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는 '인간'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을 때, 나는 지독한 페시미즘(pessimism)에 귀착된 '나'를 보았다. 염세주의 또는 비관주의로 번역되는 페시미즘은, '최악'이란 뜻의 라틴어 'pessimum'에서 유래한 말로 옵티미즘(optimism : 낙천주의)에 대응한다.
그리고 페시미즘은 이 세상에 악(惡)이 지배하고 있는 사람이 사는 동안은 온갖 사회악과 문제들을 없앨 수 없다는 생각에, 흔히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는 사상으로까지 발전한다.
BC 6세기 그리스의 시인 테오그니스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고, 빛나는 태양을 보지 않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태어난 바에는 서둘러 죽음의 신의 문에 이르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다"라고 노래한 바 있다.
선과 악, 빛과 어둠이란 두 개의 실재를 극단적으로 대립시키는 이원론적 신앙은 필연적으로 페시미즘에 귀착되고, 인간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한 구제받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영혼의 구원을 바란다면 죽음으로 암흑세계를 벗어나는 길 밖에 없다 한다.
이런 염세사상은 신화상의 시인 오르페우스가 창시했다고 전해지는 고대 그리스의 밀의 종교로, 영혼이 육체에서 해방됨으로써 신과 합일할 수 있다는 것에 영향을 받은 그리스인들에게 흔히 발견되었다.
근대에 와서는 헤겔과 경쟁관계를 맺은 A.쇼펜하우어가 페시미즘을 철학적으로 역설했다. 그는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등에서, 세계는 불합리하고 맹목적인 의지가 지배해 인생은 괴로움이며 이 괴로움에서 해탈하려면 쾌락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무욕-열반의 상태에 달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쇼펜하우어에 프리드리히 니체, 지그문트 프로이트, 찰스 다윈, 유진 오닐, 막스 호르크하이머, 카를 융 등의 지성인들이 그 영향을 받았다 한다.
영광스럽게 그리스 밀의 종교와 쇼펜하우어에 영향을 받지 않았음에도, '나'라는 인간은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남들과 사뭇 달랐다. 그렇다고 지독한 비관주의자라기보다, 죽음을 달관한 불멸의 신선이 사바세계를 바라보듯 무심했다.
그 무력하고 금욕적 무심함을 극복하려고 주체적인 행동으로 세상이 아닌 자신과 주변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려 했지만, 역시 자신과 별개인 세상은 맞부딪힐수록 암담하다는 것만 절감했다. 그러다보니 점점 생명과 평화, 희망을 꿈꾸던 철부지 청년은 근심거리만 늘었고, 하릴없이 또다시 제3자의 눈으로 세상과 인간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 보이지 않는 불편한 거리를 좁히기 위해, 나름 애도 써봤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알 수 없는 실망감 뿐이었다. 실망은 거리를 더욱 크게 하고 진정 바라는 다른 세상을 위해 쉽게 좌절-포기하지는 않지만, 혼자서 그 길을 가야만 하는 외로움만 쌓여갔다.
그 비관적 외로움을 1976년 천주교 사제가 된 이래 정의와 평화의 올곧은 여정을 걸으며 항상 양심의 소리, 희망의 빛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는 문규현 신부님의 책에서 잠시나마 떨쳐버릴 수 있었다. 희망의 다른 말 사랑과 인연, 생명, 평화, 정신, 삶, 관계를 담은 짧은 글과 염세주의로 찌든 가슴을 탕탕 울리는 그림으로 말이다.
25편의 짧은 이야기는 힘겹고 모진 세상에 생명과 평화, 희망을 바라는 기도문처럼 가슴에 와닿아, 내가 진정 살고자 하는 생태적 청년의 삶을 떠올리게 했다. 정해진 길이 아니라, 넘지 못할 턱이 없는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민들레 홀씨가 되려했던 나를...
인연에 무책임한 나를 되돌아보게 한 뒤 찾아든 두려움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지만, 신념과 가치에 따라 움직이는 작은 용기로 변화와 변혁을 희망해본다. 희망없는 사회와 지독한 염세주의를 뛰어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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