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조문객이 100만 송이 국화꽃을 놓고 갔다."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와 서너 시간씩 기다리면서 많이 불편했을 것인데 불평하지 않았다."
7일장(葬)이 끝났다. 엄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열정적'이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가 마무리 됐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던 23일부터 영결식이 열린 29일까지 김해 봉하마을로 조문객들이 구름같이 몰려왔다.
봉하마을에서 서거한 노 전 대통령을 만난 사람은 100만명이 넘는다. 노 전 대통령이 귀향한 후 1년여 동안 봉하마을을 찾아온 방문객 수와 맞먹는 사람들이 7일 동안 다녀간 것이다.
서울과 인천, 경기 등 전국 곳곳에서, 심지어 밤을 새워 가며 봉하마을로 달려왔다. 가족, 직장인, 친구, 모임 회원끼리 고향에 있는 부모 만나러 가듯 왔다. 혼자 오는 이도 있었고, 손잡고 온 연인도 있었다. 갓난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남녀노소 불문하고 왔다.
멀리 서울과 평택 등지에서 학교에 가지 않고 오는 학생도 있었다. 저녁에는 자율학습을 마친 학생들이 '소풍가듯' 왔다. 학생들은 "선생님께서 가자고 해서 온 게 아니라 우리가 가자고 해서 온 것"이라고 말했다.
봉하마을에는 노 전 대통령 지지자만 온 게 아니다. 보수·관변단체 사람에다 이전 한나라당 행사장에서 보이던 이들도 보였다. 정치인들은 서로 따로 조문하거나 거부당하기도 했지만, 시민 조문객은 똑같은 국화꽃을 들고 와 노 전 대통령 영전에 바쳤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왔다. 자기 돈 들여가며 온 것이다. "강제로 시키지도 않았는데 온 게 참말로 이상하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자발적으로 와서 그런지 불편한데도 누구 하나 불만을 갖지 않았다.
이레 동안 봉하마을 날씨는 변동이 심했다. 24일은 하루 종일 구름이 끼어 있었다. 25일 오후에는 30여 분간 장대비가 쏟아졌다. 당시 인근 양산이나 부산, 창원 등지에는 그렇게 많은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조문객들은 장대비를 맞으면서도 국화꽃을 들고 서 있었다. 30℃에 가까운 더운 날씨가 이어졌고, 한때 바람이 세차게 불기도 했다.
자원봉사자 참여 '감동입니다'
노 전 대통령의 장례가 무사히 끝날 수 있었던 데는 자원봉사자들의 힘이 컸다. 노사모 회원보다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더 많았다. 거의 매일 300~500명씩 활동했다. 미국 보스톤과 호주에서 온 자원봉사자도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이 하는 일은 질서유지와 방명록 안내, 음식 마련, 쓰레기 청소 등으로 다양했다. 그들은 촛불을 밝히다 바닥에 떨어진 촛농을 떼어내는 작업도 벌였다. 날씨가 더워 조문객들에게 물을 나눠주었는데, 얼음물에 담았다가 나눠주기도 했다.
자원봉사자들은 마을 임시주차장 옆에 있는 창고 안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뿐이었다. 밤에는 이불이 없어 신문지를 덮고 자기도 했다.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돌아가신 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죠"라고 대답했다.
조문객들은 "여기에 오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자원봉사자들은 "마지막 가시는 길에 이것도 하지 않으면 죄를 짓기에"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씨는 한명숙 장의위원장을 통해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맙다"는 뜻을 전달했다.
박근혜 전 대표 등 한나라당 조문 왔다가 되돌아가
지난 일주일 동안 정치인들의 발걸음도 봉하마을로 향했다. 한 시민은 "여야를 떠나 친노 여부를 떠나 정치인들은 봉하마을에 와서 조문행렬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정치인과 유명인사들이 다녀갔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를 비롯한 국회의원들은 조문뿐만 아니라 삼베 완장을 끼고 상주 노릇을 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때 누구보다 비판을 많이 했던 진보 정당도 조문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와 권영길 의원,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와 조승수 의원도 노 전 대통령 영전에 고개를 숙였다.
한나라당 대표단은 시민들의 반대로 봉하마을 분향소 조문을 하지 못했다. 26일 박희태 대표와 정몽준, 공성진 최고위원 등 대표단은 분향소에서 1km 정도 떨어져 있는 마을 어귀까지 왔다가 발길을 돌렸다. 시민들은 한나라당 대표단은 조문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가 발걸음을 돌린다고 하자 비슷한 시각에 조문하러 들어오던 시민들은 박수를 쳤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조문하기 위해 비행기로 김해공항에 와 차를 타고 봉하마을로 오다가 되돌렸다. 봉하마을 분향소에서 조문한 한나라당 의원은 임태희 전 정책위의장과 김장수·김광림 의원 3명뿐이다.
김형오 국회의장도 25일 조문하러 분향소에서 100m 앞까지 왔다가 되돌아가는 일이 벌어졌다. 김 의장은 정당 소속은 아니지만, 시민들은 그에게 "정부에서 막은 서울시청 광장을 열 것과 시민분향소를 허용할 것"을 요구했다. 김 의장은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분향소에서 500m 가량 떨어져 있는 봉하경비초소로 피했다.
