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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펐습니다. 그래서 울었습니다. 실컷 울었습니다. 어제(29일) 아내와 아침을 먹고 TV를 시청하면서 함께 울었습니다. 그래도 아내가 있을 때는 훌쩍이기만 했는데, 오후 근무인 아내가 출근하고 없으니까 눈물이 더 나오더군요.

 

 제가 사는 마을 풍경. 문득 '노짱'이 노년을 자연과 보내고자 했던 김해 봉하마을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사는 마을 풍경. 문득 '노짱'이 노년을 자연과 보내고자 했던 김해 봉하마을이 떠올랐습니다. ⓒ 조종안

 

노무현 전 대통령(노짱)을 애도하는 국민의 마음은 영결식이 열리는 경복궁이나 서울시청 광장이나 봉하마을이나 모내기가 한창인 농촌이나 다를 게 없었습니다. TV를 시청하다가 가슴이 답답해서 밖으로 나갔더니 집집이 문을 열어놓고 있었는데요. 영결식을 중계하는 아나운서 목소리가 담을 넘어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멀리 바라보이는 산야는 녹음이 짙어지고 있었고, 엊그제 모를 심은 논에서는 어린 모들이 더위를 식혀주는 초여름 바람에 한들거리고 있었습니다. 평화롭더군요. 밀짚모자를 쓴 노짱이 봉하마을 들녘에서 사랑하는 손녀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가면서 행복하게 웃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는데, 옆집 대문에서 펄럭이는 태극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반갑더군요. 해서 이내 집으로 들어가 카메라를 가지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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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종안

 

유가족도 아니고 노사모 회원도 아니면서 조기를 게양한 집에 들어가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었고, 뭔가 희망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매년 찾아오는 국경일도 아닌데, 날짜를 잊지 않고 조기를 게양하고 애도하는 분들이 상상외로 많았기 때문입니다.

 

방송에서는 김해 봉하마을을 다녀간 추모객이 100만 명을 넘어섰고, 전국에 설치된 3백여 분향소를 찾은 국민은 500백만 명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집에서 가족들과 TV를 시청하면서 애도하는 숫자를 합하면 몇 곱절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0가구 조금 넘는 마을에서 조기를 게양한 집이 절반이 넘는 것 같았는데요. 조기를 게양하고 TV방송을 통해 영결식 장면을 지켜본다는 것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약자를 위해 살려고 노력했던 노짱 정신이 작은 농촌에도 살아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옆집 대문의 조기, 영결식을 중계하는 아나운서 목소리가 담을 넘어 길가에까지 들리더군요.
옆집 대문의 조기, 영결식을 중계하는 아나운서 목소리가 담을 넘어 길가에까지 들리더군요. ⓒ 조종안

 

 조기가 게양된 나포 면사무소. ‘이래서 지방자치제가 필요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기가 게양된 나포 면사무소. ‘이래서 지방자치제가 필요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조종안

 

마을 주민들이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카메라에 담았는데요. 면사무소 건물에도, 보건소 건물에도, 농촌지도소 건물에도, 가정집에도, 상가에도 조기가 게양되어 있어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연극배우가 대사연습 하는 것 같았던 한승수 총리의 추도사,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던 한명숙 전 총리의 절규, 헌화를 하려고 영정을 향해 걷다 야유가 터져 나오자 실눈을 뜨고 헌화하는 이명박 대통령. 헌화를 마친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가 유족에게 다가가 위로하며 오열하는 모습 등···. 분노하고 슬퍼하기만 하다가 밖으로 나와 이곳저곳에 게양된 조기를 보니까 답답했던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정육점과  이발소 풍경

 

 단골 정육점 주인. 장사하느라 정신이 없을 텐데 조기를 게양한 주인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골 정육점 주인. 장사하느라 정신이 없을 텐데 조기를 게양한 주인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조종안

 

발길을 단골로 다니는 정육점으로 돌렸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까 주인은 도축장에서 막 들어온 돼지고기를 다듬고 있었습니다. 해서 "조기를 게양한 걸 보니까 아침에 텔레비전도 봤겠네요?"라고 했더니 "예 봤어유, 짠 허데유"라고 하더군요. 뭣이 짠하더냐고 물었더니 "나도 몰라유, 그냥 저절로 눈물이 나데유"라면서 23일부터 연일 죄 없는 술하고만 싸웠다고 하더군요. 바쁜 것 같아 가게를 나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용하는 이발소에 갔더니 아저씨 한 분이 이발을 하고 있었습니다. 들어서면서 "저는 오늘 아침에 텔레비전 보면서 울었네요."라고 했더니 "노 대통령은 이명박이 죽인 것이쥬."라고 짧게 대답하고 말이 없기에 나오려고 하니까 붙잡더군요.

 

 이발소 주인과 손님. 독재로 회귀하려는 이명박의 실정과 언론의 문제점을 함께 지적했습니다
이발소 주인과 손님. 독재로 회귀하려는 이명박의 실정과 언론의 문제점을 함께 지적했습니다 ⓒ 조종안

 

얘기랑 하고 놀다 가라는 권유에 자리에 앉았더니 주인은 대뜸 "한국 기자가 쓴 것보다 외국 기자가 쓴 내용이 더 정확허게 나온데유"라고 하더군요. 그러자 하얀 포를 둘러쓴 손님이 "가들이야 넘의 나랑 얘깅게 본대로 들은 대로 써도 암시랑 않지만, 한국 기자들은 잘못 쓰믄 밥줄 떨어지는디 누가 쓸라고 허겄어"라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주인이 "밥줄이 떨어질 때는 떨어질망정 정확허게 써야 헐 것 아녀, 그르믄 영웅 되는디··"라고 하니까, 손님이 "죽어가꼬 영웅 되믄 머여"라고 하더군요. 손님은 현실주의자인 것 같았습니다. 이승만, 이기붕, 4·19에 이어 미국에서는 기자가 대통령도 몰아냈다는 얘기까지 나왔는데요.

 

TV에서 한 시민이 통곡하는 장면이 나오니까 주인은 "독재를 쓸라고 허지만 지 맘대로 되간디, 이명박은 국민이 저렇게 슬퍼 허는 장면을 봄서 무쟈게 배 아퍼 헐꺼여"라며 "더운디도 길이서 저렇게 허는 것은 국민이 이명박이한티 주는 경고여 경고!"라고 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재산을 내놓겠다고 하더니, 무슨 재단인가 만든다고 하는데 그것은 재산 이름을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과 언론과 이명박이 짜고 노 대통령을 죽게 했다는 의견이 일치했는데요. 50대 이발소 주인과 60대로 보이는 시골 농사꾼이 대한민국 역사까지 왜곡하는 짝퉁언론들의 심각성과 이명박 정권의 실정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서거 #영결식#조기게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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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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