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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삽으로 진실을 가릴 수 없다.'

 

봄바람 불어 더욱 좋은 5월 5일 어린이날. 의심할 수 없는 이 진리가 자꾸 떠올라 잊히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날 어린이들 앞에서 태연히 밝힌 발언 내용 때문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이 대통령이 어린이날을 맞아 5일 소년소녀가장 등 어린이 260여 명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이 대통령은 아이들과 공연을 관람하고 줄다리기를 하는 등 게임을 즐겼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어린이날이 오면 늘 이런 '이벤트'를 마련했다.

 

이날 이 대통령은 아이들과 질의응답 시간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꿈과 장래 희망을 밝혔다.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어렸을 때는) 초등학교 교장이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지금은 대통령을 그만두면 환경운동, 특히 녹색운동가가 되고 싶습니다."

 

이 대통령은 최근 유난히 '녹색'을 강조하고 있다. '저탄소 녹색성장'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게 정부의 야심찬 계획이다. 또 이를 홍보하기 위해 자전거 타기 같은 대형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결국 이날 이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녹색 행보'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환경운동, 특히 녹색운동가가 되고 싶다"는 발언은 자꾸 마음에 걸린다. 이 대통령은 스스로 '녹색의 화신'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듯하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 대통령을 보면서 녹색이 아닌 삽을 떠올린다. 생명을 키우는 농부의 삽이 아닌, 강과 산을 마구 파헤치는 삽말이다.

 

그동안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표 공약으로 한반도 대운하를 내세웠다. 흐르는 강물을 막고, 강바닥을 파내고, 산을 뚫어 강과 강을 연결하는 대운하에서 녹색을 떠올리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결국 이 대통령의 '대운하 야망'은 촛불에 막혔다.

 

하지만 다시 4대강 정비사업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약 14조 원 들여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 총 16개의 보와 3개의 댐을 만들고, 강바닥을 긁어내 수위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이 사업의 핵심 목표로 ▲물 확보 ▲홍수 방어 ▲수질 개선 ▲생태 복원 등을 내세웠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보와 댐으로 막힌 물은 썩기 마련인데 어떻게 수질 개선과 생태복원이 가능하냐"며 반발하고 있다. 홍수 역시 4대 강이 아닌 강원도 등의 하천에서 발생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정부는 "대운하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환경단체를 비롯한 많은 시민사회 진영은 "4대강 정비 사업은 대운하 1단계 사업이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정부가 "녹색"을 외칠수록 녹색 전문가들의 외면은 늘어난다. 

 

또 이명박 대통령은 그동안 종종 낮은 '생태 감수성'을 드러냈다. 지난 2007년 8월, '대선후보' 이명박은 지리산 노고단을 찾았다. 이 대통령은 GPS로 대선 일을 상징하는 '1219고지'를 찾아 잠시 물결치는 지리산 능선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런 '명언'을 남겼다.

 

"아직 개발이 덜 됐어."

 

또 정부는 입으로는 녹색을 이야기하면서 뒤로는 지리산과 설악산 등 국립공원에 쇠말뚝을 박으려 하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 1일 자연공원 내 케이블카 설치 허용 길이를 현행 2㎞에서 5㎞로 완화하는 내용의 자연공원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지방자치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립공원 규제를 풀고 지리산과 설악산, 그리고 한라산에 케이블카 설치를 허용하겠다는 뜻이다. 현재 전국 12곳에서 케이블카 설치가 추진 및 검토되고 있다.

 

이 때문에 38년 동안 지리산 산장지기를 지낸 '지리산 호랑이' 함태식(81)옹 등은 4일부터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끝장 비박(야외에서 잠 자는 것)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날 함태식옹은 '지리산을 그대로 놔두라'고 적힌 피켓을 목에 걸었다.

 

어느 광고에 빗대면, 장래 녹색운동가가 꿈이라는 이 대통령 때문에 팔순의 '지리산 지킴이'가 집을 나서 1915미터 고지에서 '개고생'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명박 정부는 녹색을 이야기하면서 산과 강, 그리고 들을 마구 파헤치려 하고 있다. 그러면서 어린이들 앞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어린이날을 맞아 이 땅의 아이들에게 선물을 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삽을 내려놔야 한다. "지리산을 그대로 놔두라"는 한 노인의 외침처럼 이 강산을 그냥 놔둬야 한다. 그게 가장 큰 선물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날 이 대통령은 아이들에게 "어린이들이 학교 마치고 다시 학원에 가는데, (그러지 말고) 친구들과 잘 놀고 사랑하는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며 "정부는 어린이들이 너무 공부에 시달리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물을 막고 산에 쇠말뚝을 박는 '녹색운동가'는 기만이다. 마찬가지로 영어 몰입교육을 주장하고 일제고사를 도입한 당사자의 "공부에 시달리지 않도록 하겠다"는 발언은 순도 100%의 거짓말로 들린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삽으로 진실을 가릴 수 없다. 이건 불변의 진리다.


태그:#어린이날, #4대강 정비, #녹색성장, #대운하,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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