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되니깐 몸이 근질근질하다. 어디 나갔다 오지 않으면, 다음 한 주가 잘 안 풀릴 것 같다. 이럴 때, 호주 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다. "My feet itch." 직역하면 "발이 가렵다"는 말인데 우리는 "떠나고 싶어 몸이 들쑤신다"고 하니, 뻥은 한국 사람이 좀 더 쎈 것 같다.
이번 캠핑에는 개를 데리고 갔다. 캠퍼밴(봉고차를 개조하여 만든 조그마한 모터홈) 한 쪽에 이불을 깔고 거기다가 앉혀 놓았다. 우리 개는 14살이다. 개 나이 한살이 사람 나이 일곱살이라니, 우리 개는 칠순도 넘은 셈이다. 나이가 들어서 움직임이 그 전처럼 잽싸지는 않으나 건강하다. 더구나, 젊었을 때처럼 말썽 피우는 일이 적어서 좋다.
이 녀석도 캠핑 따라가는 것을 좋아한다. 콧구멍에 바람 넣기를 좋아하는 것은 사람이나 개나 다를 바 없나 보다. 내가 캠핑 준비를 하고 있으니, 저도 따라 가려고 아예 문짝에 붙어 서있다. 토요일 오전에 몇 가지 일을 처리하다 보니, 벌써 오후 2시가 넘어 버렸다. 이불과 베게를 차에 던져 넣고 물 탱크를 채웠다. 그리고는 출발!
이번에 내가 간 곳은 집에서 한시간 쯤 떨어진 도로변 쉼터이었다. 호주의 시골 도로에서는 이러한 쉼터를 가끔 볼 수 있다. 자동차 여행에서 지친 사람들이 하룻밤 쉬어 갈 수있는 곳이다. 어떤 곳은 꽤 붐비기도 하는데, 내가 간 곳은 한적한 시골이라서 내 차 밖에 없었다.
도착하자 마자 나뭇가지를 주웠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나뭇가지 줍기가 어렵다. 불을 피웠다. 철제 바베큐에 붙어 있는 굴뚝에서 연기가 피워오르면서 싸한 냄새가 사방을 감싼다. 큰 나무 등걸은 도끼로 팼다. 나는 큰 도끼를 늘상 가지고 다닌다. 가느다란 나뭇가지는 손이나 발로 분지를 수가 있지만, 나무 등걸 큰 것을 바베큐 사이즈로 만들려면 반드시 도끼가 필요하다.
불에 달구어진 쇠판 위에 밥솥, 국솥, 그리고 주전자를 올려 놓았다. 고기를 좀 가지고 왔으면 좋았을 터인데, 바삐 오느라고 못 챙겼다. 한잔 마시려고 찾아보니 소주도 없다. 차에서 전기줄을 빼서 전등을 달아 놓고, 장잣불 옆에서 저녁을 먹었다.
금방 어두워졌다. 호주는 지금 초겨울인데, 낮에는 20도 정도 되지만 밤이 되면 춥다. 더구나 이 쉼터는 산자락에 있어서 밤에는 살얼음이 얼 정도이다. 우리 개도 늙다리라서 추위를 탈 것 같았다. 그래서 차 안에 이불을 깔아주었다, 담요도 한 장 덮어주었다. 이 녀석은 캠핑 가서 아빠와 함께 자는 것을 참 좋아한다. 사람이 많지 않은 이곳 호주에서는 개가 곧 식구이고, 이 녀석은 나의 막내딸이다.
나도 이불 속에 들어갔다. 초승달과 별들이 창문을 통해 보인다. 모든 것이 한국과 반대인 이곳에서는 초승달 모양도 꺼꾸로이다. 초승달을 쳐다 보면서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자다 보니, 어디선가 아주 고약한 냄새 난다. 이게 무슨 냄새지? 불을 켜고 시계를 보니 12시 반이다.
나는 곧 알아채었다. 우리 개의 방귀 냄새이었다. 냄새가 아주 고약했다. 그런데도 이 녀석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 모르는 척 하면서 잔다. 자기 방귀 냄새는 향기롭다고 하는 사람도 있으니, 이 눔의 개도 그런 식인가? 아니면, 계면쩍어서 시치미 뚝떼고 있는 것인가?
일어나서 차문을 열고 개를 차 밖으로 내 보냈다. 밤 공기가 아주 차다. 쏟아지는 별을 보면서 담배 한 대 꼬나 물었다. 은하수가 왼쪽으로 밤하늘을 가르면서 나무 숲 속으로 달리고 있었다.
하도 추워서 담배를 끄자 말자, 개를 차에 집어 넣고, 나도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한참 잠이 들려고 하는데, 또 그 방귀 냄새가 난다. 똥이 마려운가? 차 안에 똥을 싸면 큰일이다. 재빨리 차 문을 열어 제끼고 개를 바깥으로 내 몰았다.
"가서 똥 누고와!"
다시 담배 한 대 피우고 있는데, 우리 개가 돌아왔다. 무엇을 물고 나를 쳐다본다. 어두워서 후랏쉬를 켰다.
"아이쿠마! 죽은 새 아니냐?!"
귀 싸대기를 한 대 갈겼다. 자기는 칭찬 받을 줄 알고 있었는데, 귀 싸대기를 맞으니, 우리 개는 풀이 푹 죽어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귀 싸대기를 안 갈길 수 없었다. 물고 온 것이 알록달록한 비둘기 종류이었는데, 죽은 지 오래되어 껍질만 남았다. 병균에 옮으면 큰일이다.
나도 이불 속으로 들어 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세를 바꾸었다. 머리를 개와 반대 방향으로 뉘웠다. 그리고는 창문을 몽땅 열어 제꼈다. 방귀 냄새가 아직 차 속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 녀석이 방귀를 계속 끼고 있는 것 같았다. 저녁 나절에 멕인 것이 소화가 잘 안되었거나, 아니면 나이가 들어 괄약근이 약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문을 몽땅 열어 놓으니 방귀 냄새는 빠져서 좋은데, 그 대신 찬바람이 기승을 부린다. 덮고 있는 이불을 돌돌 말아서 몸을 감아도 춥다. 너무 추워서, 바지를 하나 더 끼어 입었다. 그래도 추웠다. 양말도 신었다. 그리고 손이 시려워 양손을 엉덩이 밑으로 깔았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머리가 시리다. 모자를 뒤집어 썼다. 너무 추워서 잠이 오지 않았다. 오돌오돌 떨면서, 그러나 나는 스스로를 위로할 수 밖에 없었다.
'개 방귀 냄새 보다는 그래도 추위가 낫지 않겠어?'
세익스피어가 이 글을 쓰고 그 주인공이 햄릿이라면, 햄릿은 뭐라고 중얼거렸을까?
"방귀냐, 추위냐? 그것이 문제로다."
덧붙이는 글 | <2009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
한국의 무더위 여름밤 때문에 고생하는 고국의 동포를 위해, 지구 반대편 호주의 추운 겨울밤 이야기를 가져 왔나이다. 개 방귀 냄새 때문에 더욱더 시원들 하시지요?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