문재인 전 비서실장이 와서 시민들을 설득했지만 해결되지 않았고, 마침 비가 내려 시민들이 줄어든 틈을 타 김 의장은 차량을 타고 빠져나갔다. 김 의장은 다음 날 새벽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한승수 총리도 버스를 타고 조문하러 왔다가 반대로 돌아갔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봉하마을에 와서 조문했다. 정동영 의원도 먼저 왔다가 거부당한 뒤 다음 날에야 조문할 수 있었다. 허남식 부산시장과 김완주 전북지사 등 많은 단체장들이 조문했으며, 김태호 경남지사는 삼촌이 24일 돌아가셨는데도 봉하마을을 두 번이나 찾아 조문과 장례 대책부터 논의했다.
진보진영, 이주노동자 등 조문행렬
종교계도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했다.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대표들은 봉하마을 분향소에 조문한 뒤 종교의식을 갖기도 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지관 스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권오성 목사, 송기인 신부, 원불교 중앙총부 이성택 교정원장 등이 다녀갔다.
진보 진영도 대거 봉하마을을 찾았다. 한국진보연대 이강실 상임대표 등 대표단 17명이 단체조문했고, 임승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산별 노조 위원장 등 50여명과 새벽에 조문하기도 했다. 노동자, 농민, 시민, 여성, 언론, 교육단체 대표들도 발걸음을 했다.
역사적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찾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서울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를 가지 않고 봉하마을을 찾아 "큰 별이 떨어졌다"며 울먹였다. 장기수 한창우(82·부산) 선생도 봉하마을에서 조문했다.
봉하마을 조문행렬이 계속된 것에 대해 이강실 상임대표는 "100만개 촛불 대신에 100만명 조문"이라 표현했다. 박석운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는 "이명박 정권의 국민무시, 편파수사 강행이 이런 비극을 가져 온 것"이라고 보았다.
문화예술계 인사들도 가만 있지 않았다. 문성근씨와 명계남씨는 분향소에서 상주 역할했으며, 윤도현·윤민석·강산에씨 등도 조문했다. 조정래 작가와 김초혜 시인 등 문인들도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에 함께 했다.
이주노동자들은 고인을 '은인'으로 여겼다. 서경석 서울조선족교회 목사는 조선족 90여명과 이철승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장은 경남이주노동자연대 소속 노동자들과 봉하마을을 찾아 조문했다. 이들은 참여정부가 조선족을 비롯한 이주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애썼다고 밝혔다.
'봉하올레' 등 마을 곳곳에 감동 이어져
봉하마을 곳곳에는 노 전 대통령과 '7일장'의 흔적이 남아 있다. '봉하올레'가 생겼다. 어떤 조문객은 마을에서 3km 가량 떨어져 있는 진영읍에서, 또 어떤 조문객들은 1km 떨어져 있는 마을 어귀에서부터 걸어야만 했다. 너무나 많은 조문객이 오는 탓에 경찰이 차량을 통제하고, 진영공설운동장·밀양역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했다.
장례 때 쓰려고 1700여개의 만장을 만들었는데, 상당수가 '봉하올레' 길에 걸려 있다. 이 길은 밤에도 장관이었다. 촛불을 든 조문객이 돌아가며 도로 경계석에 세워놓아 그 불빛이 더욱 숙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방명록을 쓰는 공간이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근조리본'을 나눠주고, 조문객들은 방명록에 다녀갔다는 흔적을 남겼다. 마을 주차장에는 '천막식당'이 생겼다. 수백명이 한꺼번에 국밥을 먹었다. 부족하면 컵라면과 빵, 우유를 나눠주었다. 수박도, 물도 주었다. 여느 상가집에서 보는 것과 같았다.
한 조문객은 "워낙 사람이 많아 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국밥 등 먹을거리를 주니 놀랍다"고 말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음식을 먼저 타기 위해 욕심을 내지도 않았다.
자원봉사자 김현숙(45)씨는 "다른 행사장에 가보면 음식을 먼저 받으려고 해 볼썽사나운 광경이 벌어지는데, 조문객들이 서로 양보하는 모습이 아름답기도 하다"면서 "노 전 대통령의 마음을 읽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서, 자원봉사 하면서도 피곤하지 않고 마음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조문객들은 분향한 뒤 노 전 대통령의 사저 앞까지 둘러보기도 했다. 중간에 공사장 가림막이 있는데, 거기에는 '추모의 글'을 적어 놓았다. 최점금(부산)씨가 전지 크기의 하얀색 종이 수십장을 붙여 놓았는데, 조문객들이 가슴에 담아 온 글을 표현한 것이다. 최씨는 '추모의 글'을 적은 전지가 150장이라고 밝혔다.
조문객들은 사저뿐만 아니라 공사하다 중단한 생가도 지켜보았다. 또 이들은 노 전 대통령이 떨어졌던 부엉이바위 앞에서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봉하마을엔 임시추모시설 조촐하게 마련
7일장이 끝난 봉하마을에는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계속되고 있다. 유가족들은 화장한 고인의 유골을 마을 뒷산에 있는 정토원 법당에 임시 안치해 놓은 뒤, 49재 때 안위치를 정해 안장할 예정이다.
봉하마을회관과 '노사모 자원봉사 지원센터'에는 임시추모시설이 49재까지 들어선다. 천호선 전 대변인은 "임시추모시설은 소박하게 꾸밀 것"이라고 밝혔다. 유가족과 참여정부 참모진들은 고인의 뜻에 따라 봉하마을에 '작은 비석'을 세울 예정이다.
노 전 대통령을 보내드린 아름답고 열정적이었던 '7일장'은 끝났다.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이 한 말이 자꾸만 가슴에 남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돌아가신 게 아니라 우리와 함께 있다. 보내드리려 온 게 아니라 같이 하기 위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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