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이면 어릴적 고향에서 어머니는 애호박을 채썰어 밀가루와 반죽하여 석유곤로에서 달궈진 후라이팬에 하얀 돼지기름을 한숟갈 떠넣고 눈녹듯이 녹은 기름 위에 반죽을 펼치면 빗소리와 함께 익어가는 전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던 기억이 떠오른다.
오늘도 잔잔한 단비가 내리고 조건반사적으로 부침개의 유혹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냉장고를 뒤져보니 애호박, 당근, 양파, 고추, 버섯, 부추가 모였다. 따로 따로 하더라도 좋은 부침전 재료가 되는 것들이지만 모두 섞은 후에 반죽은 밀가루에 계란을 풀고 소금으로만 간을 맞췄다. 바삭하고 부드러운 맛을 좋아한다면 계란을 넉넉히 넣어도 좋다.
채소 재료와 밀가루 반죽의 비율은 3:1 정도로 해서 재료들이 흩어지지 않을 정도면 된다.
우리땅에서 자란 채소와 밀가루, 현미기름을 사용하는것은 신토불이(身土不二)에 대한
믿음이며 정체불명의 수입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이기도 하다.
달궈진 팬에 적당히 기름을 두르고 얇게 부쳐내야 채소가 알맞게 익어서 향도 살리고 입속에서 느껴지는 식감도 좋다. 기름을 사용하는 음식이라서 느끼함은 어쩔 수가 없는데 마침 어머니집에서 가져온 고추장아찌를 곁들이니 맛 궁합이 잘 맞는다.
비내리는 창 밖을 보며 막걸리와 함께 추억속에 젖어보는 기분도 제법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