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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딱새 우리나라 산골의 대표적인 텃새
▲ 어미딱새 우리나라 산골의 대표적인 텃새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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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새와 인연

딱새는 시랑헌의 터줏대감 새이다. 시랑헌 주변에 살면서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물하며 더불어 사는 가족의 일원이다. <산새도감>을 찾아보면 딱새는 시베리아 남부, 중국 북부와 우리나라에서 번식하고 겨울에는 인도북동부, 대만, 일본 남부에서 월동하는 새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텃새이며 둥지는 인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짓는단다. 주로 단독 생활을 하며 촌락의 울타리나 공원 등 사람과 가까운 곳에서 생활을 한다.

나는 부지불식간에 시랑헌의 텃새인 딱새와 맺어서는 안될 악연을 3차례나 맺고 말았다.

첫 번째가 시랑헌의 우거진 숲을 치우려고 동네 사람들과 같이 일하다가 쉬는 시간에 커피를 마시려고 시랑헌 거실 선반에 올려놓은 커피믹스를 꺼낼 때 일어났다.

커피봉투 안의 딱새둥지 시랑헌 거실이 어미딱새에겐 가장 안전한 곳으로 판단된것 같다.
▲ 커피봉투 안의 딱새둥지 시랑헌 거실이 어미딱새에겐 가장 안전한 곳으로 판단된것 같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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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메! 이 일을 어쩌면 조타냐?

커피믹스 비닐통 안에 딱새 알이 들어 있는 둥지가 있었다. 생각지도 못할 일이지만 이미 새 둥지는 움직인 이후다.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여 제자리에 갖다 놓았지만 어미 딱새는 알을 포기해 버렸다.

다음 주말에 우리가 시랑헌에 왔을 땐 알들에게서 이미 생명의 온기가 가신 듯했다. 알을 치우고 새집 주변을 청소하고 다시 정리하였다. 딱새가 또 시랑헌 거실로 들어오지 못하게 화목난로의 연통구멍을 종이박스를 뜯어 테이프로 봉했다. 

두 번째는 시랑헌의 처마를 달아내려고 신발장을 정리하면서 발생하였다. 겨울철 방한화를 옮기려고 들자 방한화 속에서 놀란 어미 딱새가 밖으로 뛰쳐나온다. 나도 순간 놀랬다. 둥지는 뒤집어졌고 알들은 땅에 떨어져 깨져버렸다. 씁쓸하지만 쏟아진 물이다.

세 번째는 전기배전 공사를 하면서 시랑헌 아래 터 농기구 창고에 배전판을 달고 본 집터로 들어오고 나가는 전기 배선공사를 하던 때 발생하였다. 점심시간이 되어 시랑헌에 올라와 점심을 먹고 한 시간 정도 오수를 즐기고 다시 배선공사를 하러 창고에 들어섰더니 그 사이 딱새는 배전판 위에 둥지를 틀었다. 다행히 아직 알은 까지 않은 상태였다.

새 생명의 탄생

7월 중순 주말이었다. 시랑헌 거실에 들어섰더니 목조 오두막 냄새인 편백나무 향이 한결같이 우리를 반긴다. 짐을 풀고 주위를 둘러보니 새로운 딱새 둥지가 거실 지붕 귀퉁이에 틀어져 있다. 아니! 어떻게 거실로 들어왔지? 하면서 봉해진 연통 입구를 보니 테이프의 접착력이 떨어지면서 종이박스는 틈새를 보였고 그 틈새를 이용하여 딱새가 들락거리며 또 알을 깐 모양이다.

거실 귀퉁이의 딱새둥지 이번에는 거실 귀퉁이에 둥지를 틀었다. 조금만 조심하면 알을 까고 새끼를 기를 어미딱새를 도울 수 있을것 같다.
▲ 거실 귀퉁이의 딱새둥지 이번에는 거실 귀퉁이에 둥지를 틀었다. 조금만 조심하면 알을 까고 새끼를 기를 어미딱새를 도울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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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어미딱새 어미딱새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자기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외부 침입자들이다. 조심하여 어미 딱새를 안심시키고 싶다.
▲ 불안한 어미딱새 어미딱새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자기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외부 침입자들이다. 조심하여 어미 딱새를 안심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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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어떻게든지 딱새가 알을 까고 새끼들을 기르도록 도와야겠다는 생각이다. 출입문을 아예 열어놓고, 연통의 종이박스도 제거했다. 어미딱새는 또 비상이 걸렸다. 당황한 빛이 역력하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찌지 찌지"하며 짖어대지만 그렇다고 일주일만에 찾아온 시랑헌에서 우리들이 철수할 수도 없다.

나와 집사람은 시랑헌 출입을 되도록 삼가고, 출입해야 할 경우를 최소로 줄였다. 거실을 통해 안방으로 들어가더라도 어미딱새가 놀라지 않도록 조심했다. 불안해 하는 딱새를 볼 때마다 '우리는 너에게 적의가 없다. 우리는 너의 친구이고 너는 우리의 가족이다'라는 진심의 메시지를 보냈다.

시랑헌 주변에서 시끄럽게 할 수도 없어 바깥 일을 주로 하고 대전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주에는 어미딱새의 알을 품고 새끼를 까는 일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시랑헌을 가지 않았다. 일주일을 건너 뛰고 그 다음 주에 시랑헌을 들어섰더니 귀여운 딱새 새끼들이 쫑알거리는 소리가 꽤 요란하다. 시랑헌의 경사이다.

