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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분은 청산도까지 가야 볼 수 있는 줄 알았다. 여수 지역에는 초분 풍습이 사라진 걸로 알았다. 그래 언젠가는 청산도에 가서 초분을 볼 참이었다.

 

그런데 지난 달 31일, 한국문화인류학회 회원들과 동행한 여수시 남면 금오도 섬 여행에서 초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상갑(73) 씨가 초분으로 안내했다. 도로에서 비탈길을 오르자 초분을 대할 수 있었다. 돌이 쌓여 있는 가운데 짚으로 덮인 초분이 자리하고 있었다.

 

망자에 건네는 인사는 "삶과 죽음이 하나"란 의미?

 

"어이, 나왔네. 잘 있었는가?"

 

나상갑 씨가 초분에 누워 있는 망자(亡者)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를 두고 한상복 서울대 명예교수는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풀이했다. 너무나 귀에 익숙한 풀이였다.

 

전경수 교수(서울대 인류학부)는 초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초분은 복장(服裝) 전통에 따른 것이다. (조상들은) 죽은 몸이 부패하기 때문에 더럽다고 여겨 시신을 바로 땅에 묻지 않고 일정 기간 짚으로 만든 가묘(假墓)에서 탈골했다. 그리고 뼈가 깨끗해지는 5~6년을 기다려 다시 선산으로 이장(移葬)하는 본장을 치렀다. 이는 정월에 사람이 죽으면 흙을 다루지 않았던 풍습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전 교수는 "초분은 주로 남해안에 분포하는데 청산도, 진도, 안마군도(영광)와 이곳 금오도 등지에서 발견되고 있다"며 "초분은 비슷비슷하지만 지형에 따라 다르다. 돌담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데 면적이 넓냐 좁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또 김병호 이사장(여수지역사회연구소)은 "초분은 선산 밑으로 진송장이 못 들어가는 풍습에 따른 것이다"면서 "이는 해양문화의 하나로 폴리네시아에서 하는 풍장과 비슷하게 우리나라에서도 나무 위에 시신을 올리는 풍장 형태의 초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초분은 추억과의 단절이 아닌 소통 의미"

 

김현미 교수(연세대 문화인류학부)는 "도시인류학을 연구하는 관계로 초분은 처음 본다"면서 "책에서만 보던 것이라 신기하지만 소박하고 자연적인 느낌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양선영(연세대 청년문화원) 씨는 느낌을 이렇게 말했다.

 

"살아서도 죽음을 생각하듯, 죽었다고 다 없어지는 건 아니다는 느낌이다. 초분은 육신이 썩을 때까지 이승에 남아 있는 것으로 여겨져 추억과의 단절이 아닌 소통의 의미로 다가왔다."

 

초분은 초빈(草殯)·외빈(外殯])·소골장(掃骨葬)·초장(草葬) 등으로 불린다. 짚은 매년 새로 갈아주고 자손들은 가끔 들러 별일 유무를 살펴본다.

 

일행을 안내한 나상갑 씨는 초분을 떠나면서 망자에게 인사를 건넨다.

 

"나 가네. 잘 있게!" 

 

그러고 보면 생(生)과 사(死)는 하나인 게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 다음과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초분#소통#금오도#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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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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