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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물낚시로 유명한 태안 정죽리의 죽림지 첫 민물낚시를 도전한 죽림지의 모습. 저수지안에는 수많은 물고기들이 있을텐데 초보낚시꾼을 알아보나보다.
▲ 민물낚시로 유명한 태안 정죽리의 죽림지 첫 민물낚시를 도전한 죽림지의 모습. 저수지안에는 수많은 물고기들이 있을텐데 초보낚시꾼을 알아보나보다.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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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신록을 촉촉이 적셔주는 단비가 내린 뒤 갠 지난 주말(17일) 민물낚시로 유명한 충남 태안의 죽림지를 찾았다.

태안 최대 수산물시장으로 유명한 신진도가 지근거리에 있어 바다낚시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머리가 복잡해질 때마다 가끔 신진항 등대를 찾아 바다낚시를 즐기곤 했었는데, 민물낚시는 처음 하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민물낚시를 주로 즐기는 지인들 말을 들어보면 바다낚시도 매력이 있지만, 힘이 좋은 가물치를 감아 올릴 때 짜릿한 손맛을 느껴본 강태공이라면 민물낚시가 더 매력적이라고 말할 것이라며 열변을 토해냈다.

낚싯대는 어떤 것을 쓰며, 찌는 또 어떤 종류를 사용해야 하는지, 미끼는 무엇을 써야 입질이 잘 오는지 등 민물낚시를 했던 경험을 토대로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그 많은 설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민물의 왕 가물치를 잡으면 한참동안 사투를 벌여야 비로소 월척을 낚을 수 있다는 것과 잡히지 않는다고 자꾸 자리를 옮기지 말고 한 곳에서 기다리는 인내심이 대어를 낚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 뿐이었다.

찌가 어떻고, 미끼가 어떻고는 그냥 흘려보냈다. 왜냐하면 낚시터 주변에 있는 낚시점에서 물어보면 친절하게 설명도 해 줄 것이고, 낚시 바늘도 알아서 잘 묶어 줄테니까 말이다.

가물치 잡을거유, 베스 잡을거유?

비가 내린 후여서 그런지 낚시터로 가는 길은 바람이 몹시 불어댔다. 낚시터 주변에 차를 주차한 뒤 낚싯바늘과 미끼를 구입하기 위해 인근 낚시점으로 향했다.

잠시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면 대나무 낚싯대에 미끼로 쓸 지렁이는 집 인근의 두엄탕(논과 밭에 뿌리기 위해 퇴비를 쌓아놓은 곳)에서 삽으로 땅을 파서 직접 잡았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미끼로 쓸 지렁이도 사야만 할 정도로 취미와 레저를 즐기는데도 모두 돈이 없으면 즐길 수 없다는 게 아쉽게 생각된다.

낚시점에 도착해서 낚싯대에 묶을 찌와 바늘, 그리고 미끼를 구입하려고 주인아저씨께 조언을 들었다.

"저수지에서 뭐가 많이 잡혀요?"
"뭐, 가물치도 잽히고, 베스도 잽히고, 붕어도 잽히고..."
"베스는 꽤 크고, 가물치는 힘이 좋은 거 아녀요?"
"그렇죠. 뭐 잡으시려고?"


낚시점 주인은 가물치를 잡을 것인지, 베스를 잡을 것인지, 붕어를 잡을 것인지를 나보고 선택하랜다.

'한 번도 민물낚시를 안 해본 나에게 뭘 잡을 지 선택하라고?'

이왕이면 힘도 좋고 회로도 먹을 수 있는 가물치가 낫겠다 싶어 "가물치요" 하고 대답했더니 주인은 가물치용 낚싯바늘 하나를 나에게 건넨다. 언뜻 봐도 살벌할 정도로 큰 바늘이었다. 게다가 루어낚시이다 보니 커다란 모형개구리가 붙어 있는 낚싯바늘이었다.

"낚싯대 가지고 와봐유. 매달아 줄께유."
"그 큰 바늘을 달기에는 낚싯대가 약한 거 같은데요?"
"그러네유. 그러면 베스 낚시 하세유."
"그럴까요? 그럼 그걸로 달아 주세요."


잠시 후, 베스 낚시용 바늘이 낚싯대에 묶어지고 미끼로 지렁이 모형을 바늘에 꽂았다. 준비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주인아저씨가 한마디 건넨다.

"낚싯대가 약해서 가물치가 물믄 낚싯대 기냥 부러지겄는디…. 그래도 조심해서 잘 해봐유."
"낚싯대 부러져도 물기나 했으면 좋겠네요."


