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합중국 대통령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평화네트워크라고 하는 한국의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정욱식이라고 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이어 오바마 대통령께 두 번째 편지를 띄웁니다.
먼저 미국 안팎의 수많은 도전과 과제를 해결하고자 불철주야 노력하고 계신 오바마 대통령께 경의와 감사의 뜻을 보냅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당신의 자서전 <담대한 희망>을 읽으면서 깊은 감동과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인류사회가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한 오늘날, 당신의 당선은 한줄기 희망의 빛이 되고 있다는 확신도 갖게 되었습니다.
또다시 냉전이 격화되고 있는 한반도의 한 주민으로서 오바마 대통령께 미국의 대북정책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지난 5개월간 대통령께서 북한에 보여준 모습은 당신의 시대정신인 '변화(change)'와 '담대함(audacity)'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께서는 북한이 대화는 거부하면서 장거리 로켓을 쏘고 핵실험을 하고 남한에 군사적인 위협을 가하는 것에 크게 실망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북한의 언행에 깊은 유감과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적인 언행"에는 미국측의 책임도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월에 아시아 순방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여러 차례에 걸쳐 "북한이 진정으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게 핵무기 프로그램을 제거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오바마 행정부는 양자관계를 정상화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며, 다른 나라들과 함께 북한 주민들의 에너지 수요와 경제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뒤이어 아시아 순방 길에 오른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방북을 추진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임기 초반부터 "터프하고 직접적인 외교"를 추진했다고 판단하실 수 있고, 보즈워스 대표의 방북 요구를 거부하고 미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로켓을 쏘아올린 북한에 크게 실망했을 법도 합니다.
북한의 "도발적인 언행"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망'은 미국만의 몫은 아니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 직후인 2월초에 월터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은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문제를 거론하면서, "전면전은 물론이고 북한의 핵무기 통제력 상실 가능성 등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국방장관 역시 이와 흡사한 발언을 여러 차례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한미 양국은 북한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합동군사훈련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보즈워스의 방북 무산과 뒤이은 북한의 강경책엔 이러한 이유가 크게 작용한 듯합니다. 북한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앞두고 북미대화든, 남북대화든 임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9·19 공동성명에서 "북한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한미 양국이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문제를 거론하면서 작전계획 5029를 공식화한 것은 이러한 합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남한이나 다른 나라를 공격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미 양국이 북한의 급변사태 발생을 이유로 군사력을 투입하는 것은 '침공'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북한의 급변사태 발생으로 북한 지도부가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할 것을 우려해, 군대를 투입해 이들 무기를 확보한다는 방침입니다. 그러나 이는 침공에 해당될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 전면전의 위험을 안고 있는 위험천만한 계획입니다. 제가 여러 차례에 걸쳐 작전계획 5029 문제를 거론하는 이유입니다. 더구나 이러한 계획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한미합동군사훈련은 방어용"이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자문해보시기 바랍니다.
4월초 북한의 위성 발사에 대한 미국과 유엔 안보리의 대응 역시 과도하고 부적절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나라는 우주를 평화적으로 이용할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로켓 발사를 '위성의 탈을 쓴 탄도미사일'로 규정하고 북한의 위성 발사 권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제재가 담긴 의장성명을 채택했습니다.
어떤 나라가 위성을 발사했다는 이유로 유엔 안보리에 회부되고 제재 성명이 채택된 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입니다. 미국은 안보리 결의안 1718호에 "탄도미사일 관련 활동 중단" 조항을 들었습니다만, 이 결의안 어디에도 위성 발사를 금지한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법을 공부하신 분으로 이러한 법해석에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는 것은 대통령께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더구나 9·19 공동성명에는 "상호 존중과 평등의 정신"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자국의 위성발사에 대해 유엔 안보리가 문제 삼은 것은 이 조항을 위반한 것이라는 북한의 주장에 일리가 있는 까닭입니다.
물론 북한의 위성 발사를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냥 지나갔어야 한다는 취지의 말씀은 아닙니다. 저 역시 위성 발사 기술이 탄도미사일로 전용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북한의 위성 발사 권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이것이 탄도미사일 개발로 전용될 수 있는 우려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노력했어야 합니다. 이미 2000년에 북한은 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을 중단하고 미국이 북한의 위성을 대리로 발사하는 방안에 타결 일보 직전까지 갔던 사례도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 협상을 거부한 당사자는 북한이 아니라 부시 행정부였습니다.
저는 미국이 북한의 위성 발사에 과잉 대응하는 이면에는 북한의 의도에 대한 오판도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미국은 북한의 의도를 두 가지로 봤습니다. 하나는 오바마 행정부의 관심을 끌기 위한 외침(cry for attention)이고, 또 하나는 핵무기 운반수단인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첫째 이유가 목적이었다면, 북한은 발사 징후만으로도 충분히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분석은 위험천만하게도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 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위성 발사 의도는 '위성을 갖겠다'는 것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단기적으로는 김정일 3기 체제 출범을 앞둔 축포의 성격으로, 중장기적으로는 후계구도 안착 및 '2012년 강성대국'을 위한 것이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내부적 목적이 강했던 위성 발사를 미국이 외부용으로 해석하면서 강경 대응을 했던 것이 오늘날 북한의 "도발적인 언행"을 부채질한 중대한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미국이 위성 발사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지 않고, 2월초 이란의 위성 발사 때처럼 유감과 우려를 표명하는 수준에서 자제했더라도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강행했을지 자문해보시기 바랍니다.
