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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여름, 서울 신목고 학생들은 그 학교 전교조 교사의 징계 철회를 요구하며 운동장으로 뛰쳐 나갔고, 교실에 남아 있던 몇몇 학생은 창문 밖으로 그들의 애타는 마음을 담은 펼침막을 내 걸었다. '선생님, 사랑해요'(한겨레 자료사진)
▲ '교사를 위한 변명' 표지 1989년 여름, 서울 신목고 학생들은 그 학교 전교조 교사의 징계 철회를 요구하며 운동장으로 뛰쳐 나갔고, 교실에 남아 있던 몇몇 학생은 창문 밖으로 그들의 애타는 마음을 담은 펼침막을 내 걸었다. '선생님, 사랑해요'(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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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그 스무 해의 비망록'이란 부제가 붉은 글씨로 돋을새김 되어 있는 <교사를 위한 변명>을 나는 기차 속에서 읽었다. 장기간의 합숙연수에 피로가 쌓인 터라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고, 난데없는 다래끼까지 가세하여 책 읽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지만 책에서 눈을 뗀 것은 기차가 터널을 지날 때뿐이었다. 그 어둠의 시간에 내 오른편 손가락은 어김없이 책 표지를 더듬고 있었다. 그 붉은 글씨의 돋을새김을.  

그러다가 다시 기차가 터널을 빠져나오면 책 표지를 어루만지던 손가락이 다래끼가 나 있는 오른쪽 눈으로 가곤 했다. 다래끼가 난 눈 가장자리로 자꾸만 눈물이 고여 왔기 때문인데, 말짱한 왼쪽 눈으로도 몇 번 손이 가면서 나는 뒤늦게야 사태를 깨달았다. 어, 나 지금 울고 있는 거야? 그러다가 몇 번인가는 입으로도 손이 갔다. 울컥 쏟아져 나오는 울음을 옆 사람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바로 이 대목이었다.

"그런데 말이죠. 다음날 아침밥을 나눠 갖고 그걸 다 같이 막 먹으려는 순간, 여중생 회장이 '잠깐만'하며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지요. '어젯밤엔 참 부끄러웠다. 서로 많이 먹겠다 하고 이불도 서로 끌어가려 하고. 우리가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자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 아니지 않느냐, 좋은 학교, 좋은 교육을 위해 힘 모아 투쟁하자고 온 거 아니냐'고 말이지요. 강당 안은 삽시간에 울음바다가 되었지요. 나도 울었고, 모두 울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다들 일치단결 뜨거운 마음이 되었지요." (49쪽)

사립학교 민주화 운동사의 한 '신화'인 배춘일 교사의 말이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작은 한 삽화의 전후 이야기를 짧은 지면에 다 옮길 수는 없다. 하지만 어린 여중생들이 좋은 학교, 좋은 교육을 위해 힘 모아 '투쟁'을 해야 했다면 대강의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유신시절부터 국회의원을 세 번이나 하고 대통령에도 출마한 바 있는 이 학교 재단 이사장은 '임신한 것을 학생에게 보여주는 것은 죄악'이라며 여교사를 강제 퇴직시키는 일을 다반사로 하는 위인이다. 그는 교사와 학생의 저항에 '휴업령'이라는 초강수로 나왔고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까지 가세하여 1,000명이 거리 행진 시위를 해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48쪽)   

눈물이 솟구친 것은 아이들 때문이었다. 우리 미래의 꿈나무들이 이런 형편없는 교육환경 속에서 자란다는 것은 얼마나 큰 비극인가. 그럴 수 있는 아이들인데, 서로 많이 먹겠다 하고 아귀다툼을 하다가도 학생회장의 진실어린 말 한마디에 마음을 돌리고 울음바다가 되도록 통곡할 줄 아는 그런 아이들인데, 그런 인격을 가진 소중한 아이들인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의 첫 독자가 될 자격이 없다. 저자가 손수 보내온 책을 손에 들고 서 있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마치 초승달이 보름달이 되듯 부끄러움과 회한의 크기가 더해 갔다. 이른바 교육대학살 이후 해직의 아픔을 함께하지 못한 부채의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책의 저자인 교사 윤지형이 '변명'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못할 만큼 치열하게 세상과 대면하며 공생애를 살아온 동안 나는 너무도 사적인 삶에 얽매어 있었다는 반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는 왜 굳이 '변명'을 하려는 것일까? 그리고 누구를 위한 변명일까? 그는 책의 서문(프롤로그)에서 이렇게 자신의 '변명'을 변명하고 있다.  

"내게는 잊을 만하면 도지는 '병'이 하나 있다. '교사를 위한 변명'이라는 제목으로 한 권의 책을 쓰고 싶은 욕망이 그것이다. (생략) 그럴 때마다 나는 내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왜 굳이 '변명'에 나서려고 하는가? 그 변명은 가능하기라도 한 것인가? 세상은 갈수록 교사들을 변명의 여지가 없는 집단으로 여기고 그렇게 몰아가고 있는 것만 같은데…."

