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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레시아스 삽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테이레시아스 삽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 새사연
그리스 신화에서 위대한 맹인 예언자로 나오는 테이레시아스(Tiresias)가 맹인이 된 사연은 두 갈래가 있다. 그 중 하나는 테이레시아스가 사냥을 하다가 아테나 여신이 목욕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여신이 두 손으로 그의 눈을 가려 장님으로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또한 그의 어머니 카리클로를 달래기 위해 아테나 여신은 테이레시아스가 새의 말을 알아 들고 길안내를 위한 지팡이를 주고 또 7세대 동안 살 수 있는 생명을 주는 동시에 예언력도 주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리스의 최고신 제우스와 그의 누이이자 아내인 헤라가 성교 중에 남녀 가운데 누가 더 큰 쾌락을 맛보느냐에 대한 언쟁을 벌일 때, 여자와 남자의 몸을 둘 다 경험한 테이레시아스에게 의견을 물었다. 테이레시아스가 여자의 쾌락이 9배나 강하다고 하면서 제우스 편을 들자 화가 난 헤라는 그를 때려 장님으로 만들었다.  제우스는 보상으로 그에게 새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는 힘과 뛰어난 예언력을 주었다고 한다.

이후 테에리시아스는 오이디푸스에게 그가 아버지인 라이오스를 죽이고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등 위대한 예언자로 활동한다.  심지어 테이레시아스는 죽은 뒤에도 예지력을 유지할 수 있는 특권을 가져서 오디세우스는 그 망령에게 의견을 묻기 위해 땅끝까지 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세계적으로 점성술사는 맹인인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인터넷 등으로 많이 쇠퇴했지만 점성촌으로 유명한 미아리의 점술가들의 다수가 시각장애인이었다.  직업 선택이 제한되어 점술가를 택한 측면도 있겠지만 시력을 상실함에 따라 현상의 세계 너머에 있는 신비한 세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기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臣(신) 宦(환) (현) 賢(현)
臣(신) 宦(환) (현) 賢(현) ⓒ 새사연

臣(신)의 갑골

臣(신하 신)은 갑골에서 보듯이 안구가 커다랗게 돌출된 눈의 모습이다. 여기에 오른손 모습인 又(우)를 붙인 臤(단단할 견, 어질 현)은, 눈을 손으로 찔러 시력을 잃게 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이렇게 시력을 잃은 사람들이 주로 신을 섬기는 臣下(신하)가 되었다.

宦(환)의 금문

宦(벼슬 환)은 사당(宀)에서 신을 섬기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宦官(환관)

臤(현)의 금문, 賢(현)의 금문

臤 눈을 찔려 테이레시아스처럼 뛰어난 예지력을 가진 사람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나중에 아이를 낳을 때 쥐고 있으면 순산한다는 조개인 子安貝(자안패)를 붙인 賢(어질 현)이 이를 대신한다. 賢者(현자)

 堅(견) 緊(긴) 腎(신)
堅(견) 緊(긴) 腎(신) ⓒ 새사연

堅(견)의 소전

臤 또한 눈을 찔릴 때 갖는 긴장되고 경직된 심리 상태를 나타내기도 해서 '단단하다'는 의미로도 쓴다. 土(토)를 붙인 堅(견)은 '굳다'라는 뜻이다. 堅固(견고)

緊(긴)의 소전

실을 의미하는 糸(멱)을 붙인 緊(긴)은 '굳게 얽다'는 뜻이다. 확대되어 '긴요하다, 팽팽하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緊密(긴밀)

腎(신)의 소전

肉(육)을 더한 腎(신)인 콩팥을 의미하는데 한의학에서는 精(정)이 생성되는 곳이라 한다. 腎水(신수)는 精液(정액)을 말한다. 강하고 단단한 의미와 연결이 된다. 腎臟(신장)

眠(면)은 무언가에 찔려 시력을 잃은 상태를 나타내는 民에 눈(目)을 더한 글자로서, 시력을 잃은 상태는 눈을 감고 자는 상태와 유사하므로 '잠자다'는 뜻이 된다. 睡眠(수면)

인간은 모든 감각의 70퍼센트를 시각에 의지한다고 한다. 그래서 시각을 잃으면 다른 감각 기관, 예를 들어 청각이나 촉각 등이 이를 대신하여 발달하게 된다. 보통 사람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게 되고 냄새를 맡게 되어 뛰어난 예지력 등을 가질 수 있다. 賢(어질 현)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글자이다.

2006년 5월에 헌법재판소에서 시각장애인만 안마사 자격을 갖는 것은 일반 국민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취지로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 결정으로 시각장애인 안마사가 자살하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낳았다. 시각 장애로 점술가나 안마사 등 제한된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다. 당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전혀 타당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여러 사정으로 자신의 제한된 장점을 살려서 생계를 꾸려야 하는 시각장애인에게는 청천벽력이나 다름 없는 일이었다. 우리 사회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면서 공조하는 길을 찾도록 더욱 지혜를 모아야 하겠다.

덧붙이는 글 | 김점식 기자는 새사연 운영위원이자, 현재 白川(시라카와) 한자교육원 대표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자 해석은 일본의 독보적 한자학자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의 문자학에 의지한 바 큽니다.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로마신화#賢(현)#시각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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