텐트까지 치고 자리잡은 강태공들 텐트까지 친 걸 보니 장기전에 돌입한 듯하다. 민물낚시를 해보니 낚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인내심이다.
▲ 텐트까지 치고 자리잡은 강태공들 텐트까지 친 걸 보니 장기전에 돌입한 듯하다. 민물낚시를 해보니 낚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인내심이다.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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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싯대를 들고 저수지 둑으로 향했다. 이미 저수지 건너편 여러 무리의 낚시꾼들이 그늘막과 텐트를 설치하고 낚시 삼매경에 빠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한참을 발품을 판 끝에 앉기 좋고 낚시하기에 좋은 장소를 골라 자리를 잡았다.

두 시간 동안 대형 수초만 낚다

'베스건 가물치건 붕어건 아무거나 잡히기만 해라' 생각하고는 힘껏 낚싯대를 뿌렸다. '휙'하고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찌는 제법 멀리 던져졌다. 모형지렁이를 미끼로 쓴 루어낚시인지라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릴을 감아댔다. 그렇게 해야 물고기들이 움직임을 보고 바늘을 물기 때문이다.

던지고 감기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던 그 때, 묵직한 무언가가 낚싯대에 걸린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낚싯대에 움직임이 전달되지 않았다. 하지만 끌려오는 힘만은 대단했다.

'아무래도 무언가가 잡히긴 한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하고는 힘껏 잡아 당겼다. 낚싯대에 걸린 무언가가 끌려오는 동안 누군가가 낚싯대의 휘임을 봤다면 대단한 월척이 걸린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을 것이다.

이게 물고기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낚시대가 휘어질 정도로 큰 수초가 낚시대에 매달려왔다. 두시간 동안 이렇게 잡은 수초가 내 발목을 잡았다.
▲ 이게 물고기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낚시대가 휘어질 정도로 큰 수초가 낚시대에 매달려왔다. 두시간 동안 이렇게 잡은 수초가 내 발목을 잡았다.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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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참을 감은 뒤 매달려온 것의 실체를 본 난 실망하고 말았다. 너무 큰 기대를 가져서일까. 낚싯대에 묵직하게 매달려온 것의 정체는 바로 물풀(水草)이었다. 얼마나 큰 물풀이었는지 낚싯바늘에서 떼어내는 데에만 한참이 걸렸다.

여기서 실망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실망은 잠시 접어두고 다시 낚싯대를 힘껏 뿌렸다. 다시 몇 번을 던지고 감기를 되풀이하던 그 때 또다시 묵직한 느낌이 들어 힘껏 당겼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수초덩어리였다.

이젠 점점 힘도 빠져간다. 두시간 동안 잡은 거라고는 고작 수초뿐이었다. 수초만 건져대는 초보 민물낚시꾼이었다는 것을 아는 것일까. 내가 낚시하고 있는 동안에도 바로 옆에서는 붕어들이 물 위로 튀어 오르며 농락하고 있는 듯 보였다.

'미끼를 다른 색깔로 바꿔볼까?' 생각하고는 봉지 속에 있던 미끼를 꺼내려고 봉지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자 신발에 뭔가가 걸렸다. 하여 신발을 보니 좀전에 건져올린 수초가 신발을 감싸고 있었다. 수초를 신발에서 떼어내며 주변을 둘러보니 두어시간 동안 저수지에서 건져올린 수초 천지였다.

"에이, 미끼를 바꾸긴 뭘 바꿔. 그만 돌아가자."

수초를 보는 순간 제 성질에 못이겨 낚시터에서 철수하기로 하고 가지고 온 물품을 챙겨서 차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날 초보 낚시꾼답게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한 채 저수지에 있는 수초만 잔뜩 건져냈지만, 지인이 일러준 대로 한 번 앉은 자리에서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한 자리를 지켰다.

혹시 그래서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건 아닐까? 때로는 경험자의 조언을 무시하고 자리를 옮겨 다니며 낚시를 해보는 것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에 다시 민물낚시를 할 때는 미끼도 한 번 바꾸어보고, 자리도 옮겨 다니면서 한번 해 봐야겠다.

세월을 낚는 강태공들 난 두시간도 못 참고 낚시대를 걷었는데, 한 곳에서 저렇게 앉아있는 것을 보니 세월을 낚는 듯 보였다.
▲ 세월을 낚는 강태공들 난 두시간도 못 참고 낚시대를 걷었는데, 한 곳에서 저렇게 앉아있는 것을 보니 세월을 낚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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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터를 떠나는 마당에 뒤를 돌아보니 수면위로 간간히 불어대는 바람을 타고 물결을 일으키는 저수지에서 몇 시간동안이나 한 자리를 고수하며 낚싯대를 주시하고 있는 강태공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을 보니 낚시는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낚는다'는 말이 새삼 진리인 듯 느껴졌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송고합니다.



#민물낚시#죽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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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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