하지만 그가 시도하려는 변명은 교육운동(혹은 교사운동)을 통해서 새롭게 태어난 '교사'를 위한 것이지 '선생질'을 해야 했던 선생들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선생질을 한 선생'이란 교실이라는 소왕국에서 무서운 작은 독재자로 군림하며 아이들의 순결하고도 자유로운 영혼을 추문으로 만들곤 한 장본인들이다. 아이러니컬 한 것은 그런 '선생질'을 해온 선생일수록 억지 춘향 노릇의 스승이라는 허울 좋은 호칭에 대하여 비교적 호의적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비난도 그들 '선생'보다는 그런 굴욕적인 삶을 떨치고 진정한 교사로 거듭나고자 하는 '교사'에게 더 매섭게 가 닿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월간《우리교육》에 '인물과 만나는 교육운동사'라는 제목으로 2006년 9월호부터 2008년 7월호까지 연재된 글들을 묶은 것이다. 1986년의 한국YMCA중등교육자협의회부터 전국교사협의회와 평교사회, 1980년대 중후반의 사립학교 민주화 운동, 1989년 전교조 탄생과 1999년 전교조가 합법화되기까지, 뜨겁고 치열했던 그 시기의 이야기를 많은 자료와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 생생하고 감성적인 언어로 재현했다. 

그동안 교사들의 삶과 고투의 역사, 아이들의 꿈과 현실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온 저자 윤지형 교사가 지난 3년 동안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아 생생하게 기록한 '전교조, 그 스무 해의 비망록'에는 '참교육'의 지평에서 명멸해 간 수많은 이들의 순정과 열망, 고난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가 국민에게서 멀어져 간 현재의 전교조에 대한 뼈아픈 성찰의 목소리와 함께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가 맨 처음 만난 사람은 이수호 교사다. 그가 누구인가? 1980년대 초 무렵부터 싹터 오늘에 이르는 30여 년의 교육운동 역사를 돌아보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그 맨 앞에 서 있는 윤영규와 이수호, 이 두 교사를 만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교사 윤영규'를 맨 먼저 만나고 싶었지만 그는 2005년 3월, 너무도 황망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고 술회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이수호 교사를 만나는 것은 곧 윤영규 교사를 만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두 교사는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한 몸이었기 때문이다. 2006년 9월의 어느 토요일, 서울 선린인터넷고등학교로 찾아간 그에게 나이 쉰여덟의 교사 이수호는 이렇게 말한다.   

"학교는 나의 고향입니다."

학교가 고향인 사람은 필경 학교를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사람이리라. 하지만 '어디에 있든 교사임을 잊은 적이 없는' 그는 과연 먼 길을 돌아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불의한 시대가 몇 번에 걸쳐 학교 밖으로 그를 내몰았던 것이다. 그는 1986년 5월 10일 서울 Y교협 회장으로 역사적인 '교육민주화 선언'에 참여한 뒤, 3년 뒤인 1989년 윤영규 교사와 함께 전교조 결성의 최전선에 서 있다가 그 일로 법정에 서게 된다. 그의 법정 최후 진술은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올바른 가르침의 기준이 되어야 할 아이들의 교과서는 국가 시책이 바뀔 때마다 바뀌면서 정권의 홍보물로 전락해 있었고, 일제 치하에서 민족을 배반하며 식민지 교육에 앞장섰던 교육관료들은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면서 교장, 교육감, 문교부관리가 되어 형식 위주의 관료 체계를 강화해 왔지요. 교사를 소신도 책임감도 사명감도 없이 열등감에 가득 찬, 비참한 월급쟁이로 전락시켜 버린 거지요. 한 번씩 졸업한 제자들에게 "선생님! 아직도 거기에 계세요?" 라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사람들이 교직 사회를 인간낙오자나 모여 있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참담한 심경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9쪽)

윤지형의 <교사를 위한 변명>을 읽다보면 불쑥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이 땅에 전교조가 없었다면 우리 교육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전교조에 대한 거센 공격이 가해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전략상으로 불리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사실 지금 전교조는 안팎으로 많은 고난에 직면해 있다. 보수 신문들의 공격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전교조의 가장 큰 지지자였던 학부모와 학생들도 전교조를 외면하고 적대감을 표출하기도 한다. 일이 이쯤 되고 보면 화려한 변명보다는 세상의 비난에 귀를 열어놓고 아예 죽은 체하고 지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진실이다. 잘못을 뼈아프게 반성하는 것도 진실이지만 잘한 것을 기억해내는 것도 진실의 몫일 터이다. 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만약 이 땅에 전교조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 교육은 천길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사실(혹은 진실)을 우리의 가슴에 돋을새김으로 각인시켜준다. 문제는 이런 전교조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과거형으로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가 만나는 사람마다 현재의 전교조에 대해서 집요하게 묻고 있는 것도 전교조의 미래에 대한 우려감 때문이리라.  

