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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딸의 상상력은 무한하다. 혼자서 상상 놀이를 할 때면 신데렐라부터 시작하여 바닷속 돌고래까지 다양한 역할을 도맡곤 한다. 이렇게 상상 놀이를 하면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공주 놀이'.

 

분홍색 보자기를 두르고는 시장에서 천원에 산 왕관까지 쓰고 나면 영락없는 핑크 공주다. 이렇게 치장하고서 "난 분홍색이 좋아", "엄마, 이건 비밀인데, 사실 난 공주야" 라고 말하는 딸을 보면 좀 걱정이 된다. 저러다가 허황된 세계만 좋아하고 허영심으로 가득한 아이가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이런 걱정을 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여섯 일곱 살 아이를 둔 엄마들을 보면 대부분 "우리 아이가 너무 분홍색만 좋아해서 분홍 옷만 사달라고 떼를 쓴다. 바지를 절대 안 입으려 해서 걱정이다"라고 말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우리 아이는 그 정도는 아니니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그러나 핑크색에 대한 편향적 선호가 심한 것 같아 다양한 색이 모두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핑크 공주>는 이처럼 핑크색만 좋아하고 공주병에 걸린 아이들에게 읽어주면 좋을 책이다.

 

핑크색을 좋아하는 주인공 여자아이는 엄마와 함께 환상적인 핑크색 컵 케이크를 만들어 먹는다. 핑크색 컵 케이크가 좋은 아이는 저녁을 먹고서도 케이크를 먹고 자기 전에도 몇 개 더 먹고 잔다.

 

아빠한테 핀잔을 듣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핑크색 컵 케이크를 많이 먹고 자니, 다음날 아침 아이의 모습은 온통 핑크색으로 변해 있다. 아이는 핑크색 자신의 모습이 너무 예뻐서 눈물이 날 정도다.

 

핑크색 공주 옷을 입고 '나는야, 핑크 요정'이라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의 모습은 상상 놀이를 펼치는 우리 딸과 닮았다. 걱정이 된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간다.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충고한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핑크색 컵 케이크, 핑크색 풍선껌, 핑크색 솜사탕은 먹으면 안 된다." (말도 안 돼!)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려면 초록색 야채를 꾸준히 먹어야 한다." (우웩!)

 

그러나 핑크색으로 사는 게 언제나 기쁜 것만은 아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놀이터에 들른 주인공은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친구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슬프다. 핑크색 꽃과 뒤섞인 주인공의 모습은 사람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손을 흔들자, 벌이 날아와 콧등에 앉는다. 벌을 쫓으려고 몸을 움직이자 얼마 안 가 벌과 나비와 새들이 주인공 주위에 몰려들기 시작한다. 자신은 꽃이 아니라고 아무리 외쳐도 소용없다.

 

엄마와 함께 집에 간 핑크 공주는 의사 선생님이 얘기한 것을 무시하고 다시 또 컵 케이크를 먹는다.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뜬 핑크 공주는 기분이 이상하다. 거울 앞으로 달려 가 보니 주인공의 몸은 핑크색을 넘어서 빨간색이 되어 있다.

 

"'안 돼, 빨강은 싫어!' 나는 소리쳤어요. 어젯밤 컵 케이크를 먹는 게 아니었는데! 빨강색이 되긴 싫은데! 나는 원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죠."

 

초록색 야채 주스를 마시고 완두콩, 오이, 시금치, 상추를 먹은 주인공은 예쁜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주인공은 빨강 색도 아니고 핑크색도 아닌 원래의 자기 모습에 만족한다.

 

지은이 소개

지은이 빅토리아 칸과 엘리자베스 칸은 뉴욕 브루클린에서 함께 자란 자매다.

 

글을 쓴 엘리자베스 칸은 의사로 일하는데, 아직까지 핑크 중독증 환자는 만나보지 못했다. 여러 신문, 잡지, 책에 글을 발표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빅토리아 칸은 많은 잡지, 신문, 책의 표지와 본문에 멋진 그림들을 그려 상을 받았다. 이 책도 <뉴욕타임스> 어린이 책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는 남편과 두 핑크 공주들과 함께 뉴욕의 빵집들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컵 케이크를 맛보기도 한다.

책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교훈을 제시한다. 몸에 좋지 않은 컵 케이크를 많이 먹으면 신체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것, 핑크색만 지나치게 찾는 행동은 좋지 않다는 것 등. 평상시 아이들이 자주 벌이는 좋지 못한 습관을 교정하는 데에 긍정적이다.

 

특히 아이가 '단 음식'만 찾는다거나 '화려한 핑크색'만 좋아한다면, 책을 읽어주면서 어떤 것이 바람직한 행동일까 생각하도록 유도하면 좋겠다. 이 책은 남자 아이들보다 핑크색에 열광하고 공주를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읽으면 더 큰 교육적 효과가 있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섯 살 딸이 말한다.

 

"엄마, 컵 케이크는 많이 먹으면 안 되는 거지?"

"응, 그리고 핑크색만 너무 좋아하면 어떻게 될까?"

"몸이 분홍색으로 변해요. 그건 너무 무서워. 난 지금 내 모습이 좋아요."

 

그렇다. 아이들은 책을 읽으며 스스로 터득하고 배운다. 반복적으로 말하는 그 어떤 가르침보다 재미있는 동화 한 권이 더 큰 생각을 주기도 한다. 지금 아이가 "바지는 절대 안 입어, 핑크색 옷만 사 주세요"라고 떼를 쓰는 시기라면 <핑크 공주>를 읽으며 스스로 생각하게끔 유도해 보면 좋을 것이다.


핑크 공주 붙였다 떼었다 스티커북

빅토리아 칸 지음, 달리(2013)


#어린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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