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리산은 큰 산이야. 우습게 보면 안 돼. 산신이 노해서 화를 입어. 무서워해야 해."

 

지난 15일 저녁 경상남도 함양에서 지리산 입구로 들어가는 버스 안. 옆자리의 할머니는 등산 가방을 짊어진 내게 말을 걸어왔다. 지리산 가느냐고, 어디로 올라가느냐고 묻는 할머니는 지리산이 큰 산임을 강조했다. 뜬금없이 내뱉는 말이지만 오랜 세월 살면서 느껴온 지리산에 대한 촌로의 마음이 배어 있었다. 팔령에서 내린다는 할머니는 올해 일흔넷이라고 했다.

 

혹시나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 케이블카 이야기를 꺼내 봤다.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놓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할머니의 대답은 단순했다.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었다.

 

"산을 함부로 건드리면 안 돼. 금강산을 아버지 산이라 하고 지리산을 어머니 산이라 하잖아. 어머니 산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거야. 예전에도 산 우습게 봤던 사람들은 다 해를 입었어."

 

할머니의 말은 상식적인 믿음 같은 것이었다. 착한 일 하면 상 받고 나쁜 일 하면 벌 받는다는. 산이나 자연은 함부로 하면 안 되고 두려워하고 무서워해야 한다는. 아주 자연스러운 말이었지만 가벼이 들리지 않았다.

 

"산을 함부로 건드리면 안 돼. 우습게 봤다가는 해를 입어"

 

 

16일 오전 백무동 계곡. 지리산에는 새벽부터 내린 빗줄기가 쉼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비바람은 더욱 세찼다. 자연의 무서움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능선 위의 거센 바람은 정상이 가까워올수록 더욱 강해졌고, 몸을 휘청거리게 할 정도였다.

 

어렵게 당도한 천왕봉 아래 장터목산장. 사방의 시야가 막힌 산장 주변에는 운무가 가득 끼어 있었다. 악천후의 날씨는 정상 접근을 어렵게 만들었다. 천왕봉을 목표로 장터목에 도착한 사람들은 악화된 기상에 아쉬워하며 발걸음을 돌리고 있었다. 개인의 욕심보다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자연을 거슬렀다가는 해를 입을 수 있기에.

 

천왕봉에서 펼쳐지고 있는 케이블카 반대 1인 시위도 이날은 장터목에 머물러 있었다. 열흘 넘게 붙박이 시위를 펼치고 있는 전 연하천 산장지기 김병관씨는 취사장에서 등산객들의 서명을 받고 있었다. 그는 지리산에서 보름 가까이 1인 시위를 펼치는 중이었다.

 

케이블카를 반대하는 환경단체들의 1인 시위는 지난 4일 천왕봉에서 처음 시작됐다. '어머니의 산에 철탑을 꽂지 말라'라는 펼침막을 들고 시작된 시위의 첫 주자는 올해 82세인 전 피아골 산장기지 함태식 선생. 평생 산을 지켜온 '지리산 호랑이'가 산이 훼손될 위기에 처하자 스스럼없이 나선 것이다.

 

뒤이어 원로 산악인이자 지리산 작가인 성락건 선생님, 종걸 스님(전 화엄사 주지), 연관 스님(전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 민병태 현 치밭목 대피소장, 산악인 남난희 선생, 송영호 전 뱀사골 대피소 산장지기 등이 1인 시위를 이었고, 얼마 전까지 연하천을 지켰던 김병관씨는 붙박이로 지리산에 머무르며 1인 시위를 이어가는 중이다.

 

"민족정기가 흐르는 곳을 파헤치지 못해 안달"

 

등산객들을 상대로 케이블카가 허용돼서는 안 됨을 역설하고 있던 김병관씨는 "(환경부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할 줄은 몰랐다"며 케이블카를 추진하고 있는 정부의 행태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경제와 개발논리라는 허구와 환상에 빠져 환경부는 환경 보호를 포기했고 지자체와 주민들은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고 있다는 것.

 

"케이블카를 놓으려면 최소 200억에서 최대 1000억 정도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중간치만 잡아도 500억인데, 실질적으로 주민들에게 돌아갈 이익은 없어요. 지리산의 경우는 경관이 수려한 산도 아니고 묘향산, 계룡산 등과 함께 민족정기가 흐르는 곳입니다. 왜 이런 산들을 파헤치지 못해 안달을 하는지 화가 납니다."

 

그는 케이블카 때문에 기꺼이 실업자의 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2006년부터 연하천 대피소를 관리했던 그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연하천을 직영화하면서 2008년 계약직 직원이 됐고, 지난 4월 30일 재계약이 예정돼 있었다. 2년만 잘 견디면 정규직이 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지리산에 케이블카 위기가 닥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재계약을 포기했다고 한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 신분으로는 반대 운동을 하기에 제약이 많을 것 같아 재계약 안 하겠다고 먼저 이야기했습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환경부의 산하 기관이니 거기서 일하면서는 케이블카 반대 운동을 제대로 못할 것 같아서요.  그리고 이렇게 지리산에 올라온 것입니다."