1989년 해직된 후 만 9년 만인 1998년 9월에야 학교에 돌아와 "오늘도 아이들에게 사랑의 빚을 갚는 심정으로 교문을 들어선다"고 말하는 시인 배창환 교사도 전교조의 위기는 "아이들의 소박한 소망 위에, 국민의 가슴 위에 우리의 꿈을 싣고 깃발을 세웠던 그 초심에서 멀어져간 우리들 자신의 오만에 있을 뿐"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전교조'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전교조가 역사 속에 뿌린 소중한 땀방울에 대한 긍정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오늘의 전교조가 난관에 처해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교조 교사 개개인이 각자의 회한을 안은 채 참교육 운동의 무대에서 이탈하거나 내려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엔 1989년 그해 이후 이 무대에 뿌려진 우리의 피와 땀이 너무나 소중하고 아이들의 절규와 고통이, 아이들의 사랑과 헌신이 너무나 크고 소중하지 않습니까?" (105쪽)

감동적인 교육일기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로 유명했던(그의 유별난 사랑은 그 책보다 더 유명했지만) 한 이상석 교사도 오늘의 전교조에 대해 묻는 저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고 있다. 

"전교조가 대중 조직체이기 때문에 견결한 도덕성을 요구하기는 어렵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우리 전교조만은 그것이 생명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 도덕성은 무엇보다 말과 행동의 일치를 요구하지요. 요즘은 가끔 내게 묻습니다. 죽은 그들은 살아 있고 산 우리는 오히려 죽은 게 아닌가 하고.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죽어 간 그들이 우리 가슴속에 살아 있는 한 결코 그럴 수는 없는 것이지요." (125쪽)

나는 직업이 교사다. 아이들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나에게는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교육노동자로서 또 하나의 정체성이 있다. 이런 교사의 호칭, 혹은 정체성에 대하여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전교조가 출범하면서 '교사도 노동자다'라고 외쳤을 때 그 말이 너무도 생소하여 놀란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리 노동의 신성함을 역설하고, 선진국이라는 다른 나라에도, 아니 지금 우리나라에도 기자들의 노동조합이 있고, 심지어 프랑스에는 판사 노동조합이 있다고 해도 그들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전교조가 '교사는 노동자'라고 선언했을 때 그 건 '선생님'을 부정한 것이 아니었다. 어찌 그럴 수가 있겠는가? 그들은 단지 자신을 노동자로 각성하여 보다 참된 '교사'가 되고자 했고, 진정한 '선생님'이 되기를 열망했다. 교사는 엄연히 교육 노동자이고 또한 교사는 엄연히 '선생님'이어야 할 뿐이다." (13쪽)

그 다음 대목이 중요하다. 마치 기차가 터널을 빠져나와 환한 들판을 지나듯 책에 갇힌 활자들이 환한 의상을 입고 나비처럼 나에게 날아들었다.       

"그렇다. '교사'의 탄생과 함께 '선생질이나 해 먹은 선생'이 역사의 무대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어간다면 나는 오늘의 이 외롭고 힘겨운 '교사'의 자리에 '선생님'이 귀환해야 한다고 믿는다. '교육 노동자'가 어쩌면 잠시 한쪽으로 밀어놓고 싶었을 '하늘 같은 선생님' 말이다. 아이들로부터 아낌없이 사랑 받는 선생님. 사회로부터 진정 존경 받는 선생님의 아름다운 귀환을 위해 이 '변명'을 세상에 보낸다." (13쪽)

나 또한 이 턱없이 부족한 글을 세상에 보낸다. 그가 발로 쓴 '인물과 만나는 교육운동사'를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소망하면서.

덧붙이는 글 | 윤지형
1957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85년 부산진여고에서 교사의 삶을 시작한 뒤 1989년 전교조 결성 때 해직되었다. 현재 부산 신곡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교육 장편소설《선생님》(실천문학, 1990), 청소년 성장소설 《예수, 모란여고에 부임하다》(동녘, 1992), 교육일기 《학교 너는 아직 내 사랑인가》(삼진기획, 2001)를 냈다. 교사들의 삶과 고투의 역사, 아이들의 꿈과 현실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 관심을 가져 왔다. 〈경향신문〉 <오마이뉴스>의 기고와 월간 《우리교육》의 <윤지형의 교사탐구> 등을 통해 시대의 기록자로서 역할을 해 오고 있다. 마음 깊은 곳에는 ‘나를 등불 삼고 진리를 등불 삼으라(自燈明 法燈明)’는 붓다의 가르침이 숨어 있다.

교사를 위한 변명/윤지형/우리교육(주)/13,000원



교사를 위한 변명 - 전교조, 그 스무 해의 비망록

윤지형 지음, 우리교육(2009)


태그:#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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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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