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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오이 큰것이 백다다기오이 작은 것이 토종청국오이
▲ 토종오이 큰것이 백다다기오이 작은 것이 토종청국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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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토불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불신국토(佛身國土)라는 불교용어에서 '신토'를, 해탈의 경지의 마지막 문인 불이문(不二門)에서 '불이'를 따온 말이다. 이 용어에 대해 일본식 조어라는 의견이 있지만 "우리 것, 즉 토종은 좋은 것이다"라는 인식을 확산 시키는데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얼마전, 1년 전에 결혼한 의성의 농부로부터 전화가 왔다. 유기농으로 토종오이를 재배했다는 것이다. 토종오이의 이름은 '청국오이'.  우리가 먹는 오이는 대부분 '취청'이라는 가시 오이와 백다다기라고 하는 오이가 주류를 이룬다. 토종오이 청국은 백다다기처럼 작고 통통한 오이다.  취청은 토종이 아니고 청국오이는 토종이라는데 그럼 과연 토종은 무엇인가?

토종의 의미는 무엇인가?

토종을 한국 자생이나 원산이라고 한다면 국내에서 재배되는 작물중 토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찾기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작물들은 시기만 달리 할 뿐 외래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토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이 원산지여야 하는데  콩이나 잡곡 일부를 빼고 우리가 먹는 배추, 상추, 오이, 가지, 토마토, 감자, 고구마 등 대부분은 수입 시기만 다를 뿐 외래종일 확률이 높다.

원산지로 규정할 수 없다면 토종의 정의는 어떻게 내려야 할까? 토종종자 보급에 앞장서는 단체에서는 '토착화된 종자로 자가채종이 가능한 종자'를 토종으로 정의했다. 토착화란, 한국 지형에 적응하여 꽤 오랜 시간 재배되었고,  채취한 씨앗을 다음해에 심으면 기존의 품질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시장에서 구입해 먹는 농산물의 상당수는 종자회사에서 상품으로 나오는 씨앗으로 키운 것들이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첫해에는 좋은 품질을 보여주지만 다음해에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종자회사 입장에서는 한 번 판매하고 다음해에 다시 팔지 못한다면 유지가 어렵기 때문에 채종한 씨앗을 심는 경우 기존의 품질을 유지해서는 사업이 안되는 것이다.

이것을 '터미네이터 식물'이라고 한다. 형질조작을 통해 만든 1회용 씨앗으로, 이 씨앗으로 키운 작물은 열매는 잘 맺지만 열매 속 자신의 씨앗을 스스로 파괴하는 성질을 가졌다. 씨앗은 자신을 육종해 교배한  회사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를 파괴하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이다. 불임 부부만 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불임씨앗도 늘고 있는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참 무서운 일이다. 

대한민국 종자회사의 역사는 일제식민지 시대에 시작하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1960년대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그럼 그들이 출현한 배경은 무엇인가? 종자회사가 없던 시기에도 우리 땅에선 많은 작물이 재배되었다. "1911년과 1913년에 각 도와 시・군에 의뢰하여 수집한 『조선도품종일람』에 보면 1,451품종이나 되었다"[우리가 지켜야 할 우리 종자』(안완식 저, 사계절 출판사, 2000)참조]고 한다. 종자의 다양성으로 보면 현재 종자회사가 보급하는 종자보다 많았다. 토종 종자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농업의 목표가 자급자족에서 대량생산과 환금성이라는 목표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텃밭 돈이 개입되지 않는 텃밭 농사에는 아직도 토종이 주류를 이룬다.
▲ 텃밭 돈이 개입되지 않는 텃밭 농사에는 아직도 토종이 주류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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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종자가 갖는 수확량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교배종이 출시 되었고 그때마다 토종의 입지는 줄어들었다. 벼의 경우 이미 1938년 무렵에는 도입품종의 재배면적이 무려 84%나 되었다고 한다. 특히 돈이 되는 작물들에서 품종 개량이 주로 이루어졌는데 그 이유는 역시 대량생산과 소비라는 기업의 입맛에 맞기 때문이다.

돈이 되는 작물이라는 것은 파종 면적이 넓어 씨앗을 많이 팔 수 있는 것들이다. 배추, 무우, 고추, 수박, 참외, 토마토 같은 것들이 좋은 예다. 현재 시장에서 구입 가능한 채소 종자의 경우 거의 100% 교배종이라 할 수 있다.

그럼 지금 토종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바로 시골아주머니들의 텃밭에 있다. 우리 어머니의 텃밭에는 대부분이 토종 종자(자가채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뿐이다. 시골에서 벼농사와 텃밭 농사를 짓는 어머니가 보유하고 있는 토종 씨앗에 대해 물었다.

어머니가 현재 토종 씨앗으로 농사짓는 것은 다음과 같다. 조선오이(통통하고 작지만 잘 키우면 크다. 자가채종해서 사용한다), 대파(일명 봄대파. 조금 작지만 포기가 많고 채종이 가능하다), 쪽파, 상추, 참깨, 들깨, 생강, 땅콩, 검정콩, 흰콩, 푸른콩, 동부콩(빨간동부, 흰동부), 벌레콩, 옥수수, 팥, 고구마, 토란 등등 모두 자가채종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 역시 고추와 배추, 무우, 양파 등은 구입해서 사용한다.

