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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유기농 농사짓는 진짜농부 서재환씨
 텃밭에서 유기농 농사짓는 진짜농부 서재환씨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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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동 내 상추를 잘 뜯어 묵었었는디, 날이 쪼까니 풀림서부터 달팽이들이 설치고 댕기는 꼴을 못 봐 주것그마 이~! 상추가 잘 커서 좀 폴아 묵을라다 봉깨 기냥 놔 노먼 안 되것네. 근다고 약으로 조재길 수도 없는 일이라 하우스농사를 오래 진 사람들헌티 물어 봤더마는 야들이 맥주를 좋아헌다는그마.

술 좋아허다가 살림 망해서 패가망신 당허는 사람은 제복 봤제마는 달팽이가 주색에 빠져서 한평생 종 쳤다는 소리는 못 들어 봤는디, 야들을 봉깨 무대뽀로 술 퍼 묵고 좋아헐 일만은 아니다시푸네."

광양 진상의 농부(53·서재환)는 약 하나 안 치고 텃밭 농사를 짓는다. 사람들은 그런 농사법을 유기농이라고 부른다. 농부의 하우스에는 상추와 고추, 얼갈이배추, 열무가 탐스럽게 자라고 있다.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과 더불어 느리게 살아가는 농부

술(맥주)에 빠진 달팽이들
 술(맥주)에 빠진 달팽이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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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갈이배추 이파리 뒤에 죽은 듯이 딱 붙어있는 민달팽이
 얼갈이배추 이파리 뒤에 죽은 듯이 딱 붙어있는 민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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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가 눈자루를 치켜들고 농부의 엄지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민달팽이가 눈자루를 치켜들고 농부의 엄지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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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상추와 배춧잎을 즐겨먹고 습하고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달팽이는 한낮에 여간 찾기가 어려웠다. 상추 잎과 배춧잎을 뒤져봤더니 얼갈이배추의 뒤에 죽은 듯이 딱 붙어있다. 농부는 달팽이 한 마리를 잡아 달팽이는 피부가 마르면 안 되기 때문에 이렇게 배추 뒷면에 딱 숨어있다며 손으로 잡아 보여준다.

민달팽이가 눈자루를 치켜들고 농부의 엄지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느린 달팽이지만 잡식성이어서 상추밭을 죄 뜯어먹고 배추밭으로 옮겨왔다. 그래도 달팽이가 먹는 속도보다 채소가 빨리 자라기 때문에 농부의 몫은 남아있다고 했다. 시골에서 자연과 더불어 느리게 살아가는 농부의 여유로움이 참 부럽다.

옛 시절의 소품들이 즐비하다. 문간채의 서까래에는 석유등과 대바구니가 그네를 타고 소의 목에 다는 방울인 워낭이 걸려있다.
 옛 시절의 소품들이 즐비하다. 문간채의 서까래에는 석유등과 대바구니가 그네를 타고 소의 목에 다는 방울인 워낭이 걸려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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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텃밭에는 옛 시절의 소품들이 즐비하다. 문간채의 서까래에는 석유등과 대바구니가 그네를 타고 소의 목에 다는 방울인 워낭이 걸려있다. 주차장 곁의 지게는 농부가 운동 삼아 사용하는 것이다. 어릴 적 함께 했던 것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더욱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농부는 옛 시절의 생활용품들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어려서 버렸던 것들이 나이 드니까 더 친해져요."

텃밭도서관을 운영하며 텃밭 농사짓는 농부는 농사지으면서 짬짬이 글도 쓴다. 생활 속의 이야기가 진솔한 글이라며 앞으로 사투리를 발굴해 사투리사전도 만들 예정이란다. 경남과 가까운 광양지역은 정통 전라도 사투리가 아니지만 그래도 광양지역의 독특한 사투리사전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전라도 사투리는 무안 쪽이 본방이여. 전라도 깽깽이, 안동 깽깽이 그러거든, 예를 들면 '전라도는 그랑께의 '께'고 , 안동은 '껴'여 '그러니껴' '오셨니껴' 그래요."

눈에 밟히는 땀 흘려 일하는 농부의 아름다운 모습

농부. 그의 텃밭에는 모든 식물들이 자유롭게 자라고 있었다. 농부의 손을 거치면 한낮 잡풀도 나물이 되고 보약이 되는 듯 했다.
 농부. 그의 텃밭에는 모든 식물들이 자유롭게 자라고 있었다. 농부의 손을 거치면 한낮 잡풀도 나물이 되고 보약이 되는 듯 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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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와 함께 텃밭을 휘 둘러봤다. 나물이 지천에 널려있다. 신장과 뼈에 이롭다는 소의 무릎을 닮은 우슬, 사람이 많이 다니는 도로에서도 생명력을 자랑하는 질경이, 뿌리가 국수 가락을 닮은 매꽃, 무리지어 피어나면 하얀 꽃이 아름다운 개망초의 순도 있다. 

감잎과 자리공 순을 땄다. 녹차, 찔레, 쌈으로 좋은 왕고들빼기, 쇠뜨기 등의 순도 소쿠리에 담았다. 물레방아 근처 잔디밭에는 하얀 민들레가 활짝 피었다. 때 이르게 핀 낙하산 모양의 홀씨는 바람에 흩날린다. 웅덩이가의 고마리도 먹는다고 한다. 농부는 비빔밥에 꽃을 넣으면 꽃밥이라며 꽃도 따 넣는다.

재기차기놀이를 하던 뽀리뱅이(박조가리나물), 생명력이 강한 닭의장풀, 쑥부쟁이, 제비꽃도 먹는다며 손으로 뚝뚝 끊는다. 텃밭 주변을 한 바퀴 돌자 온갖 나물이 소쿠리 그득하다. 잡초로 알고 무심코 지나쳤던 들풀이 다 먹을 수 있다니 그저 신기하고 놀랍다. 십전대보탕이 안 부럽다는 농부네 텃밭의 나물들, 이 나물을 무쳐 먹으면 몸이 느낀단다.

쌈으로 좋은 왕고들빼기
 쌈으로 좋은 왕고들빼기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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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나물을 접하고서 새삼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났다. 한낮 잡초도 그의 이름을 불러줄 때 가치가 부여되고, 보양식이 되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농부. 그의 텃밭에는 모든 식물들이 자유롭게 자라고 있었다. 농부의 손을 거치면 한낮 잡풀도 나물이 되고 보약이 되는 듯 했다. 냉이의 이파리를 타고 무당벌레 한마리가 기어간다.

"나물 뜯는 요령은 손으로 뚝뚝 끊으면 되는 거여. 이렇게 돌아다니며 뜯어다먹어. 이곳은 온갖 나물이 자라고 있는 보물단지여."

민들레 밭을 만들기 위해 5년여의 공을 들였다는 잔디밭에는 하얀 민들레가 가득하다. 정각에 앉아 수생식물이 자라고 있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온갖 시름이 다 사라진다. 참 풍광이 멋있노라고 말하자 농부는 저녁 무렵 호수를 바라보며 기울이는 술잔이 아주 그만이란다. 텃밭에서 땀 흘려 일하고 정각에서 땀을 식히는 농부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직도 눈에 밟힌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유기농텃밭, #농부, #달팽이, #텃밭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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