모성애로 무장한 어미 딱새는 용감하기 그지없다. 이제 우리가 거실에 있거나 말거나 안중에 없다. 그저 부지런히 하루 종일 간단없이 벌레를 물어다가 새끼들에게 먹이는 일에 여념이 없다. 눈도 못 뜬 새끼들은 보려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나의 기척에도 어미 새가 먹이를 가지고 온 줄 알고 주둥이를 높이 쳐들고 크게 벌린다. 온통 주둥이뿐이다. 새끼들은 몸통은 없고 주둥이만 있는 것 같다.

다음날에는 어미 딱새 혼자 5마리 새끼들에게 먹이를 잡아 나르기가 벅찼는지 이웃집 아줌마에게 도움을 청한 모양이다. 두 마리 딱새는 부지런히 벌레들을 물어 나른다. 새끼들을 엄마가 오든 아줌마가 오든 주둥이를 높이 쳐들고 저에게 달라고 아우성이다. 초등학교 1학년 교실 같다.

눈도 아직 못뜬 딱새의 새끼들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은 주둥이였다. 자신의 몸통보다 큰 주둥이를 쫙 벌리며 어미새의 먹이를 받아먹었다.
▲ 눈도 아직 못뜬 딱새의 새끼들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은 주둥이였다. 자신의 몸통보다 큰 주둥이를 쫙 벌리며 어미새의 먹이를 받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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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산새도감>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이웃집 아줌마라고 생각한 어미 딱새는 수컷이었다. 수컷은 엄마 딱새에 비해 적극성이 떨어져 우리가 거실에 앉아 있을 땐 두려워 새끼들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깃털의 색깔도 암컷에 비해 선명함이 떨어져 아름다움이 덜했다.

존재하는 것들 상호 간에 얽힌 인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보이든 보이지 않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입장에서 이러한 상호 작용이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는 모든 존재들이 그물막 같은 인연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어 상호 영향을 미칠 뿐 그것이 좋고 나쁜 개념이 없다. 조그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딱새와 나의 관계도 그렇다.

딱새가 우리 시랑헌에 터를 잡고 잘 살기를 바란다. 어미 딱새에게 진 빛도 있고 해서 시랑헌에서 살게 되면 새 집을 많이 만들어 줄 생각이다. 딱새의 먹이는 밤톨에 알을 까는 곤충들과 고구마, 상치, 등의 채소 잎을 갉아먹는 애벌레들이다. 주변의 해충들을 처리하는 고마운 천적이다.

올해에는 처음으로 살구나무에 탐스런 살구가 몇 개 열렸다. 건전하게 자라라고 두 개만 놔두고 나머지는 따줬다. 다른 과일나무도 한두 개씩 남기고 따줬다. 매번 시랑헌을 오갈 때마다 살구, 복숭아, 배, 왜성체리, 불루베리 열매가 잘 여물어가는 것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느 날 아침 탐스런 살구와 다른 과일들을 보러 집터에 내려간 나는 큰 허탈감을 맛봐야 했다. 살구 씨는 땅에 떨어져 있고 생각하면 침부터 나는 살구 열매는 없어져 버렸다. 딱새의 짓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으나 새들의 소치이다. 농약이나 화학 비료를 하지 않은 친환경 작물들은 혈당조절을 해야 하는 나에겐 소중한 양식이다. 작고 못 생긴 것들이지만, 잘 익은 불루베리나 토마토는 언제나 새들의 몫이다.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한 천문학자이며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편 코페르니쿠스의 우주의 평등한 입장에서 본다면 내가 밤 밭에 설치한 포충등에 타 죽고 포집(捕執)되는 날벌레들의 학살현장이 나찌의 수용소와 근본적으로 뭐가 다른가? 역사적으로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은 언제나 거대한 범죄와 시행착오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나는 시랑헌의 동트기 전 여명의 분위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새벽 4시가 되면 시랑헌 밖으로 나와 일출을 기다리며 참선을 한다. 한참 앉아 있다 보면 언젠가 닥칠지도 모를 새들과 생존경쟁, 고구마 밭을 초토화시키는 멧돼지와 관계정리, 요소 비료가 필요해 보이는 강냉이 밭과 타협 등 결국 인간인 내가 중심인 망상의 망상들이 꼬리를 문다. 결국 헛된 생각에 젖어 자리에서 일어나곤 한다.

딱새새끼들이 자라서 떠난 자리에는 어지럽게 널려진 새똥과 부서져 이리저리 널부러진 둥지의 잔해들이 나와 집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랑헌을 떠난 딱새들은 시랑헌을 지네들 소중한 고향으로 기억이나 할까?  뒤에서 그들의 탄생을 축하하고 성장을 기원한 할아버지 할머니인 우리들의 존재는 그들에겐 뭐가 될까?

코앞의 이해관계에 얽혀 상호간의 야합과 배반의 인간속성이 싫어 이를 비껴 서려고 산속으로 들어왔건만 정과 사랑이 있는 인간세상과 달리 자연은 훨씬 더 현실적이고 적나라한 비정의 세계이다. 자연에 순응하고 일치된다는 것은 혹시 냉혈동물이 되는 것이 아닌가 두렵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가?
모르니
오직 나를 낮추고 행할 뿐이다.


#산골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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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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