 

그는 진정성이 통한 듯 주변의 격려와 성원이 많다며 지속적으로 싸워나가겠다고 다짐했다. 25일 환경부의 케이블카 설치 시행령 등의 입법 예고 기간이 끝나면 지리산에서 자리를 옮겨 정부종합청사 등에서 시위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했다.

 

"케이블카는 어느 한 곳만 허용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하나만 설치되면 잇따라 다른 곳에 설치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특히 지리산 같은 경우는 그렇게 되면 케이블카가 주렁주렁 매달리게 됩니다. 국립공원이 아닌 유원지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지요. 어떻게 하든 반드시 막아야만 합니다. 막을 때까지 계속 싸워나갈 작정입니다."

 

장터목으로 모여든 등산객들 또한 그를 지지하며 케이블카 반대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연하천 산장지기로 있는 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장터목에서 만난 그를 반가워하며, 곳곳에서 돕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저녁 취사를 위해 취사장에 모인 사람들은 자청해서 반대 서명에 동참하며, 케이블카 반대에 호응하고 있었다. 통영에서 온 박희진씨는 "통영에 새로 생긴 케이블카도 타 봤지만 호기심에 한번 타보고 싶었을 뿐, 몇 번씩 타고 싶은 마음은 안 생기더라"며, "케이블카가 되면 가뜩이나 사람이 많이 오르는 정상부가 더욱 황폐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안양에서 15년만에 천왕봉에 오르기 위해 장터목을 찾았다는 양승환씨는 "케이블카가 놓이면 산에서 얻을 수 있었던 아름다운 추억이 없어진다"고 말하고 "찬성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일부 이해는 가지만, 그렇다고 해서는 절대 안 될 일이 케이블카 설치"라고 못박았다.

 

지리산을 종주 중인 강원대 동아리의 한 학생은 "케이블카를 놓으면 이렇게 힘들게 종주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그럼 편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면서도 "케이블카는 환경을 파괴하는 일이기에 절대 설치돼서는 안 될 것"이라며 반대서명용지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어머니 산에 철탑 꽂으면 안 돼"

 

 

17일 오전. 밤새 내리던 비가 그치고 있었다. 운무는 가득했지만 산행에는 지장이 없는 날씨. 천왕봉 1인 시위가 재개됐다. 장터목을 출발하는 김병관씨는 "장터목에서 천왕봉으로 출퇴근하는 것에 산악인들이 부러워하고 있다"며 천왕봉을 향해 성큼 발을 내딛었다.

 

도중에 쉬고 있는 등산객들을 만날 때면 케이블카 반대에 동참해 달라는 요청이 어김없이 이어졌다. 지리산을 비롯한 전국의 명산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그의 호소에 대부분 등산객이 공감하고 있었다.

 

제석봉을 지난 곳에서 하산 도중 쉬고 있던 등산객들이 "케이블카 막느라 수고 많다"며 "힘내시라"고 격려하자 김병관씨가 한마디 건넸다.

 

"저기 색깔 있는 것 한 잔 주시면 힘 날 것 같은데…."

 

웃음을 머금던 등산객들은 술 한 잔을 가득 따라줬다. 안주까지 먹여주며 성원하던 그들이 김병관씨에게 하는 요청은 간단했다. 열심히 싸워달라는 것.

 

"복분자 한 잔 마시니 힘난다"며 미소 짓던 그는 케이블카를 찬성하는 등산객들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케이블카 반대 시위에 호응하고 있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 수치로 따지면 90% 이상이라고 했다.

 

천왕봉 정상에서 만난 등산객들도 케이블카 반대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이들은 바닥에 놓인 반대서명 용지에 단체로 서명하며 케이블카를 막아달라고 당부했다.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 만큼 천왕봉의 비바람은 세찼지만 꿋꿋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병관씨에게 등산객들은 격려의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어머니 산에 철탑을 꽂는 일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말도 안 되는 짓거리지. 산을 왜 파헤치려고 해."

"케이블카 놓으면 산이 지저분해져요."

"케이블카 꼭 막아야 합니다. 힘내세요!"

"일제 쇠말뚝 뽑아낸 자리에 철탑 박으려는 건데 그러면 안 되지요."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큰 울림을 이루고 있었다. 김병관씨는 "지금껏 산에서 모금한 돈만 100여만 원에 가깝다"며, "등산객들이 자발적으로 성금도 내고 있어 힘이 된다"고 전했다. 이날도 2시간만에 서명한 사람이 200명이 넘어섰다면서 등산객들의 호응에 고무된 표정이었다.

