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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 등 대형유통자본의 지역상권 잠식과 지속되고 있는 경제 불황으로 자영업자들은 실업과 폐업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에 자영업자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나름의 경영 노하우를 가지고 위기를 극복해 가는 자영업자의 얘기를 소개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자영업자들의 진솔한 얘기, 그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삶의 이야기를 매월 둘째 주 연재합니다. - 기자 주

부평시장 안에서 고추와 잡곡, 참기름과 들기름을 주로 취급하는 호남상회. 이 가게 주인 정필성, 김정란 부부는 언뜻 보기에 젊어 보여 부모로부터 가게를 물려 받아 편할 거라는 얘기를 듣기도 하지만 실은 그들도 '장바닥'에서 10년 동안 고생한 사람들이다. 무려 6년 동안 하루 3시간 잠을 자며 얻은 곳이 이 가게다.
 부평시장 안에서 고추와 잡곡, 참기름과 들기름을 주로 취급하는 호남상회. 이 가게 주인 정필성, 김정란 부부는 언뜻 보기에 젊어 보여 부모로부터 가게를 물려 받아 편할 거라는 얘기를 듣기도 하지만 실은 그들도 '장바닥'에서 10년 동안 고생한 사람들이다. 무려 6년 동안 하루 3시간 잠을 자며 얻은 곳이 이 가게다.
ⓒ 김갑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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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는데 빚만 늘어 '죽자' 생각

부평시장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의 평균 연령은 50~60대다. 그만큼 젊은 상인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정필성(41)씨와 김정란(37)씨 부부는 더욱 눈에 띈다. 이들도 어느새 이른바 '장바닥'에서 10년 세월의 고락을 맛본 장사꾼이다.

고추와 기름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호남상회' 주인인 부부는 젊다 보니 가게 진열 역시 단아하다. 손님들이 상품을 쉽게 보고 접할 수 있도록 잡곡은 잡곡대로 국산과 중국산을 분리해 조명 아래 진열했고, 참깨와 들깨는 손 높이에 맞췄으며, 들기름과 참기름은 직접 만든 상표를 부착해 눈높이를 맞춰 진열했다.

가게 안쪽에는 손님들이 주문할 때마다 그때그때 고추방아와 기름방아가 돌아간다. 정필성씨의 고향이 부안이라 고추와 참깨, 들깨 등은 부안 형님이 농사짓는 걸 직송해와 가게에서 직접 빻고 짜서 판매하고 있다. 호남상회를 시작한 지는 이제 어느덧 4년 남짓 흘렀다.

이들 역시 가게를 얻기 전 97년 IMF 외환위기라는 위기를 겪어야 했다.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자 정씨는 일자리를 잃게 되자 부평시장 내 한 해물취급 상가에 취직했고 부인 김씨 역시 남편을 도와야 했다. 하지만 열심히 살아보려 한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정씨는 "부평 깡시장에서 깡(도매)이 있고 나면 배달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새벽 4시부터 일을 시작해 점심 무렵 끝났는데 일이 끝나면 어렵사리 마련한 트럭에 과일을 싣고 집이 있는 서구 가정동으로 가 노점을 했죠. 아내가 간단히 준비해 온 점심을 먹고 둘이서 과일을 팔았습니다. 그렇게 하니 한 달에 가게에서 80만 원을 받고 노점으로 70만 원 정도를 벌었는데 시원치 않았죠"라고 전했다.

아내 김씨는 "큰애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둘째는 업고 다니며 장사했는데 벌어도 벌어도 빚만 늘었어요. 생활비가 없다 보니 카드로 돌려막기 일쑤였죠. 매달 25일 무렵이 되면 은행 단말기 앞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요"라며 "그래도 버틸 만 했는데 김포에서 포도를 떼 온 게 화근이 됐어요. 한 40박스를 가져왔는데 상한 물건을 가져와 모두 날린 거예요. 100만 원밖에 안됐지만 그 돈이 우리에겐 엄청난 큰돈이었어요. 그렇게 빚이 조금씩 늘기 시작해 이자에 이자가 붙어 거액이 돼버렸죠"라고 덧붙였다.

전 직장 사장님의 무이자 '500만원'... 얼음가게 일궈

정필성씨는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정말 사람이 이래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의 성실함을 알아 본 지인들은 도움을 줬고, 그렇게 악착같이 일어선 그는 빚 없이 살수 있다는 게 정말 꿈만 같고 행복하단다.
 정필성씨는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정말 사람이 이래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의 성실함을 알아 본 지인들은 도움을 줬고, 그렇게 악착같이 일어선 그는 빚 없이 살수 있다는 게 정말 꿈만 같고 행복하단다.
ⓒ 김갑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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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빚이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젊은 부부는 별의별 생각을 다하기에 이른다. 정씨는 처음으로 '사람이 스스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새벽같이 나가 밤늦도록 일을 해도 살림살이는 별로 나아지질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들 생각에 그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던 것.

아내 김씨는 "정말 살고 싶었는데 정말 돈이 없었어요. 은행 대출도 막혔지, 친척들 사정도 뻔하니 비빌 언덕도 없지. 그래서 정말 울면서 또 카드 대출을 받았어요. 다행히 그래도 남편이 성실히 일하는 모습을 인정한 해물가게 사장님이 '네가 갚을 능력이 될 때 그때 갚아라'고 하면서 500만 원을 무이자로 주셨어요. 그리고 또 한 분이 1000만 원을 빌려주시고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얼음가게를 시작했죠"라고 말했다.