꽃이 피고 열매가 여물 때까지 작물을 하나 둘 남겨 씨를 받아 커다른 옹기에 보관하곤 했다. 어린 시절, 그 옹기 뚜껑을 열어보면 신문지에 싸인 이런 저런 씨앗들이 가득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도 그것은 어머니의 보물창고였을 것이다. 어머니의 텃밭은 토종으로 가득하지만 거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어머니의 텃밭 어머니의 텃밭에는 50여종의 토종씨앗으로 키운 작물들이 재배되고 있다.
▲ 어머니의 텃밭 어머니의 텃밭에는 50여종의 토종씨앗으로 키운 작물들이 재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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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농사짓는 대부분의 종자는 종자회사에서 관심을 보이지 않는 작물들인 경우가 많고 돈을 위해 짓는 농산물의 대부분은 종자를 구입해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토종종자는 개량종에 비해 수확량이 적고 모양이 좋지않아 이른바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토종을 지키는 농부는 어떤 이들이며 왜 지키려 하는가? 식품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GMO에 대해 대부분 관심을 갖고 잘 알고 있다. GMO는 '프랑켄슈타인 식품'이라고 하는데 옥수수에 청어 유전자를 넣는 등의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져 조작된 씨앗으로 키운 농산물을 일컫는다. 이것을 할 수 있는 것은 돈이 많은 다국적 종자회사들이다.

토종의 의미를 자가채종 가능성에 둔다면 토종을 지키는 노력이 왜 필요한지는 곧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종자자립'에 있다. 우리가 식량자급률을 높이려는 노력이 식량주권을 지키는 식량이 전략화 되려는 것을 막으려는 것에 있듯이 종자 역시 외부(기업)에 의존하게 되면 농부의 선택권은 좁아지고 하나의 무기가 될 수 있다.

현재 연 1300억 원(정확한 통계는 없어 종자회사들이 공개한 자료에 근거했음) 규모로 추정되는 국내 종자사업은 몬산토코리아, 신젠타, 코레곤, 동부한농, 농우바이오 등 5개사가 전체 종자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그들이 종자에 대한 독점야욕을 위해 1회성 종자를 넘어 GMO 종자만  만든다면 종자가 없는 농부들은 그것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즉 선택권이 없어지는 것이며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종자회사들 중 다국적기업이 많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식량작물인 쌀과 보리 같은 곡물의 경우 국가에서 직접 관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보편화된 우리밀 역시 처음엔 종자조차 구입하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주 적은 양의 종자를 모든 농민이 필요한 양만큼 확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씨앗은 프레스로 찍어 낼 수 없다. 그것은 작물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토종오이를 지키는 농부의 농산물을 직거래로 판매해 주는 일은 이런 의미에서 가치를 지닌다. 대량유통 시장에서 토종씨앗으로 키운 오이가 설 자리는 그렇게 많지 않다. 수량이 얼마 되지 않아 매대를 차지하고 있기도 어렵고, 요즘 소비자가 선호하는 모양새도 아니기 때문에 특별한 설명을 하지 않으면 선택을 받을 수도 없다. 대부분 토종은 교배를 통한 당도위주의 맛이 아닌 진한 작물 고유에 맛이 있다. 결국 아는 사람이나 참거래 같은 농민직거래장터가 아니고서는 토종이 팔릴 곳은 거의 없는 셈이다. 현재 그의 처지도 그렇다.

필자는 이미 6년 전에 자광미라는 쌀을 직거래로 공급해 본 적이 있다. 자광미 역시 토종쌀로, 자색을 띠는 찰기가 있는 쌀이다. 이 쌀을 확대 보급하기 위해 여러 사람에게 볍씨를 보급한 적이 있지만 대부분 판로가 없어 지금은 주춤한 상태다.

이번 토종오이를 생산한 농부는 앞으로 더욱 다양한 작물을 토종으로 생산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것은 어머니의 텃밭 수준의 토종농사가 아닌 종자회사가 만드는 교배종 종자와의 경쟁을 준비하고 그 농사에 젊은 농부의 미래를 걸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할 수 있다.

이미 토종종자는 교배종에 밀려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니 극적인 역전 드라마는 불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토종을 지키려는 노력, 그리고 그것을 확대한 노력까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첫 발을 내딛는 토종을 지키는 농가를 위해 좀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토종씨앗을 지키는 일이 바로 우리 농업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며 안전한 밥상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옛 속담에 '보릿고개에도 씨앗은 베고 잔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 조상들이 밥을 굶어도 지키려고 했던 종자의 중요성을 다시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참거래 농민장터에서는 유기농으로 키눈 토종오이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토종 오이는 10개 1만원이며 www.farmmate.com 에서 구입 가능합니다. 이 글은 참거래 농민장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참거래농민장터#토종#오이#직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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