북한이 왜 2차 핵실험을 했을까요?
오바마 대통령께서는 북한의 2차 핵실험을 동북아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도발로 간주하고 유엔 안보리를 통한 "강력하고 단합된 대응"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북한의 핵실험을 강력히 규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대응의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할 시점입니다.
'미국 주도의 제재와 북한의 도발이 악순환'을 그리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라는 공동의 목표를 더욱 요원하게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자제력을 발휘해 대화와 협상의 문을 여는 것이 되어야 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소견으로는 북한의 위성 발사에 대한 미국의 과잉대응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면, 이번에는 절제된 대응을 통해 극적인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재와 대화는 병행될 수 없다'는 것은 지난 20년간의 핵협상이 충분히 입증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북한 핵실험에 대한 미국의 강경 기조는 비타협적인 자세를 고수하고 있는 이란을 겨냥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북 강경기조가 이란 핵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큰 착오입니다. 이란 정부가 북한의 핵실험 직후, 미국의 대화 제안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동결 대 동결' 제안, 즉 이란은 우라늄 농축 활동을 동결하고 유엔 안보리는 추가 제재를 유예하는 방안을 거부한 것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추가적인 대북 제재는 북핵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 불보듯 뻔한데, 이것이 이란 핵문제와 핵확산금지조약(NPT) 등 핵비확산 체제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 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북한이 2차 핵실험을 서둘러 강행한 이유에 대해 미국이 또다시 오판할 우려가 크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고위 관리들은 북한의 2차 핵실험 의도와 관련해, "김정일은 자신이 죽기 전에 핵보유국으로서 지위를 인정받으려 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이 자신의 최대 유산으로 핵무기를 후계자에게 물려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때마침 김정일이 막내 아들인 김정운을 후계자로 지명했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오면서 이러한 분석은 더욱 힘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 역시 하나의 추측에 불과하며, 이러한 선입견에 사로잡히면 자기충족적 예언의 위험성을 야기할 위험이 큽니다. 제가 보기에 북한의 2차 핵실험 이유는 세 가지인 것 같습니다.
첫째는 위성 발사를 문제 삼은 미국과 유엔 안보리에 대한 '도발적 항의'이자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한 것이고, 둘째는 북한 처지에서 볼 때 실익이 사라진 6자회담을 북미 직접협상 구도로 전환하고 군사문제를 핵심의제로 삼겠다는 것이며, 셋째는 협상 실패 시 핵보유국으로서 지위를 추구하기 위함입니다.
북한의 핵실험과 후계문제, 그리고 작계 5029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북한의 핵실험과 후계구도와 관련된 저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권력 이양기에 협상력과 억제력 강화를 동시에 노린 '양면 전략(hedging strategy)'이라는 것입니다. 북한의 핵카드는 지금까지 두 가지를 동시에 염두에 두어왔습니다. 하나는 협상력을 극대화해 자신의 목표를 관철하고자 하는 '외교적 지렛대'이고, 다른 하나는 협상 실패에 대비한 '군사적 억제력' 확보라는 것입니다. 북한이 이러한 양면 전략을 철회하고 핵보유를 결심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아직까지는 희박합니다. 이에 따라 북한의 핵실험 의도를 '협상용이냐, 핵보유용이냐'는 이분법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따릅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문제는 내외적으로 두 가지 중대한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후계문제입니다. 북한이 4월 9일 '김정일 3기 체제' 출범 직후에 김정운을 후계자로 서둘러 지명한 것은 이러한 사정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외부적으로는' 작전계획 5029가 급물살을 탔다는 것입니다. 한미 양국 정부는 김 위원장이 뇌 관련 질환으로 쓰러진 작년 8월부터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군사계획을 공개적으로 언급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한 한국 정부 안팎의 인사들은 흡수통일을 공공연히 말했습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오바마 대통령께서 취임한 이후에도 주한미군 사령관은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했습니다. 더구나 샤프 사령관은 4월 22일 "북한의 불안정한 사태에 준비하는 작전계획을 한국군 합동참모본부 의장과 함께 수립하고 있으며 이미 이 작전계획을 연습했고 우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즉각 적용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 10일 후, 북한은 작계 5029에 "핵 억제력 강화로 맞서겠다"고 반발했고 실제로 핵실험을 강행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작계 5029가 상정하는 북한의 급변사태 목록에는 김정일의 유고도 포함됩니다. 그런데 한미 군당국은 김정일의 건강 문제가 불거지자 5029를 구체화하고 훈련까지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북한에 얼마나 모욕적이고 위협적인지, 처지를 바꿔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이 최근 핵실험과 함께 미사일 시험발사도 크게 늘리고 있는 것은 한미 양국의 군사 계획에 대한 억제력을 확보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정일의 건강과 후계 문제, 그리고 작계 5029를 비롯한 한미연합군의 대북 위협태세는 이렇게 맞물려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드릴 말씀이 많다보니, 편지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께 말씀드리고 싶은 정책권고안은 이 편지의 '하편'에서 전하겠습니다.
북한의 "도발적인 언행"에 분개하기에 앞서, 잠시 눈을 감고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오늘날의 위기를 바라보시길 당부 드립니다. 역지사지의 핵심은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이 1999년 5월 평양에 다녀와서 한 얘기로 대신할까 합니다.
"우리는 북한을 위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북한은 우리에게 위협을 느끼고 있다. (중략) 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은 억제력으로서 성격을 갖는다."
2009년 6월 3일 평화네트워크 대표 정욱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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