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한 도로를 달려 오후에 벨리즈 시티에 도착했다. 보통 중미 수도는 멕시코나 콰테말라, 파나마처럼 시티를 붙이는 게 정석이지만 이곳은 경제상업의 중심지지 행정수도는 벨모판이라고 따로 있다.
이곳이 위험하단 소리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역시나 벨리즈 시티에 도착하자마자 일이 일어났다. 자전거로 도로 가를 가고 있는데 트럭 한 대가 지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트럭 뒤 짐 칸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바람결에 까닭모를 과격한 육두문자를 날려 보내며 표정과 몸짓만으로도 심각한 위협을 가했다. 굳이 의역하자면 "꺼져! 재수 없는 XXX야. 여기 들어오면 제 명에 못 살 줄 알아!" 정도? 놀라지 마시라. 벨리즈 시티 들어오면서 똑같은 상황을 두 번이나 겪었으니까.
신고식부터가 아주 화끈했다. 행인들의 표정은 어두워보였고, 길을 물어보는 것에도 긴장하며 접근해야 했다. 아프리카 혈통의 근육질 남자들은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길거리에서 여자들은 좀처럼 볼 수가 없었다. 잿빛 건조함으로 마주한 도시는 낯설고, 차가웠다.
에어컨이 딸린 호사스런 직원용 도미토리를 혼자 쓸 수 있게 배려해 준 소방서에 짐을 풀고 대원이 건네 준 중국 도시락으로 허기를 달랬다. 여행하면서 지친 몸과 마음으로 기댈 유일한 안식처는 역시 소방서와 경찰서뿐이다. 이젠 이 두 곳이 내 집 안방마냥 편할 정도다.
숙소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뜬금없는 호기심에 사로잡혔다. 도대체 왜 위험하다는 건지 이 한 몸 바쳐 테스트해보기로 한 것이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미션이다. 물론 아주 어리석은 탐심이다. 그러나 모험본능이 세포 하나하나에 알알이 박힌 자에게는 오직 전진만 있을 뿐, 몸을 사리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물론 무대포로 가는 건 아니고 나름 준비를 했다.
샤워로 더위를 씻어낸 후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도심거리를 배회해 보기로 했다. 어둠이 도시를 감싼 밤 8시 55분, 수중엔 47벨리즈 달러(2008년 당시 한화 약 2만4000원)를 챙겼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잃어도 좋을 그런 돈이었다. 거기에 손목시계만 차고, 모든 것은 숙소에 남겨놓고 나왔다. 혹시나 트레이닝복까지 벗겨간다면 할 말이 없지만.
기분 좋은 시원한 해풍이 뺨을 간질인다. 먼저 소방서 쪽에 나 있는 퀸 스트리트를 거닐었다. 비교적 밝고, 안전한 길이다. 창문을 통해 새어 나온 불빛을 통해 가난한 소리가 들려오지만 화목하고 아늑하게 느껴진다.
벨리즈 가정은 그렇게 폐쇄적이지 않기 때문에 맘만 먹으면 어느 정도 집안 내부까지 어슴푸레하게나마 볼 수 있다. 어떤 집에서는 파티를, 어떤 집에서는 포커 게임을, 또 어떤 집에서는 옹기종이 둘러앉아 수다를 떤다. 퀸 스트리트에 경찰서가 있는 이유로 마음이 가볍다.
20여 분간 퀸 스트리트를 배회했는데 발걸음은 가벼웠다. 예정시간인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갈 것 같았다. 이윽고 벨리즈 시티의 교통과 행정의 가교 역할을 하는 스윙 브리지를 건너 위험하다는 킹 스트리트를 향해 갔다.
그저 다리 하나를 건넜을 뿐인데도 분위기 자체가 심각하게 음산하고 무거워보였다. 가게마다 청원경비가 있지만 중국식당이나 여타 가게와는 달리 확실히 이쪽은 젊고 힘센 경비들이 건물을 지키고 서 있었다. 그리고 눈빛이 마주치면 한 판 붙어보자는 듯이 절대 기싸움에 밀리지 않는다. 인상은 타이슨 급이요, 분위기는 호랑이 우리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 역시 속기침을 하며 최대한 건들건들하게 허리를 곧게 펴고 양 팔을 최대한 벌린 채 팔자걸음의 거만한 양반 폼으로 주눅 들지 않고 거리를 걸었다. 거기에 길거리 분위기를 급속히 냉각시키는 젊은 무리들과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게 상책이다. 경찰도 특정 시간 형식적 감시를 빼곤 아예 순찰하지도 않는 구역이란다. 그러니 이게 살아나갈 방도란 걸 몸이 반응하는 것이다.
그 때 갑자기 길옆에서 한 아이가 튀어나왔다. '아이쿠' 놀란 내가 토끼눈을 뜨고 바라보니 녀석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1달러만 주세요."