그렇게 마련한 종자돈으로 부부는 99년 3월 얼음가게를 얻고 냉동탑차를 마련했다. 남편 정씨는 새벽 2시에 일을 나가 밤 10시에 마무리했다. 그렇게 쉬지 않고 6년을 일했다. 6년 뒤 그들은 빚 5000만 원을 모두 갚고 수중에 5000만 원을 쥐게 됐다. 그 돈이 오늘날 호남상회의 또 다른 종자돈이 됐다.

남편 정씨는 "42kg 얼음 1포대 팔면 500원 남을 때였어요. 이제 시작이라 아는 가게도 없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주문) 전화벨이 울리면 무조건 신속하게 가는 거였죠"라며 "얼음은 신속하게 배달하는 게 생명입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일이니 배달하면서도 일일이 포장을 뜯어 좌판에 직접 깔아 줬죠. 그렇게 했더니 한 달 두 달 지나 소문이 나기 시작해 하루 800포대를 배달한 적도 있습니다"고 말했다.

부부는 정말 쉬지 않고 일했다. 남편 정씨는 하루 3~4시간 자면서 일했고, 아내 김씨 또한 5~6시간이 고작이었다. 나중에 부부의 얼음가게는 부평시장 전체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얼음가게가 됐다.

남편 정씨는 "얼음을 청천동 '부평냉동'에서 가져왔는데 제 일하는 모습을 본 사장님이 젊은 친구가 정말 열심히 일한다면서 나중엔 제 얼음을 따로 포장해 둘 정도였습니다"라며 "하지만 제가 물량이 많아지면서 더 이상 얼음을 공급받기 어렵게 됐고, 다른 공장에서 가격을 다운시키며 견제가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돈은 쫓아가면 도망가... 지금이 정말 행복"

김정란씨는 지금도 아이들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훔친다. 무섭고 어렵던 시절, 그를 누구보다 챙겨주고 힘이 됐던 이가 바로 두 아이다. 초등학교 아이가 홀로 밥이 지어먹어야만 했던 그 시절을 딛고 그는 밝게 웃는다.
 김정란씨는 지금도 아이들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훔친다. 무섭고 어렵던 시절, 그를 누구보다 챙겨주고 힘이 됐던 이가 바로 두 아이다. 초등학교 아이가 홀로 밥이 지어먹어야만 했던 그 시절을 딛고 그는 밝게 웃는다.
ⓒ 김갑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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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을 쉬지 않고 일했던 부부는 얼음 공급도 시원치 않고, 시장 내 견제 분위기도 있고 해서 사업전환을 고민하기에 이른다. 그러던 찰나에 시장에서 알게 된 또 다른 지인의 도움으로 지난 2005년 지금의 호남상회를 얻었다.

이제는 빚도 청산했지만 부부에게 가장 아픈 구석이 있다면 바로 큰아들 승현이와 둘째 승민이다. 이들은 어느새 15세의 중학생과 13세의 초등학생으로 성장했다. 엄마와 아빠가 새벽같이 나가 밤늦게 들어오니 둘이 보내는 게 일쑤였지만 첫째 승현이는 누구보다 동생을 잘 돌보며 오히려 부부를 지켜줬다.

아내 김씨는 지금도 아이들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흘린다. 그는 "큰애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남편과 저는 당연히 일하러 나왔고, 고모가 집에 왔을 때 큰 애가 '고모 저 밥하는 법 좀 알려줘' 하더랍니다. 그래서 고모가 '왜?'라고 묻자, 글쎄 '엄마 힘드니까 내가 밥을 해먹으면 될 것 같아서요' 하더래요"라면서 울먹였다. 실은 그 아이가 나중엔 둘째까지 밥을 다 해먹였던 것.

어려서부터 갈고 닦은 요리 실력 덕분인지 첫째 아들 승현의 꿈은 요리사다. 남편 정씨는 "요즘은 출근시간도 7시로 늦춰지고 퇴근시간도 8시로 빨라졌어요. 그래도 변함없는 것은 승현이가 차린 저녁밥이죠. 밥만 있는 게 아니라 생선구이며 찌개며 다 맛있어요"라며 "사실 남들처럼 못 놀아주고 못 챙겨줘서 미안하지요. 아이가 요리사가 꿈이라고 했으니 일류 요리사가 되도록 도와줘야죠"라고 말했다.

얼음이 신속하게 배달하는 것이라면 고추와 잡곡, 참깨와 기름 등은 신뢰가 기본이다. 그래서 부부는 원산지 표시제도 실시 이전부터 직접 상표를 만들어 원산지를 부착해 판매했다. 역시 장사는 단골 확보다. 시장을 찾는 사람이 50~60대가 많다 보니 부부는 이들을 부모 대하듯 대한다. 신뢰와 공경을 바탕으로 장사를 하다 보니 그들에게도 단골들이 늘어가고 있다.

부부는 더 이상 돈을 좇지 않는다. 돈은 좇으려 하면 도망간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았기 때문이란다.

아내 김씨는 "돈은 쫓아가면 도망을 가더라고요. 빚 없는 지금이 정말 행복합니다. 장사가 잘 안 돼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버틸 만 해요"라고 했고, 남편 정씨는 "요즘 뉴스 보니 대형마트나 SSM문제로 시끄럽던데 장사꾼들 대부분이 외환위기 당시 들어온 사람들인데 이러면 안 돼요. 시장이 무너지면 우리 모두 무너지게 됩니다. 다른 건 안 해줘도 좋으니 그것만은 막아줘야 해요"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자영업자, #부평시장, #호남상회, #대형마트, #외환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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