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증오의 기술>(가브리엘 뤼뱅 지음) 겉그림.
<증오의 기술>(가브리엘 뤼뱅 지음)겉그림. ⓒ 알마
사람 마음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와 조건 아래서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고 심지어 상대방이 지닌 모든 악을 자신에게 뒤집어씌우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미움인지 가려내기 힘들게 할 뿐 아니라 스스로 상식을 뒤집고 가해자(상대방)와 피해자(자신)를 교묘하게 뒤바꾸어버리는 희한한 논리를 만들어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이런 상식에 반하는 논리 안에서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는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사람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을 의의로 많이 벌인다. 왜 그런 일이 생길까.

'미움과 용서의 올바른 사용법'을 알려준다는 책 <증오의 기술>(알마 펴냄, 2009)은 심리학자 가브리엘 뤼뱅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모습을 보이는 수많은 피해자들을 상담한 과정을 묵묵히 담아내었다.

뤼뱅은 잘못한 일 자체를 인정하지도 않고 심지어 기억하지도 못하는(?) 가해자와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신만의 현실로 뒤바꾸어 그 속에서 살아가는 피해자들을 주의 깊게 다루었다. 그는 책에서 건강한 증오의 기술이 건강한 자아 재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증오의 기술, '없는 현실'을 깨고 가해자 아닌 가해자를 구출한다

심리학자 뤼뱅은 책에서, 가해자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피해자들을 보여준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피해자들은 가해자와 가해 행위들을 '지워버리고' 눈에 뻔히 보이는 가해 행위와 그 때문에 생긴 생생한 상처들을 철저히 자기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여기서 가해자는 대개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한 마디로 부모와 자녀, 부부와 같은 가족일 경우이다. 그는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혼란스런 현실과 이해할 수 없는 자기 논리 사이에서 방황하는 피해자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 '증오의 기술'이 왜 필요하며 또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풀어낸다.

행복은 물론이요 사실상 자기 자신마저 잃어버린 피해자들이 겪은 상황을 뤼뱅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한다.

첫 번째 유형은 정상 상황이라면 충분히 사랑을 주고받았을 사람이 고통을 준 경우이다. 그는 이 경우 가해자에게 철저히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두 번째 유형은 가해자가 고의로 그런 게 아니거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피해자에게 고통을 준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가해자가 담당해야 할 책임 정도가 좀 줄어들 수밖에 없으나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세 번째 유형은 솔직히 책임을 지우기 어려운 경우인데, 예를 들어서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사망한 부모가 이런 유형의 가해자에 해당한다. 아이는 부모가 없는 상황에서 부모가 있었으면 충분히 누렸을 상황들을 주위에서 보게 되고 급기야 항의할 수 없는 대상을 자신에게서 찾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유형 어디에서도 피해자는 자신이 겪은 상처를 '지워버릴' 의무(?)나 가해자를 '지워버릴' 권리(?)를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피해자는 어떤 경우에서든 자신이 겪은 피해와 상처들을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에게서부터) 인정받고 오로지 그것을 치료하는 과정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이런 당연한 심리 흐름과 치료 과정을 방해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가해자와 가해 행위들을 설명하기 위해 피해자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논리이다. 의외가 아닐 수 없고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미움과 용서의 기술, 올바로 적용하려면 진짜 현실을 구분해내야

뤼뱅에게서 우리는 아르망 사례를 만날 수 있다.