하지만 너무 갑작스런 일인데다 주변에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보는 눈들이 있었으므로 무심히 지나쳐야 했다. 녀석은 별 일 아니라는 듯 금세 자리를 떠났다. 심장과 걸음이 동시에 빨라졌다. 나는 다시 작은 다리를 건너 은행들이 즐비하게 있는 알버트 가로 행했다. 소방서에서 꽤 먼 거리까지 온 것이다.
어둔 골목길에서 사람들은 다들 나를 한 번씩 쳐다보고는 "쿵푸, 치나!"를 외친다. 그리고는 너나 할 것 없이 택시 필요하냐고 묻는다. 택시 강도로 돌변할지 모를 일이라 못 들은 체 지나갔다. 행여 안전하게 탄다고 해도 밤눈 어두운 손님 데리고 뱅글뱅글 돌아가는 바가지 노림수에 당할지 모를 일이다. 골목 안 사람들은 요상한 인종의 출현에 말없이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다.
알버트에서 다시 킹 스트리트를 가기로 했다. 긴장 탓에 너무 듬성듬성 본 것 같아서다. 70년대 각진 낡은 세단을 손세차하는 거구의 흑인에게 길을 물었다. 그리고는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내 뒤를 급히 쫓아왔다. 그리고는 다급하고도 간절하게 외쳤다.
"1달러만 제발."
살짝 당황한 난 트레이닝복 차림임을 강조하며 없다며 딱 잡아뗐다. 주머니를 뒤지며 걸리던 지폐의 날카로운 선이 감정을 동요시켰으나 신속한 이성이 이내 감정을 제재하고 나섰다.
'1달러를 주면 1달러만 원할 것 같아? 네 주변에 보는 눈이 몇 개야?'
잃어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지고 나온 돈 때문에 오히려 오해로 인해 더 큰 해를 입지 않을까 두려움으로 범벅된 가슴을 진정시키고 잰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갔다. 190cm는 되어 보이는 키, 우람한 근육질과 건강한 블랙톤의 피부. 맘만 먹으면 날 주먹 한 방으로 제압하고 돈을 뺏어갈 정도의 체격이었다.
그런데 그는 계속 내 뒤를 쫓아왔다. 태연한 척 했지만 이미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있었다.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니었다. 그는 1달러를 스무 번은 외치며 아쉬운 표정으로 끈질기게 쫓아오더니 체념하고 그대로 뒤돌아섰다. 도시 내에서 그리 못 살아 보이는 것도 아닌데 외국인을 보면 습관성으로 구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리가 풀리고, 자꾸 호흡이 불규칙해졌다.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 돌아서서 킹 스트리트 중심 쪽으로 들어서려는데 갑자기 검은 밴 한 대가 내 앞에 서더니 서서히 창을 내렸다. 교양 있어 보이는 부부가 타고 있었다. "킹 스트리트엔 밤에 약하는 녀석들이 총 들고 위협하는 아주 위험한 거리니 절대 가지 말라"고 충고한다. 몇 번 들었던 얘기다. 그리고 이미 시간은 예정했던 한 시간에 육박하고 있었기에 나는 이제 계획을 접고 그들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들은 나의 결정에 만면에 웃음을 보이며 대단히 흡족해 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 하나 구한 셈 치면 그럴 것이다. 되돌아오는 길. 하지만 처음에 직각으로 와서 알아보기 쉬웠던 길이 골목길 몇 개를 무작위로 통과했더니 그만 혼란스러움에 길을 잃어버렸다.
더욱이 킹 스트리트는 도심인데도 주변에 마치 내전이라도 겪은 듯 벽은 닳고, 지붕이 꺼진 채 망가져 가는 집들이 황폐한 분위기를 더해 무서움이 더해갔다. 이젠 정말 소방서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긴박하게 기억을 재촉하며 겨우 큰 길을 찾아냈다. 그리고 다시 알버트 가로 나왔을 땐 살았다란 생각에 멋쩍게 웃음이 나왔다.
겨우 스윙 브리지를 발견하고 다시 되돌아 걸어오니 익숙한 소방서 앞이 어찌나 반갑던지. 무사귀환을 축하하며 축축이 젖은 트레이닝 복 속의 더움을 털어내려 환타 한 병을 사서 미친 듯이 입 속으로 부어 넣었다. 마침내 정확히 100분 만인 밤 10시 35분, 나는 굳어진 근육을 움켜쥐며 침대 위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밤늦게 낯선 곳에 절대 혼자 돌아다니지 마라!
너무 뻔한 결론을 얻기 위한 무모한 도전은 그렇게 싱겁게 끝이 났다. 가슴이 여전히 진정되지 않는 걸 보니 내가 결과를 차치하고서라도 큰 사고를 치긴 쳤구나 하는 생각에 새삼 소름이 끼쳐 잔물결을 맞듯 살짝 몸이 떨려왔다.
'이 철없는 것아. 앞으론 상황파악 좀 하고 저지르자.'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저서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 출판)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