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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쯤 되면 어느 정도 진정돼서 마음 편하게 (앵커 시절의) 얘기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상황이 진행중이라서 말하기가… 허허."

 

지난 4월 13일 MBC 뉴스데스크 앵커에서 물러난 신경민 기자가 모처럼 대중들 앞에 섰다. <오마이뉴스>가 주최하는 '오연호의 기자만들기 학교 29기'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한 6일 특강에서다.

 

그의 명함에는 '선임기자'라는 다소 생소한 직위가 새겨져 있다.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다양한 주제의 취재를 할 수 있도록 고참 기자에게 마련된 보직인데, 4월 13일 '막방' 이후 그는 TV에서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모처럼 긴 휴식을 맞았지만, 그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신 기자가 앵커 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등으로 세상은 어수선하게 흘러갔다.

 

그가 28년간 몸  담아온 MBC도 <PD수첩> 제작진 기소와 미디어법 개정,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개편 등의 이슈가 맞물려 뒤숭숭한 분위기다.

 

특히 오는 8월 방문진이 친여 성향의 이사진 일색으로 개편될 경우 권력에 비판적인 기자·PD들과 큰 충돌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 후일담이지만 그는 앵커 시절부터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각오했다고 한다.

 

"8월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모른다. 사실 8월경에는 내가 뉴스 진행을 더 이상 하지 못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엄기영 사장이 그만두라고 해서…. 나로서는 결사항전할 기회를 놓친 것일 수도, 엄 사장이 나를 '보호'해준 것일 수도 있겠다."

 

그는 수강생들에게 "뉴스가 굉장히 많이 나올 것이니 여러분들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달라, 작년 KBS 사장이 교체될 때도 많이 시끄러웠다"고 귀띔했다.

 

클로징멘트로 인해 유명해졌고, 또 그 때문에 앵커 직을 내놓게 됐지만 자신의 선택에 대해 전혀 후회 없는 표정이다.

 

앵커 시절에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특히 제2롯데월드 추진과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 사건은 그가 여러 차례 클로징멘트를 한 사건으로 기억된다. 기자 시절의 전공이 외교·안보·법조였기 때문에 관련된 토픽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북한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진 사람으로서 제2롯데월드를 지어서 성남공항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봤다. 우리나라의 파일럿이 수백 명인데 정치적 압력이 없는 상태에서 이들을 설문조사하면 100%가 반대할 것이다. 비행하다가 자신들이 죽을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신영철 사건도 있을 수 없는 사건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였다. 신 대법관 같은 분이 박정희·전두환 시대에도 있었고, 그런 분들이 그 시절에 출세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그런 분이 다시 나타나서 대법관으로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봤다."

 

그는 자신의 이념 성향을 의심하고 출신지를 문제삼는 이들에 대해 "나는 한 번도 북한을 찬양해본 적도 없고,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말하는 분들의 인식이 천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엄기영 사장은 그를 앵커직에서 퇴진시킨 이유로 '뉴스의 경쟁력 강화'를 들었지만, 신 기자는 오히려 젊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뉴스에 관심을 가지게 한 것을 앵커 시절의 보람으로 꼽았다.

 

"TV뉴스의 시청자 수가 줄고 고령화되는 것은 전 세계적인 추세다. 앵커에서 하차했음에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게 있다면 나의 클로징멘트를 들으려고 젊은 시청자들이 뉴스 시간을 기다렸다는 점이다. 앵커가 뉴스를 요약이나 하는 자리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전망을 내놓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도 마찬가지다."

 

그는 농담조로 "엄 사장과는 대학 1학년인 19살 때 처음 만나서 회사 생활까지 함께 했는데, 앵커 교체하면서 '경쟁력 없다'고 담화문까지 내면 나는 뭐가 되냐?"며 "그 후에도 계속 같은 얘기를 하는데 별로 반성하지 않는 것같다"고 말해 수강생들을 웃겼다. 엄 사장과 그는 서울대 사회학과 1년 선후배 사이다.

 

그는 나름대로 TV뉴스의 천편일률적인 포맷을 깨려고 시도했지만,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언론종사자와 시청자들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뿌리박힌 유교문화와 형식주의를 가장 큰 걸림돌로 예시했다.

 

"여름에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넥타이를 1주일 풀었더니 다시 매라는 얘기들이 많더라. 여자 아나운서가 긴 귀고리만 달고 출연해도 '방송국이 카바레냐'는 식의 푸념이 나온다. 젊은 여성들을 앵커로 많이 기용하는 것도 시청자들의 요구가 있기 때문 아니냐? 일본의 모 앵커는 '어느 야구팀이 경기에 지면 머리를 빡빡 깎겠다'고 뉴스 시간에 공언했고 실제로 행동에 옮겼는데, 우리나라 같으면 당장 출연정지 감이다. 앵커에게 육사생도과 같은 근엄함을 요구하는데 이건 깨기 힘들 것 같다. 우리 사회의 분위기로는 앵커는 오소독스(orthodox, 정통파적인)한 진행을 하는 게 정석이다."

 

신 기자는 우리 사회의 당면 과제로 '민주주의의 업그레이드'를 꼽았다. 선거로 대표되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틀은 갖췄지만, 민주적인 통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인식의 혼란이 있다는 생각이다.

 

"민주적 절차에 의해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을 뽑아놓았으니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말라는 게 (집권층의) 논리다. 하지만 민주적으로 뽑힌 지도층이라면 민주적으로 통치해야 하는 것 아니냐? 지금처럼 민주적 절차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합의를 보지 못하면 끝이 어떻게 될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골치 아픈 상황이다. 민주주의가 만든 함정에 빠졌다고나 할까?"

 

그는 "사회 전체가 기업의 논리에 빠져 있는데 이를 극복할 방안이 별로 없어 보인다"며 "정치적으로 난국을 잘 풀어야 하는데 나는 앞날을 약간 비관적으로 본다"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신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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