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국의 좋은 대통령, (그의 죽음은) 한국정부가 압박한 것이다.'(韓國的好總統, 是韓國政府逼的) - 산시(山西)성 출신 네티즌 지난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중국 언론은 관련 소식을 잇달아 보도하고 있다. <신화통신> <인민일보> 등 중국 관영 언론매체는 국제판 톱뉴스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크게 보도했다. <바이두(百度)>, <신랑(新浪)>, <셔우후(搜狐)>, <왕이(網易)> 등 포털사이트도 특집판을 만들어 시시각각 올라오는 새로운 뉴스를 전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4일 마차오쉬(馬朝旭)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중관계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며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했다.
마 대변인은 "중국정부와 인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직 기간 한·중 관계발전을 위해 기울인 노력과 공헌을 잊지 않을 것"이라며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보낸다"고 말했다. 마 대변인의 발언은 중국정부 관계자가 내놓은 첫 공식 논평이다.
중국 언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한국의 고질적인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정권교체에 따른 정치 불안정 등에 따른 비극으로 규정하고 있다.
23일 <신징바오>(新京報)는 "노 전 대통령은 부인·아들·조카사위 등 일가족이 오랜 정치적 후원자였던 박연차 회장에게 600만 달러를 수뢰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아왔다"며 "한국은 1995년 이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반란죄와 수뢰죄로 사법 처리된 전례가 있다"고 보도했다.
<신징바오>는 "한국 정치는 지연·혈연으로 얽힌 정치 풍토와 제왕적 대통령제에 따른 권력 집중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면서 "새 정권은 전임 대통령이나 그 일가족을 부패 혐의로 단죄하는 일이 되풀이 되어왔다"고 지적했다.
24일 <광저우(廣州)일보>도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한 원인은 정경유착에 따른 수뢰 스캔들 때문"이라며 "박정희 대통령 집권 이래 대다수 한국 재벌과 기업은 정부나 정치인에게 돈을 주어 특권을 산 뒤 생존하고 발전해왔다"고 보도했다.
수뢰문제 부각하는 중국 언론 중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원인을 부패 혐의 때문인 것으로 진단했다.
스인홍(時殷弘) 중국인민대학 교수는 "일가족의 수뢰 혐의로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린 노 전 대통령이 최후의 수단을 택한 것"이라며 "집권 내내 추진했던 대북 유화정책과 개성공단 사업이 최근 남북관계의 악화로 실패한 데에 따른 좌절감도 한 원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펑(朱鋒) 베이징대학 교수도 "언론, 일반대중, 사법기관뿐만 아니라 여야 정치인까지 금전 수뢰를 문제 삼아 노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고 지적했다.
홍콩과 대만 언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천수이볜(陳水扁) 전 대만 총통과 비교하며 보도했다.
홍콩 <명보>(明報)는 "노와 천은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인권 변호사와 국회의원을 지낸 뒤 낡은 정치문화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어 집권에 성공했다"고 전했다. 대만 <연합만보>(聯合晚報)는 "두 사람은 가족의 비리 문제로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차이도 있다"며 "노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노력하여 한반도 평화정착에 힘썼지만 천은 대만 독립을 추진하여 줄곧 중국과 대립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언론매체와 전문가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한국의 정경유착과 금권정치가 일으킨 비극으로 규정하는 데에는 고도의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다.
중국공산당에 의한 일당 독재의 폐해를 은폐하기 위해 한국의 정치문화와 정권교체의 문제점을 최대한 부각시킨 것이다. 중국 내 모든 언론은 중국정부가 정한 보도지침에 따라 논평과 분석 기사를 내보낸다. 중국 내 한반도 전문가도 중국정부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하여 발언 수위를 조절한다.
중국 언론의 이러한 보도는 일부 중국인들에게 그대로 먹혀 들어가고 있다. 신랑 게시판에서 헤이룽장(黑龍江)성 출신의 네티즌은 "서구식 민주정치는 수많은 부패문제를 내재하고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도 퇴임 후 더 많은 부패 혐의로 곤욕을 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의 정치는 당파의 이익이 아닌 인민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며 "중국인은 서구식 민주정치를 추종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광둥(廣東)성 출신의 네티즌도 "중국의 체계가 가장 선진적"이라며 "(한국과) 서방세계는 우리보다 부유할 뿐이다"고 주장했다.
중국인의 열띤 추모 열기... 한국 이미지까지 바꿔 중국 정부와 언론의 의도와 달리 적지 않은 중국인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의 의의를 되살피고 있다.
인민일보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한 네티즌은 "노 전 대통령은 자살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세상에 경종을 울린 것"이라며 "민주주의 체제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규정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노 전 대통령의 결백을 믿는다"며 "민중의 목소리를 더 드높이고 민주주의로 부패를 제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국과 무관한 외국의 전임 대통령 서거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네티즌들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신랑> <셔우후> <왕이> 등 포털사이트의 국제 뉴스 기사 중에서 가장 많은 클릭 수를 기록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유언 전문이 실린 기사는 1만5100여건의 댓글이 달리는 등 한국 못지않은 열기를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 댓글도 중국 네티즌의 심각한 혐한(嫌韓) 성향과 달리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고인에 대한 찬사를 남기고 있다.
셔우후 게시판에서 네티즌 'tjliang18s'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한·중 관계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며 "퇴임 후 작은 문제가 있었지만 만인의 존경을 받을 만한 정치가였다"고 기억했다.
장쑤(江蘇)성 출신의 네티즌은 "오랜 팬으로 남긴 유서를 보고 한참 동안 울었다"며 "살아있는 동안의 삶도 아름다웠지만 죽음도 남자답고 아름다웠다"고 추모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대외 이미지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일부 한국 언론의 예측과 달리 한국에 대한 인상을 바꾸고 있다. 허난(河南)성 출신의 네티즌은 신랑 게시판에 "한국 정치문화의 모순을 끌어안은 채 서거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안 좋은 편견을 일시에 날려 버렸다"면서 "노 전 대통령은 한국 인민들의 영원한 자랑이 될 것"이라고 남겼다.
여러 차례 한국을 다녀온 겅판(32·베이징)은 "한국 민중들이 스스로 나서서 진행하는 추모 행사가 중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며 "민중들의 자발적인 추모 움직임을 방해하는 한국정부의 행태가 중국과 다르지 않아 씁쓸할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