오십대 중년 남성인 아르망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다른 남자를 만나 (아르망을 버리고?!) 떠났다는 '이야기'를 어렴풋한 현실과 함께 끌어안고 자랐으며 아버지에게서는 사실 살가운 정을 느끼지 못했다. 아르망이 어린 시절 할머니 집에 있었을 때 어머니와 헤어지게 될 사정을 말하러 아버지가 할머니 집에 왔었다. 그 때 아버지는 대화 중 할머니와 다툰 뒤 아르망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 결혼을 했지만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 그를 떠나버렸으며 여전히 어머니는 그에게 '없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아르망이 아버지의 통보 뒤 스스로 어머니를 '지워버려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아르망은 오십대 중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어머니가 (어딘가에) 있는지 몰랐고 아버지는 '있어도 없는' 사람이었다. 아르망은 아르망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아르망은 직장을 잃은 뒤 이전까지 거의 만나지 않고 지낸 아버지 집에 '되돌아가'-아르망 자신이 한 말-살았는데 뤼뱅을 찾아오기 전 그 기간이 이미 2년이나 되었다. 그가 '되돌아가다'는 말을 한 것을 두고 뤼뱅은 무척 의아해했다. 아르망은 되돌아간다는 말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상황 속에서 살아왔다. 아버지를 만난 일도 드물 정도로 그는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도 '지워버리고') 혼자 큰 셈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자기 여자 친구 때문에 아르망에게 방을 비워달라고 말했고, 그는 그런 상황에서 뤼뱅을 찾아온 것이다. 더욱 말문을 막히게 한 것은 어느 날 어떤 남자가 찾아와 그의 어머니가 아들을 그리워하며 살다가 2년 전 암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한 일이었다. 어머니는 자주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는데 정작 아르망은 전혀 모르는 일이다. (그는 할머니가 항상 우편물을 정리했던 일을 기억해보는 등 얼마 없는 기억 조각들을 끼워 맞춰보려 애썼다.) 숨길 수 없는 외로움 때문인지 어떤 복수심 때문인지 일부러 아버지 집에 '되돌아가' 살다 다시 나오게 된 아르망은 또 복잡한 현실에 마주했다. 도대체 그는 어떻게 이 상황에 대처해야 한단 말인가.

뤼뱅은 아르망이 항상 누군가 곁에 있는 것에 버릇이 든 상태라고 말했다. 아버지에 대한 아르망의 애착이 강하다는 말도 했다. 우연찮게 들은 어머니 소식은 황당한 현실과 함께 그를 더욱 힘들게 했고 "결국 대부분 상상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잃었을 때 그것을 보충해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이 모든 상황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뤼뱅은 그가 "이제 와서 다시 혼자 살게 되는 게 힘들지도 모르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뤼뱅은 아르망이 허상을 거두어내고 아버지가 자신에게 준 상처를 자기 안으로 끌고 들어갔던 것을 끄집어내길 바랐다. 다행한 일이라면, 어머니에 관한 새로운 소식을 들은 뒤 그가 자기 안으로 끌고 들어간 모든 분노와 자기 학대 같은 태도를 '지워버리고' 자기 모습을 '살려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이차가 많이 나 아버지 같은 역할을 하던 오빠에게 강간당한 위게트가 철저하게 오빠를 '변호하고' 모든 이야기를 자신에게 몰아간 사례를 볼 수 있다. 똑같이 부유한 집안 출신이면서도 사교성이 좋고 좀 더 벌이가 나았던 어머니가 아버지를 무시하는 가정에서 자라난 라울이 매 맞는 남편이 되어 아내를 '변호하며' 살아가는 사례도 볼 수 있다.

그들은 사태를 파악하는 방식, 원인과 대책을 파악하는 태도 모두 오로지 자신에게서만 찾으려 했다. 심지어 분노를 터뜨리는 대상도 자신이었다. 이들은 한결 같게 증오와 용서를 적용하는 대상을 뒤죽박죽 섞어버렸고 심지어 다 '지워버리기도' 했다. 그들은 미움과 용서를 제대로 적용하지 못했으며 자신이 피해자라는 진짜 현실을 아예 거부하기도 했다.

1장('증오를 인정하라')과 2장('고통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에 걸쳐 여섯 가지 사례가 등장한다. 책 반절 조금 넘는 분량이다. 3장은 '부당한 죄책감에서 벗어나라'이고, 4장은 '지나친 선량함도 병이 된다'이며 5장은 '피해자가 죄를 뒤집어쓰다'이다. 제목만 보아도 피해자가 겪는 이해할 수 없는 이중 감정, 이중 현실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Du bon usage de la haine et du pardon

그래, 미움과 용서를 잘 사용할 수 있어야 하리라. 그런데 뤼뱅이 만난 '피해자'들은 이 어려운 일을 모두 끝까지 잘 해냈을까? 삶이 모두 그러하듯, 그들 삶은 쉼 없이 이어지고 있을 테니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끝까지 잘 해냈을까, 아니 잘 해내고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증오의 기술> 가브리엘 뤼뱅 지음. 권지현 옮김. 알마, 2009.
(원서) Du bon usage de la haine et du pardon by Gabrielle Rubin(2007)
*이 서평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자신이 작성한 글인 경우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증오의 기술 - 심리학자 가브리엘 뤼뱅의 미움과 용서의 올바른 사용법

가브리엘 뤼뱅 지음, 권지현 옮김, 알마(2009)


#증오의 기술#가브리엘 뤼뱅#알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