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계양산 달팽이의 느림 앞에 무릎꿇다!!
ⓒ 이장연

관련영상보기



어제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장마를 알리는 반가운 비가 많이 내려, 어리석고 욕심많은 인간들이 세상 곳곳에 내놓은 상처들을 촉촉히 어루만지며 쓸어내렸다.

 

덕분에 미친 듯이 쿵쾅거리며 산을 쪼개고 강하천 바닥을 긁어대던 육중한 중장비의 움직임도 멈췄다. 쓰레기가 넘쳐나는 회색도시를 휩싸던 자동차의 매캐한 매연과 소음도 빗방울을 이기지 못하고 잦아들었다. 그래서 여전히 살벌하고 각박한 세상이지만, 간만에 토요일다운 토요일을 보낼 수 있었다.

 

빗소리가 소리없이 그친 오늘 아침,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떠 아침을 챙겨먹고 비가 오기전에 간만에 기름칠을 해둔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집밖의 검은 도로는 일요일 아침이라 한산했고, 비구름 사이로 눈부시게 파란빛 하늘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원한 빗줄기에 짙은 초록빛을 발하는 가로수 사이로 상쾌하 바람이 얼굴에 부딪혀왔고, 황당한 사방댐공사를 끝낸 공촌천 발원지 계곡에서는 성난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그런데 무더위까지 씻겨준 빗줄기 덕분에 땀도 내지 않고 징매이고개를 오르다, 한산한 고갯길을 미친 듯이 질주하던 파란 자동차가 제동장치가 문제인지 '끼이이익' 하는 듣기 싫은 소리와 함께 좌우로 크게 요동치는 모습을 목격했다. 다행히 도로 위에는 다른 차량이 없어 큰 사고를 모면했지만, 비가 그쳤다고 내리막길에서 과속을 하니 저런 위험한 꼴을 당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혀를 차며 고갯마루에 이르렀을 때는 도로위에 작은 돌멩이처럼 생긴 것이 앞에서 움직여, 살짝 핸들을 틀어 피해 자전거를 멈춰섰다. 자전거에서 내려 징매이고개 생태통로 공사를 알리는 표지판이 시작되는 길 가장자리로 움직이는게 무엇인가 살펴봤다.

 

 

 

돌멩이가 아니라 오랜만에 보는 느림보 달팽이였다. 어디서부터 달팽이가 아침 햇살에 메말라가는 아스팔트 도로 위를 따라 이동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동력이 약한 달팽이가 기어온 방향을 보면 길 건너편이 아닐까 싶었다. 무려 8차선이나 되는 도로를 그것도 무서운 자동차의 검은 바퀴를 피해서 용케도 무사히 길을 건넌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목숨을 건 달팽이의 느린 행진에 저절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무릎을 꿇고 큰 더듬이와 작은 더듬이로 달팽이가 어디로 향하는지 살펴본 뒤, 살며시 손가락으로 집어 손바닥에 올려 나무그늘과 습기가 충만한 풀 위에 놓아주었다. 괜한 참견일지 모르겠지만, 자동차는 피했지만 다른 자전거에 치일 수 있을 것 같아서 달팽이를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잠시 놀라 움츠렸던 달팽이는 손바닥 위에서 움직이며 진득한 점액을 남겨주고 낙엽 속으로 사라져갔다. 느리겠지만 온전한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달팽이처럼 살게 될 거라는 끈적한 부적을 남겨 둔 채....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 느림보 달팽이처럼 계양산을 지켜온 사람들이 롯데골프장을 막기 위해 오늘(21일) 오후2시 계산체육공원에 모인다.


#달팽이#도로#자동차#느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