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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애 선희에게 여행의 전환점을 마련해준 이탈리아 레스토랑. 이 식당은 저녁에만 문을 여는데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큰 애 선희에게 여행의 전환점을 마련해준 이탈리아 레스토랑. 이 식당은 저녁에만 문을 여는데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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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애는 좀체 여행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여행에서 즐길 거리를 발견하지를 못했지요. 음식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주변에 사람이라고는 어른뿐이니 어울릴 친구도 없고, 그저 길거리서 사먹는 아이스크림이나 군것질거리에서 약간의 만족을 얻을 뿐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기쁨은 짧고 고난은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에서 큰 애는 여행의 전환점을 맞게 됐습니다. 소극적이고 재미없던 여행이 흥미롭고 기대할만한 여행으로 바뀐 것인데 그게 좀 뜻밖이었습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들어간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입니다.

자얀데 강에서 노을을 감상하고 우린 지친 몸으로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있는 호텔로 갔습니다. 이란 전통요리가 아니면 패스트 푸드만 먹던 우린 모처럼 제대로 된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떴습니다.

깔끔하게 유니폼을 차려입고 매끄러운 영어를 구사하는 웨이터에게 스파게티와 리조또를 주문했습니다. 호텔 레스토랑이라고  다른 곳 보다는 가격이 좀 비쌌지만 그래도 10불 정도면 푸짐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홀을 두리번거리며 음식을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을 때 매너 좋은 웨이터가 와서 홀 가운데를 가리키며 샐러드를 갖다 먹으라고 했습니다. 홀 가운데는 커다란 기둥이 있고 기둥을 둘러싸고 푸짐하게 여러 종류의 샐러드와 스프가 보였습니다. 스파게티를 오랜만에 먹어보는 것도 감동 그 자체인데 샐러드나 스프까지 먹으라니 좋아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이란 식 샐러드와 달리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샐러드나 스프는 모두 우리 입맛에 맞았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배가 터지게 먹었습니다. 그래서 정작 우리가 주문한 스파게티가 나왔을 때는 좀 시큰둥했지요. 그래서 스파게티를 많이 남겼습니다. 스파게티가 시간이 지나면 불어서 맛이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낯선 타향에서는 음식이 귀하기에 우린 싸가지고 가고 싶었습니다.

음식을 밖으로 싸가지고 가겠다는 걸 웨이터에게 말해야하는데 이게 참 어려웠습니다. 가지고 간 휴대폰 전자사전을 통해 단어를 찾아서 나열했는데 웨이터는 도통 이해하지를 못했습니다. 나와 웨이터 사이에 의사소통이 안 돼 답답해하고 있으니까 큰 애가 자기가 직접 웨이터와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더니 마침내 '테이크 아웃'이라는 단어를 찾아냈고, 웨이터는 이 단어를 듣고서야 상황을 인식하고, 남은 스파게티를 도시락에 싸서 멋진 가방에 넣어서까지 주었습니다. 큰 애는 자신이 뭔가 해냈다고 무척 좋아했습니다.

 쉬라즈에 있는 사디의 무덤에서 큰 애. 이곳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이란인에게 사디에 대해서 질문도 하고 나름대로 대화를 시도했었다.
 쉬라즈에 있는 사디의 무덤에서 큰 애. 이곳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이란인에게 사디에 대해서 질문도 하고 나름대로 대화를 시도했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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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계산서를 받고 또 대화가 필요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우린 당연히 샐러드는 공짜고 스파게티와 리조또 값만 쳐서 10불 정도를 예상했는데 음식 값이 우리가 예상한 돈의 배 이상이 나왔습니다. 물론 배부르게 맛있게 먹었으니 이 정도 가격도 비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분명 처음에 본 메뉴판 가격하고 다르기에 왜 이렇게 나왔는지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궁리했습니다.

문제는 샐러드에 있었습니다. 샐러드를 당연히 공짜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샐러드 값을 사람 숫자대로 받는 것인지 아니면 빈 접시 수를 보고 가격을 책정하는 것인지를 짚고 넘어가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집이 너무 맛있기 때문에 우린 이스파한에 머무는 동안은 이 집에서 매일 저녁을 먹을 생각인데 그걸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 돈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희는 우리가 궁금해 하는 사항을 영어로 적었습니다. 그래서 어렵게 샐러드에 대한 가격 책정에 대해 질문했고, 영어 잘 하는 웨이터는 샐러드가 사람 숫자에 따라서 가격이 매겨진다고 성실하게 답해주었습니다.

선희는 자신의 영어 실력으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한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그래서 하늘로 튀어오를 만큼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물론 영어에 대한 흥미도 부쩍 늘었고요. 이때부터 선희는 영어를 쓰려고 애를 썼던 것 같습니다.

영어를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와 동생은 자신에 비해 영어실력이 한참 뒤떨어지니까 엄마와 동생 앞에서 잘난 척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영어를 이용하는 것이었지요. 사실 따지고 보면 그다지 뛰어난 영어실력은 아니지만 어쨌든 다른 두 명 보다는 나으니까 영어로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려고 애썼던 것입니다.

이렇게 선희는 영어로 인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또 여행의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이후부터는 그간 소심하게 뒤로 물러 서있던 태도를 버리고 앞으로 나서서 영어를 쓸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면서 영어를 쓰려고 했습니다.

나중에 키쉬섬에서는 놀라울 정도의 일을 해냈습니다. 우리가 묵은 호텔에서는 해변을 달릴 수 있게끔 자전거를 빌려주었는데, 우린 호텔에서 낡은 자전거를 2천 원에 빌렸는데 해변에서는 새 자전거를 1500원에 빌려주고 있었습니다.

호텔에서 우리에게 바가지를 씌웠다고 생각했지만 영어가 안 되니 그냥 포기하려고 했는데 선희가 자기가 한 번 나서서 비싸다고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좀 뜻밖이었습니다. 사실 선희는 식당에서 반찬 한 가지 더 얻어오라고 해도 쭈뼛거릴 정도로 소심한 아이인데 이런 상황에서 나서는 건 정말 의외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영어실력을 뽐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는지 기꺼이 나섰습니다. 선희는 자신이 하고픈 말을 영어로 열심히 연습하더니 정말 호텔 프런트에서 매니저에게 자기 의견을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직원은 빙그레 웃으며 순순히 값을 깎아 주었습니다. 사실 얼마 안 되는 돈을 이익 본 거지만 선희는 일확천금이라도 얻은 것처럼 행복해했습니다. 이렇게 영어는 선희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여행을 하다가 터미널이나 식당 등지에서 가끔 영어를 쓰는 이란인을 만나면 볼까지 빨갛게 된 채 자신이 쓸 수 있는 영어를 다 쏟아내면서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현재를 즐겼고, 그게 선희가 여행을 즐기는 방식이었습니다.


#영어#이란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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