤아리고 난 뒤에 오는 상상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은 법이다.

그래서 백의종군로가 '본받아야 할 영웅 이순신'을 뛰어넘어 '과거로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으면 더욱 좋을 듯하다. 내년엔 백의종군로를 따라 걸으며 묵상의 기회를 가지고 싶다.

'이순신 백의종군로' 사천구간을 미리 가다

28일 오후, 곤양면사무소 안홍제 계장의 도움으로 정정일 전 조합장을 소개 받아 이들과 함께 백의종군로 일부를 돌아 봤다.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 행로지' 표석. 이곳이 곤양읍성지임을 알리는 표석도 함께 있다.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 행로지' 표석. 이곳이 곤양읍성지임을 알리는 표석도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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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들린 곳은 옛 관아가 있던 곤양면사무소. 면사무소 앞에는 사천문화원에서 세운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 행로지'라는 표석이 서 있다. 면사무소 주위에는 1970년대까지 오래된 한옥들이 남아 있었다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다만 300살이 넘은 비자나무 두 그루(천연기념물 287호)만이 이 자리가 유서 깊은 곳임을 알려준다.
 옛 곤양 관아 자리에는 천연기념물 제287호 비자나무 두 그루만 남았다.
 옛 곤양 관아 자리에는 천연기념물 제287호 비자나무 두 그루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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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곤양객사와 응취루가 있던 곤양초등학교. 이곳은 옛 역사를 더듬을 아무런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학교에도 옛 사진이 남아 있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학교 건물 북동쪽으로 곤양읍성의 성벽 흔적이 일부 남아 있다. 옛 곤양읍성의 북문이 이곳 가까이에 있었단다.

 곤양 객사와 응취루가 있었던 곤양초등학교다. 병설유치원 왼쪽에 응취루가 있었다.
 곤양 객사와 응취루가 있었던 곤양초등학교다. 병설유치원 왼쪽에 응취루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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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곤양초등학교 동쪽 경계. 읍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곤양초등학교 동쪽 경계. 읍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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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취루가 새로 들어설 곳은 곤양초교 운동장 서쪽 끝자락 위 대나무숲 근처다. 여기에 가려면 58번지방도에서 걸어 들어가야 한다. 이곳에도 옛 곤양읍성 성벽 일부가 남아 있다. 굵은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그 아래로는 경사가 심해 이곳이 성(城)이었음이 실감난다.

 운동장 서쪽(오른쪽 끝)으로 응취루 복원 터가 있다.
 운동장 서쪽(오른쪽 끝)으로 응취루 복원 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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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곤양향토학자 정정일씨(오른쪽)와 곤양면사무소 안홍제씨가 응취루 복원 예정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곤양향토학자 정정일씨(오른쪽)와 곤양면사무소 안홍제씨가 응취루 복원 예정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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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취루 복원을 예감이라도 한 듯 누군가가 대나무 정자를 엮어 놨다.
 응취루 복원을 예감이라도 한 듯 누군가가 대나무 정자를 엮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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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곤양면소재지를 빠져나와 진교방향으로 향하는 길이다. 백의종군로 사천구간에서 그나마 비포장에 가까운 숲길이다. 걷기에 운치 있는 길이지만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곤양 맥사에서 하동군 진교 율원으로 넘어가는 1002번지방도, 일명 '밤티재'를 넘는 길이다. 직접 걸어보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이순신이 쉬어 간 곳으로 추정되는 십오리원(지금의 곤명면 봉계리 원전)
 이순신이 쉬어 간 곳으로 추정되는 십오리원(지금의 곤명면 봉계리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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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 구간에서 유일한 비포장 숲길. 낡은 도로안내판이 묵은 길임을 알려준다.
 사천 구간에서 유일한 비포장 숲길. 낡은 도로안내판이 묵은 길임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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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 교유서를 받게 되는 진주 수곡 손경례 집으로 가는 길에 잠시 쉬어 갔다는 십오리원이다. 곤양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정확히 15리(6km) 떨어진 곳으로, 지금의 곤명면 봉계리다. 곤양-진주-하동을 잇는 삼거리에 있는 원전마을에서 이순신이 말을 쉬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역사학자들은 보고 있다.

 원전 앞을 흐르는 곤양천
 원전 앞을 흐르는 곤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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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백의종군로 정비사업조감도
 이순신 백의종군로 정비사업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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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사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뉴스사천#이순신#충무공탄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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