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질 단계를 끝낸 그는 행동 시에 할 일을 꿈꾸듯이 계획합니다. 데드 번디는 대상을 죽이기 전에 찰나적이고 날카로운 성관계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대상을 자기 차로 끌어 들이기 위해 책이나 짐을 차에 싣는 데 도와달라고 하는 수법을 썼습니다. 어떤 살인마는 가짜로 팔에 깁스를 하고 짐 싣는 것을 도와달라고도 했습니다. 데드 번디의 손아귀에서 도망친 여성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최후의 공격을 가하기 직전까지 한 치도 침착성을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결정적인 기회를 포착하기 전에는 결코 경솔한 행동에 돌입하지 않습니다. 칼튼 게리는 표적으로 삼은 부유층 노년 여성을 무려 수주일 동안이나 관찰했습니다. 그는 물건 배달 일을 하기도 하면서 표적 여성의 이웃들과도 얼굴을 익히고, 심지어는 그 중 한 여성과 성관계를 맺기도 하면서 표적 여성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그들은 대상이 혼자가 될 때까지 기다리며 차츰차츰 고조되어 가는 심리적 흥분을 향유합니다.
경찰에게 가장 곤혹스럽고 비통한 시기가 바로 이 낚시질 단계거나 스토킹 단계입니다. 범인은 대상을 물색하여 결정적인 시간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경찰은 그저 문서를 뒤적거리며 실낱같은 단서나 찾아보려고 골머리를 앓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체는 줄줄이 발견됩니다. 경찰은 식어버린 현장을 뒤쫓으며 실속 없이 부산하기만 합니다. 이제 세상의 모든 비난이 범인이 아닌 경찰에게 쏠립니다. 하지만 뒷북을 치는 수사로는 해결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습니다.
낚시질 또는 스토킹을 끝낸 그는 포획으로 행동을 옮깁니다. 이 행동은 아주 기민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는 난데없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거나, 갑자기 차 문을 잠가 버리거나, 아니면 주먹이나 흉기로 대상을 삽시에 무력화시킵니다. 이 포획 단계에서 살인마의 흥분 상태는 정점으로 치닫습니다. 대상은 이제 달아날 수 없습니다. 살인마는 마음대로 대상을 농락할 수 있다는 자족감과 기대감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물론 포획의 방법은 그들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칼튼 게리는 방어 능력이 없는 피해자를 불시에 공격하는 방법을 썼습니다. 테드 번디는 대상을 유혹하여 자신만의 장소로 데려갔습니다. 헨리 루카스는 대상에게 자신이 행할 의식의 내용을 미리 설명해 주면서 대상이 공포에 휘말리는 모습을 감상했습니다.
다음 단계에 마침내 살인이 행해집니다. 그들에게는 제각기 고유한 의식이 있습니다. 존 게이시는 대상을 지하실로 끌어들여 일단 성기를 힘껏 걷어차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나약하고 여자 같은 심성이어서 아버지에게 늘 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는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대상의 모습을 보며 즐겼습니다. 그는 대상에게 죽음 앞에서 용감해지라고 말한 후, 시편 23편을 읽어 주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음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조세프 칼링거는 16세 장남을 공범으로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는 장남 마이클과 함께 대상인 남자 어린이의 성기를 잘라냈다고 합니다. 그는 대상이 내는 고통의 소리를 즐겼습니다. 어느 날 스토킹에 실패하고 집에 돌아온 그는 막내아들 13세 조이를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막내아들이 고통을 못 이겨, "아빠, 절 살려 주세요"라고 말했을 때 그는 오르가슴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는 어린 시절 엄마에게 학대를 받았습니다. 그가 울면 엄마는 자식에게 시뻘건 불 위에 손을 대도록 강요했습니다. 아이가 뜨겁다고 비명을 질러도 손을 빼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강인하게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헨리 루카스는 여자 어린이의 성기를 달걀 모양으로 도려내거나, 라이터로 태우거나, 손발가락을 잘라낼 때 절정감을 느꼈다고 고백했습니다.
루카스의 엄마는 불구 남편과 어린 아들이 보는 데에서 외간 남자와 성행위를 했습니다. 그녀는 어린 아들을 불이나 몽둥이로 기절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화가 나면 어린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박살냈으며 어린이의 강아지를 죽여 버린 일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툭하면 아들에게 여자 옷을 입혀 학교에 보냈습니다. 성인이 된 루카스는 외모나 말씨가 자기 어머니와 비슷한 여자만 골라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어느 날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연쇄살인범이 되어 있는 것을 모르고 아들에게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욕을 오래 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들이 어머니를 죽여 버렸기 때문입니다.
살인 순간에 느끼는 승리감, 자신감, 오르가슴 등은 살인마에게 존재의 의미를 선사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억압했던 대상의 환영을 제거하는 순간, 어린 시절부터 그를 감싸고 있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로날드 레이크는 엄마의 잔소리가 너무 싫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엄마를 죽여 성대를 잘라내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살인을 끝낸 그들은 처절한 허탈과 절망의 나락으로 급속히 잠겨 듭니다. 그래서 한 두 차례 살인을 해 본 그들 중에는 다음 살인 때에는 희생자의 신체 일부를 간직하는 자가 나타납니다. 팔, 다리. 성기, 심지어는 머리를 보관하는 자도 있습니다. 그것은 승리감을 연장하는 트로피이자 추억의 매개물입니다. 현장 상황을 사진으로 찍거나 비디오에 녹화하여 두고 보며 즐기는 자도 있습니다. 이 시기를 미국에서는 토템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과 함께 토템의 마술은 사그라집니다. 그들은 정상적인 생활로 되돌아갑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생활을 할수록 자책감이 심해집니다. 그들은 경찰 혹은 언론에 고백 수기를 보내기도 하고 편지로 고해성사를 하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학대하는 행위를 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어느 순간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살인 충동이 또다시 그를 기습합니다. 잠재되어 있던 욕망이 준동하면서 주변 움직임이 느려지고 색과 빛이 뚜렷해집니다. 그는 우연히 눈앞을 지나는 한 여인에게서 향수나 화장품 냄새를 강렬히 느낍니다.
연쇄살인은 중독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환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순환하면서 진화됩니다. 그러기에 범인을 뒤따라가서는 결코 체포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범행이 먼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그가 왜 범행했는지 아는 데에도 많은 시간을 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범인의 특성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의 습관과 욕망을 알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범인이 갈 만한 장소를 추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미리 가 있지 않고서는 잡을 수 없는 범인이 연쇄살인범입니다. 군사 작전 용어로 선제공격이 필요합니다. 선제공격만이 범인을 체포하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연쇄살인뿐 아니라 현대에 들어 급증하는 테러살인에도 가장 유효한 방법입니다. 적지 않은 시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강연을 끝내면서 의도적으로 테러 살인을 언급했어. 내가 수경의 표정을 살핀 것을 수경은 눈치 챘을 거야. 사실 범인의 특성을 파악하라는 말이나 선제공격론 같은 것들은 수경이 이미 F.B.I.에서 누누이 들었던 내용일 것이야. 내가 테러 살인을 말하면서 수경을 보았을 때, 나는 수경의 얼굴에 물살처럼 번지는 모종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지.
나중에 수경이 나에게 말했듯이, 수경은 그 날 이후로 사건이 정치적 성격을 띠는 테러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수사에 임했어. 수경은 먼저 한국에서 발생했던 정치적 테러에 관심을 가졌다고 했지. 하지만 차분히 연구할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 물론 이어서 터진 사건들 때문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