 

"케이블카 설치 염원? 100명 와도 나 혼자 상대"

 

하지만 1인 시위가 진행되고 있던 17일 정오 무렵 '케이블카 설치 염원'이 적힌 플래카드가 잠시 펼쳐지는 일도 있었다. 일단의 산청군청 직원들이 천왕봉 정상에 올라 사진을 찍은 뒤 내려간 것.

 

자신을 산청군 주민복지과 소속이라고 밝힌 한 직원은 "군청 공무원들이 과별로 번갈아 돌아가며 등반을 하고 있다"면서 이날 자신이 소속된 부서가 올라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케이블카 반대 시위에 대한 언급을 피한 채 사진만 찍고는 바로 하산했다.

 

이를 지켜보던 김병관씨는 "저런 사람들 100명 와도 나 혼자 상대하겠다"면서 "쉬는 날 직원들 떠밀어 올려 보내는 군수도 문제"라고 지적하고, "거의 모든 등산객들이 반대하니 저렇듯 사진만 찍고 내려가기 바쁘다"고 말했다. 그는 "산청군수가 직접 올라와 나와 케이블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봤으면 좋겠다"면서, "환경훼손에 아랑곳없이 케이블카를 추진하고 있는 지자체들의 모습을 비판했다.

 

산청군청 직원들이 하산을 시작하자 그들이 내려가고 있던 중산리 방향을 향해 김병관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리산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민족의 영산에 케이블카가 곳곳에 매달리려 하고 있습니다. 이를 막지 않으면 전국의 명산이 유원지로 전락하게 됩니다.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산을 찾으신 여러분들이 도와 주셔야 합니다. 케이블카 반대에 동참해 주세요."

 

이내 박수가 나오며,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반대서명을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를 지지하기 위해 백무동으로 올라왔다는 산악인 20명도 천왕봉에 다다르고 있었다.

 

케이블카 희망 불어넣는 환경부, 꿈에 부푼 지자체

과열되는 지자체들의 케이블카 경쟁

 

최근 빚어지고 있는 케이블카 논란의 주범은 환경부다. 환경부가 환경 보호를 포기하면서 재앙과도 같은 상황이 벌어지려 한다는 것이 환경단체 관계자들의 지적. 그들은 환경부 장관이 나서서 케이블카를 독려하는 모습에 강하게 반발하며 환경부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환경부가 허용 방침을 정해 놓으니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나서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환경부는 책임을 지자체들에 떠넘기고 있다. 환경부 담당자들에 따르면 최소한으로만 허용할 계획인데 지자체들이 과열경쟁하고 있다는 것. 이들은 산에 주렁주렁 케이블카가 매달리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일부 지자체들이 적극 추진 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그럴수록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 말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부의 태도는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다. 논란을 일으키고 부추겨 놓고는 지자체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환경부가 환경에 대한 기본 인식이 있는지 자체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지자체들은 환경부가 기준을 완화하면서 케이블카 유치경쟁에 뛰어들게 됐다고 말하고 있다. 옆의 지자체가 뛰어드는데, 같은 조건인 처지에서 가만히 있기 어렵지 않겠냐는 것. 지자체의 담당자들은 반대 여론에 부담스러운 모습이었지만 그렇다고 환경부가 설치를 도와주겠다는데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들은 환경부가 준 희망 덕분에 케이블카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15일 산청군청에서 만난 오무세 산청군 케이블카 추진팀장은 "지역 경제를 위해서는 케이블카가 필수적"이라며 "케이블카를 놓게 되면 등산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어 황폐화된 등산로가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산리의 경우 연간 50만 명 정도가 오르는 곳인데, 5만 명 정도로 줄일 수 있다는 것.

 

또한 "산청에서 추진 중인 케이블카는 폐쇄형으로 정상부에 올라서도 밖으로 나갈 수 없고 그저 전망만 볼 수 있게 할 것이기에, 설악산 권금성처럼 주변부가 황폐화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등산 배낭을 메고는 탈 수 없게 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리산권 주변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케이블카 설치에 나서는 데는 그 역시도 달갑지 않은 표정이었다.

 

최근 케이블카 경쟁에 뛰어든 함양군 강성갑 문화관광과장은 "지리산권 지자체들이 케이블카를 통한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할 생각"이라며, 함양군도 유치 경쟁에 물러설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구례, 남원, 산청이 추진하고 있는데 같은 지리산권인 함양이 가만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

 

실무를 맡고 있는 함양군 권충호 계장은 "최근 군의회의 승인을 거쳐 추가 경정 예산을 확보했고, 곧 타당성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말하고, "지리산이 워낙 크기에 하나만 놔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법 개정이 이뤄지는 초기에 추진해야 설치하기가 수월할 것"이란 게 그의 예상이었다.

 

환경부가 불어넣은 바람에 지자체들이 휘둘리는 모습이었다.

 


#지리산#케이블카#1인 시위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