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끝자락(4.28), 말로만 듣던 대안학교 성미산(서울마포 소재) 2학년 학생들이 지금 한창 일손이 딸리는 솔바우농원에 봉사활동을 나온다 합니다. '방학도 아닌데 느닷없이 웬 봉사활동'이야 어리둥절해 하자, 대안학교는 1학년엔 극기 훈련을 통한 인간의 한계도전, 2학년 땐 사랑의 집짓기와 농촌봉사활동, 3학년엔 진로모색 등으로 교육과정이 편성되었다는 선생님 말씀에 '아, 그렇구나' 이해가 됩니다. 그 동안 일반 다른 학교들은 방학동안만 봉사활동을 나왔기 때문입니다.
대안학교(代案學校)는 전인교육, 즉 체험학습과 별도의 교육프로그램으로 운영되므로 종래의 학교와는 다른 학교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작은 학급에 의한 인간성 회복, 아동·학생의 수업계획에의 적극적인 참여, 능력주의, 경쟁주의 원리의 약화, 시민의 광범위한 지원 등의 의무교육 중심 등등…. 특성만 보아도 이들의 교육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금세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오늘 봉사활동 작업내용은 두엄을 파내는 일입니다. 겨우내 쌀겨 깻묵 톱밥 음식물찌꺼기 가축배설물 볏집 부스러기 가랑잎과 부엽토들을 모아 야적장에 쌓아놓았습니다. 인분을 퍼붓고 보온 덮개를 씌워놨더니 두엄들이 흑갈색으로 변했습니다. 더운 김이 무럭무럭 솟아올라 발효가 된 퇴비들을 보고 학생들이 만져보고 또 만지니 함성이 저절로 나옵니다.
햇볕이 들지 않도록 차광 망을 씌워놓고 필요한 때마다 조금씩 퍼다 밑거름이나 웃거름으로 사용합니다. 흙은 보드랍고 탄력이 생겨 달착지근한 냄새가 납니다. 두엄을 헤집을 때마다 흙 속에서 꿈틀대는 지렁이와 굼벵이가 신기해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오늘은 이 거름들을 고추와 옥수수 밭으로 옮기는 중입니다.
중학교 2학년생인 학생들은 자유스러운 학교환경, 가족같은 분위기, 자기 꿈을 마음대로 펼 수 있는 개성 있는 생활이 마음에 들어 대안학교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줄은 몰라도 선생님들이 작업지시를 일일이 안 해도 하루 종일 일사불란하게 일을 시작하고 마무리를 합니다.
내가 현직 교사로 재직할 때 학생들을 인솔하고 작업을 할 때 하나하나 간섭을 하며 잔소리를 퍼붓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내 자신 과거 교사시절을 돌아보며 부끄러운 순간들을 떠올리고 많은 것을 다시 배웁니다.
하루 종일 땀을 흘리며 노동을 한 학생들에게 무엇으로 보답을 할까 생가하다 감자와 고구마를 참나무 장작불에 구워냅니다. 잉걸불에 익혀낸 토종 감자와 고구마, 일을 끝내고 잔디밭에 모여앉아 먹는 그 맛은 그대로 꿀맛입니다. 얼마나 먹어대던지 감자 두 바가지가 금세 동이 납니다. 세상에 태어나 이런 맛은 처음이라며 입맛을 다시고 또 다셔댑니다.
화악산 웅덩이 너머로 해가 몸을 숨길 무렵 학생들은 돌아갔습니다. 학생들이 남기고 간 두엄과 친환경 퇴비들이 며칠 후 고추모종을 옮겨 심을 텃밭에 가득 뿌려 있습니다. 새삼 도시에서 가정과 학원을 정신없이 헤매고 옮겨 다니며 과외 받기에 여념이 없을 또래 학생들을 떠올려 봅니다. 전혀 다른 세상에서 봉사와 실천으로 '살아 있는 현장 교육'을 체험하는 대안학교 학생들이 자랑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여름 하지 무렵 농번기에 다시 한 번 농사체험을 오겠다며 약속을 하고 떠나갔습니다. 학생들이 돌아올 그 날까지 열심히 고추 옥수수 감자들을 탱탱하게 키워 내리라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더 맛있고 감칠맛 나는 참살이 음식들을 그들에게 대접하자면 나도 땀깨나 흘려야할 듯 싶습니다. 오늘따라 텃밭을 빠져나가는 봄바람이 이리 시원할 수가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윤희경의 산촌일기'와 수필방에도 함께합니다. 윤희경 기자는 니난 4월에 '그리운 것들은 산 밑에 있다.' 에세이집을 펴낸바 있습니다. 윤희경 수필방을 방문하면 고향과 시골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을 만나 대화도 나누고 귀향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에세이에 대한 안내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