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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을 모신 절에 갈 때는 보통 편안한 마음으로 간다. 그런데 절 입구에 서있는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사천왕을 먼저 보고서는 기겁을 하게 마련이다. 인자한 부처님을 기대했다가 무기를 들고 험상궂은 모습을 한 사천왕을 만나면 절에 가기가 싫을 정도로 정이 떨어진다. 사천왕이 왜 절 앞을 지키고 섰는가를 알게 되면 이런 오해는 쉽게 풀린다. 사천왕은 불법과 불자를 지키는 수호신이며 각종 악령을 몰아내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특히 사진에 나와있는 廣目天王(광목천왕)은 눈을 부릅뜨고 위엄으로 나쁜 것들을 물리치는 왕이다.

 

절 입구에 선 험상궂은 사천왕은 수호신

 

그림에 나와있는 艮(그칠 간)의 금문이나 소전을 보면, 눈이 걸려 있고 그 아래 뒤로 돌아선 사람이 있다. 부라린 눈이 무서워 사람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물러나고자 뒤로 돌아선 모습이다. 金文(금문)이 춘추전국시대 이전에 쓰인 글자이므로,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기 전 아니 일어나기도 전에 쓰인 글자라 사천왕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하지만 이 글자는 사찰의 광목천왕의 역할과 너무나 흡사하다.

 

艮(간)은 주술적인 목적으로 걸어놓은 눈이 무서워 멈춘 사람을 표현한 것이므로 '멈추다, 그치다'는 뜻을 갖게 되었다.

 

限(지경 한)은 阝(좌부방)와 艮의 조합인 데 阝(부)에 대해서는 조금 설명이 필요할 듯 하다. 阝는 阜(언덕 부)의 부수 글자이다. 이는 신이 하늘과 땅을 오르내릴 때 쓰던 사다리이다. 전 세계 신화에는 대개 황금시대가 있는데, 이때는 신과 인간이 하늘과 땅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이 때는 먹을 것과 입을 것 걱정이 없었으며 사람과 동물이 형제처럼 지냈다. 성서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사자들이 어린 양과 뛰놀고 독사 굴에 어린이가 손 넣고 장난치는, 참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였다.

 

하지만 인간의 죄와 타락으로 그 연결고리가 끊어져 인간은 굶주림과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 연결고리가 나무인 경우도 있고 사다리인 경우도 있다. 지금 우리들이 하늘과의 연결 사다리를 다시 세우는 것이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소명이 아닐까 싶다.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신이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곳은 절과 마찬가지로 신성한 장소이므로 주술적인 눈을 두어 악령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限은 악령이 더 이상 접근해서는 안 되는 경계•한계•지경을 뜻한다. 時限(시한)

 

恨(한할 한)은 艮에 忄(心. 마음 심)을 붙여 더 이상 나갈 수 없어 원통한 마음, 즉 한스럽다는 의미이다. 요즘 자라는 아이들은 恨(한)이 많다. 못하게 하는 게 워낙 많으니까 말이죠! 怨恨(원한)

 

艮에 目(눈 목)을 붙인 眼(안)은 눈을 뜻한다. 원래는 주술적인 눈을 의미했겠다. 眼鏡(안경)

 

艮에 木(나무 목)을 더하면 根(뿌리 근)이 된다. 나무가 한 자리에 멈춰 살려면 뿌리가 있어야 한다. 根源(근원)

 

金(쇠 금)을 더하면 銀(은 은)이다. 銀行(은행)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하다. 돈이 돌다 멈추는 곳이 은행이다. 참고로 金은 청동을 주조하는 거푸집이다. 요즘 아이들이 주스를 플라스틱 통에 담아 냉동실에 넣어 얼음과자를 만들어 먹는데 그 통을 생각하면 된다. 銀貨(은화)

 

豸(발 없는 벌레 치)는 입과 이빨이 강조된 짐승의 모습이다. 90도 왼쪽으로 돌려서 보면 그 모습이 명확하다. 이 글자와 艮을 더하면 貇(씹을 간)입니다. 짐승이 멈춰서 음식을 씹는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이 貇 아래 土(토)를 더하면 墾(따비질 할 간)이 된다. 쟁기질 한다는 뜻이다. 흙을 잘근잘근 씹듯이 잘게 부스는 것을 따비질로 생각해도 무방하지만, 정확히는 밭을 갈기 전에 토지신에게 희생제물로 짐승을 바쳤을 것이다. 艮은 물론 발음 역할을 하지만 농사를 지으면서 정착 생활을 하였으므로 뜻과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開墾(개간)

 

貇에 心(심)을 더하면 懇(간절할 간)이다. 貇(간)이 물론 발음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먹을 것을 찾지 못한 동물들의 마음이라 생각해도 좋겠다. 몇 년 전에 MBC에서 <푸른 늑대>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다. 몽골 초원에서 어미 늑대가 굶주린 새끼를 뒤로 하고 인간들이 총을 들고 지키는 양떼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떠오른다. '간절하다'는 표현이 이 만큼 적당하게 쓰인 경우가 드물겠다.

 

退(물러날 퇴)는 *辶(책받침)과 艮(간)의 조합이어서 뒤를 향해 물러나는 의미가 쉽게 연상된다. 하지만 본디 글자로 볼 때, 日(일)이 여기서는 그릇, 夊(쇠)는 아래나 뒤를 향한 발바닥 모습, 彳(척)은 사거리 모습으로 제사가 끝나고 식기에 담은 공물을 내리는 모습으로 '내리다, 끌어당기다'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되돌아(艮) 간다(辶)고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여기에 衣(옷 의)를 더한 褪(퇴)는 색이 '바래다'는 뜻이 된다. 색과 관련된 글자에는 衣(의)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염색 때문이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무사히 살 수 있는 것은 수많은 사천왕이 악령을 막아 우리를 지켜주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자외선 등의 해로운 우주의 기운을 막아주는 대기 특히 오존층을 첫째로 꼽을 수 있다. 이 오존층이 화석연료의 남용으로 이산화탄소가 급증하여 구멍이 뚫린다고 한다. 사천왕을 죽이고 있는 꼴이다.

 

우리 몸에도 사천왕이 많다. 세균이나 암세포를 차단하는 림프절, 해독 작용을 하는 간 등 다양하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살기가 어려워졌지만, 이만한 자유라도 누리고 사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가신 영혼들이 우리를 지켜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艮에 있는 눈처럼 우리를 지켜주고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감사하고 소중한 만큼 가끔 되돌아보며 살았으면 한다.

 

* 辶은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辶의 본디 글자는 辵(쉬엄쉬엄 갈 착)이며 이는 彳(자축거릴 척)과 止(지)의 조합이다. 彳은 사거리를 나타낸 行(다닐 행)의 왼쪽 부분, 止(그칠 지)는 발바닥 모습이므로 辵은 '거리를 걷다, 움직이다'는 뜻이다. 윗부분 彡이 彳의 변형, 아랫부분도 止의 변형이다. 이 辵을 더 간단히 한 것이 辶이며 다른 글자의 받침으로 쓰기 때문에 착의 받침->책받침이 되었다. 따라서 이 글자는 받침이므로 다른 글자를 쓴 후에 써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점식 기자는 새사연 운영위원입니다. 한자 해석은 일본의 독보적 한자학자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의 문자학에 의지한 바 큽니다.


#그칠간#사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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