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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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4·21 개성접촉'에 이은 추가 접촉을 단순접촉이 아닌 정식회담으로 만들겠다며 '남북한 당국간 개성실무회담'이라는 이름까지 지었다. 하지만 실무협의과정은 순탄하지 못했고, 15일 현재 '일단 무산' 상태에 빠졌다.
북측은 조속히 협상을 하자고 했지만, 남측은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에 대한 의견수렴을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실제로는 억류된 유씨 문제가 회담의제가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요구한 임금과 토지사용료 문제는 기본적으로 현대아산과 입주업체들이 맡아야 할 문제이고, 정부 업무는 유씨의 안전문제와 3통 등 개성공단 인프라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측에서 개성공단을 담당하고 있는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하 총국)은 "우리 소관사항이 아니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북측은 3월 30일 자신들의 '정치체제를 비난하고 여성 종업원을 변질·타락시켜 탈북을 책동했다'는 이유로 현대아산 직원 유씨를 억류한 뒤 46일이 지난 현재까지 접견도 시키지 않으면서 '대남' 카드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정부가 유씨 사건과 개성공단의 존폐로까지 연결될 수 있는 협상을 북측 총국과의 접촉으로만 돌파구를 찾겠다고 하는 것은, '꼬리로 몸통을 흔들어보겠다'는 발상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방식으로는 성과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북한이 개성공단 통행 차단을 반복하고, 유씨 문제가 장기화 된 것은 개성공단 자체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북측은 개성 추가접촉은 총국차원에서 개성공단의 특혜조치, 즉 임금과 토지사용료를 올리는 문제만을 다루겠다는 입장이고, 이는 결국 유씨 문제는 다른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세현 "남북관계, 결국 톱다운 방식으로 풀어야"
1999년 금강산에서 '남쪽 정부기관의 공작원'이라는 혐의로 억류됐던 관광객 민영미씨가 6일 만에 석방된 것은 남북관계가 원만했고 국정원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간의 비공개라인도 있었기 때문이다. 남측이 이 문제 때문에 곧바로 중단조치를 내린 금강산 관광사업 같은 지렛대도 있었다. 지금은 핫라인도, 지렛대도 모두 사라지고 개성공단 하나만 남은 상황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통일부의 접촉노력에 대해 "어쨌든 계속 끈을 유지하면서 큰 판에서의 상황변화가 올 때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결국 "큰 판에서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토로이고, 개성 추가접촉이 성사된다 해도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결국 남북관계는 톱다운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 정상회담이 돼야 장관회담이 되고 그 다음 단계가 풀린다. 남북관계는 그렇다"고 충고한다. 남북한은 각각 최고지도자들에게 권력이 고도로 집중돼 있고, 특히 북한은 그 정도가 훨씬 강하기 때문에 각종 문제가 최고지도부 선에서 가닥이 잡혀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4·21통지문에서 개성공단에 특혜를 준 배경을 '6·15공동선언의 정신에 맞게 우리민족끼리 화해하고 협력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 남측정부가 북남선언들과 '우리민족끼리' 정신을 부정하고 반공화국 대결정책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특혜를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6·15와 10·4선언에 대한 확실한 이행, 즉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바꾸라는 것이 북측의 핵심적인 요구였다.(정부는 기자들이 요구를 한 뒤에야 북측 통지문의 전문 내용을 공개했었다.)
'뭔가 하고 있다'는 환상 주겠다는 것인가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 정부는 '개성접촉 을 통해 뭔가 될 것처럼, 그리고 정부가 이를 위해 뭔가 열심히 하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첫 남북당국자간 만남이었던 4월 21일의 개성접촉에 대한 정부의 공식입장은 "대화의 모멘텀이 마련됐다"는 것이었다. "이 국면까지 온 것도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의 실용적 결과"(청와대 핵심관계자)라는 말까지 나왔다.
'환상'이 깨지면 분노는 더 크다. 개성접촉이 무산될 경우 남측은 모든 책임을 북측에 지우려 할 것이고, 보수언론이 여기에 가세하면 '개성접촉'은 반북의식을 확대시키는 소재로만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가 보수층 결집, 경제위기와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방어기제 확보 차원에서 남북관계 악화를 일정 수준에서 방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이승환 민화협 집행위원장, <민족화해> 5-6월호)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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